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응 서정시학 서정시 107
이하석 지음 / 서정시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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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진 돌을 주워 ‘동풍’이라 이름 짓고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 - 꼿꼿하게 휘는 - 겨울, 대나무들.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대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며 안간힘 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일어나 제 온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

(이하석, 《상응》, 서정시학, 2011, 29면)

 

*동부새 : 농촌에서 동풍을 일컫는 말. 특히 첫가을 동풍을 ‘강뫼바람’이라 한다. 동풍의 뱃사람 말은 ‘샛바람’

**상기 : 아직

***소소리바람 : 이른 봄에 살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맵고 찬바람. ‘소소리 + 바람’ 짜임새로 ’높이 휘몰아치는 바람‘이란 뜻도 있어 ‘회오리바람’이라고도 한다.

 

“어느 날, 청도 냇가로 탐석探石을 나간 화자/시인, 대나무 무늬가 박힌 문양석紋樣石을 발견합니다. 문양석 속으로는 대나무와 함께 그 대나무를 ‘꼿꼿하게 휘게 하는 동부새, 소소리바람, 동풍도 함께 들어가 박혔습니다. 바람들에 쓰러지는듯하지만 이내 마디마디로 일어나는, 쉴 새 없는 대나무의 푸른 물음들, 언제라도 기죽지 않는 대나무의 잎사귀들, 온갖 바람에 맞서 온몸으로 추는 칼춤도 문양석 속에는 선명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양석 속의 대나무, 자기를 빗자루로 만들어 돌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쓸어내고 있습니다.

대나무와 그 주변의 삶이 따라 들어간 수석壽石의 세계, 염결하면서 서늘합니다.”(정승옥)

 

[더 읽기]

 

품격 있고 단아한 시어/시문을 벗어나지 않으며, 구체적인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는(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지만) 시를 쓰는 송재학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이 시의 시안詩眼으로 ‘두근대는’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동부새 뿐 아니라, 소소리바람, 동풍, 나아가 겨울 전체를 꾸민다고 했습니다(시집 65면). 동부새나 소소리바람, 동풍이 모두 바람이고 화자가 제안한 수석 안 풍경의 계절이 겨울이기에 겨울까지 꾸민다는 송 시인의 해설은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두근대는’은 동부새를 꾸미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

 

이 세 가지 바람이 대나무를 휘게 합니다, 꼿꼿하게.

 

겁 많고 수줍은(속속들이 두근대는)/ 여전히 기죽지 않고 사나운(상기 성깔 남은)/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생물계의 성품들을 세 바람을 불러내 맡긴 것 아닐까요. 소소리바람은 그렇다 해도 같은 바람인 동부새와 동풍을 굳이 갈라낸 것을 보면 어떤 고의성이 엿보입니다.

 

이하석 시인은 자연과 나, 자연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꿈꾸고 시작을 통해, 자기가 쓴 시안에서 양자 간의 소통을 읽어내려 애씁니다. 이 시인은 자연에 비해 사람이 왜소한 존재라는 것은 진즉 알았기에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자연을 닮으려 애쓰는 것으로 족해 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 시를 인간세계에 대한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자연세계의 모습 그 자체로 읽고 싶습니다. 빛과 그림자는 사람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도 스며있는 듯합니다. 두근대고 성깔 있고 명랑한 것 뿐 아닙니다. 안간힘으로 버티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한쪽으로 쓸리기도 하고 서걱대기도 하며 카랑카랑하기도 합니다. 비탈에 서기도 하며 바람을 감싸 안으려하는가 하면 “온몸 흔들며 안간힘 하며” 날카롭게 칼춤을 추기도 합니다. 쓸어내야 할 죽음의 어둠도 자연의 세계에는 존재합니다.

 

다시 한 번, 빛과 그림자.

 

젊은 시인

 

백지 같지만 아주 희진 않고

황촉규마냥 솟아 큰 꽃 환히 피울 듯 고개 들고 두리번거리며

무엇에건 잘 슬피 물들고, 그래도 늘 깨끗하게

보인다, 본다.

 

절망도 젊은, 약은 점쟁이 같으니라구.

그의 언어는 가슴에서 나오다가 어깨를 돌아 날이 서서

우리 뒷덜미 치며 바람처럼 머리칼 흩뜨린다.

어떤 말이든 무슨 강이건 막말로 맨몸으로 건너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하석, 《상응》, 서정시학, 2011, 40면)

   

“백지 같지만 아주 희진 않고

황촉규마냥 솟아 큰 꽃 환히 피울 듯 고개 들고 두리번거리며

무엇에건 잘 슬피 물들고, 그래도 늘 깨끗하게

보인다, 본다.”

 

순도 100퍼센트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삶의 때가 약간 묻었을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촉규 꽃처럼 환하게 활짝 피었다 싶으면서도 세상 물정에는 아직 한참을 멀었다 싶기도 합니다. 감동도 잘하고 눈물도 많지만 이해관계를 떠나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세상을 보고 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도 합니다.

 

“절망도 젊은, 약은 점쟁이 같으니라구.

그의 언어는 가슴에서 나오다가 어깨를 돌아 날이 서서

우리 뒷덜미 치며 바람처럼 머리칼 흩뜨린다.

어떤 말이든 무슨 강이건 막말로 맨몸으로 건너간다.”

 

첫 행이 재미있습니다. 젊은 절망이니 바닥없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머지않아 벗어날 절망이고 약은 점쟁이이니 치명적인 앞날을 예고하나 (복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헤쳐 나갈 길을 알고 있습니다.

젊은 시인의 시어/시문, ‘초고草稿는 가슴에서 만들어져 따뜻하고 감성적이나 퇴고推敲과정을 거치면서 “날이 서고 뒷덜미를 치며 바람처럼 머리칼을 흩뜨”리는 시문, 막말 수준으로 거칠기도 하지만 꼿꼿하고 거침없는 완성본으로 만들어집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 무엇도 이해 못할 게 없다는 듯,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없다는 듯, 이제 그의 시는 관조적이 되었고 세파에 초연해지고 무슨 일에도 놀라는 일이 없게 됐지만 그게 눈이 밝아지고 시야가 넓어진 덕분이 아니라 삶의,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탓입니다.

 

젊은 시절, 다신 되찾지 못합니다.

 

(같은 글을 네이버 블로그 <정승옥의 활과 리라>에도 올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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