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휴먼어린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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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대목]

오늘 아침, 〈갈색 라디오〉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붙잡혀 갔대요. 틀림없이 샤를리도 그 안에 있을 거예요. 사람들을 잡아간 이유는 최근에 갈색 동물로 바꾸었어도 마음까지 변한 건 아니기 때문이래요. 라디오 아나운서는 “갈색이 아닌 개나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으면, 그게 예전이었다 해도 법을 어긴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심지어 ‘국가 반역죄’를 들먹였어요. 그 다음 내용은 더 끔찍했어요. 설령 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모, 형제, 친척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갈색이 아닌 다른 색의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면 가족 모두 함께 벌을 받게 된대요. 정말 너무 해요.

세상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요. 갈색 고양이를 키우기만 하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하지만 저들이 예전에 키우던 동물의 색까지도 문제 삼기로 한 이상, 나와 같은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기 전에는 이 짓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밤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그들이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 챘어야 해요. 우리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법을 따르기만 했어요. 그때 그들에게 맞서야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요.? 모든 것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데......해야 할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산더미 같은데......나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프랑크 파블로프, 《갈색 아침》,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 2013, 32-35면)

 

[북 리뷰]

 

처음에는 고양이가 다음에는 개가 너무 많아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법이 생깁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법을 비판하던 《거리일보》가 폐간되더니 결국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고 정부 어용지나 다름없는 《갈색신문》만 남습니다. 나는 좀 가슴이 답답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갈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세상에는 온통 ‘갈색’만 남습니다. 갈색 커피, 갈색 사랑, 갈색 생각, 갈색 남자, 갈색 결혼, 갈색 이혼, 갈색 토마토, 갈색 배, 갈색 빨강, 갈색 까망, 갈색 하양. 모든 사람들은 이제 갈색이 아닌 것은 갖지도 쓰지도 먹지도 아마도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갈색 개를, 갈색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도 체포되기 시작합니다.

 

[이 한 대목] 전까지의 이 짦은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갈색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전에 갈색이 아닌 것을 가졌었다는, 먹었다는, 썼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이 한 대목] 의 다음,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습니다.

 

“아아,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굴까요.? 무서워요.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세상이 온통 갈색이에요.

쾅쾅! 쾅쾅!

알았어요. 그만 두드리세요.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프랑크 파블로프Franck Pavloff의《갈색 아침》은 시집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쉔Cheyne 출판사에서 1998년 12월에 출판된, 책 전체가 12면짜리 짧은 우화소설입니다. 책 제목 《갈색 아침Matin Brun》의 ‘갈색’은 대번에〈갈색 제복Chemises brunes〉,나치스의 돌격대Sturm Abteilung (S.A.) 갈색 셔츠 당원을 연상케 합니다.

2002년 불란서 대통령 선거 때의 일. 현직 대통령인 우파의 자크 시락과 현직 국무총리인 좌파의 리오넬 조스팽이 2차 결선투표에 올라갈 것을 전 세계의 누구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1차 투표결과는 조스팽이 탈락하고 근소한 차이로 인종차별주의자, 파시즘 옹호자인 극우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 펜이 자크 시락과 함께 결선투표에 올랐습니다. 일요일인 1차 투표 날 조스팽의 지지자들인 젊은이들이 조스팽의 1차 투표 통과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나 하나쯤 선거에 불참한다고 무슨 큰 일이 생기겠나 하며 놀러 가버린 것입니다. 프랑크 파블로프는 이런 사소한 실수들, 그러나 결과는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나아가서 사회와 나라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들을 〈사소한 비양심적인 타협 행위들petites compromissions〉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1차 투표 후 누군가가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했는데 삽시간에 불티나게 팔려나가 단시일에 밀리언셀러가 됐습니다. 결선투표에서는 좌파 사회당이 우파 자크 시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고 우파 자크 시락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갈색 아침》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사회, 한 가지 생각만 통하는 세상, 갖가지 검열을 통해 집권자에게 불리한 정보가 통제된 사회, 개인의 선택이 제한된, 개인들의 자유를 속박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는 이 책에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는 앞에서 말한 〈사소한 비양심적인 타협 행위들〉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불행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귀찮게 여겨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저지릅니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불행이 실은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일 수 있는데 그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내 ‘치명적인’ 불행을 다른 사람들이 ‘사소한’ 불행으로 여겨 모르는 척 넘어가, 내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불어판 원저작에는 삽화가 없습니다. 한국어판에 있는 삽화는 러시아어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12면 책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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