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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ㅣ 네버랜드 클래식 24
L.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어릴 적에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던가?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엘튼 존의 'Good bye, yellow brick road'라는 노래만 생각나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 안읽고 어디 요약본으로 줄거리만 훑은 게 틀림없다. 영화도 본 기억이 없으니 이 책은 아이에게 읽어준다는 구실로 사실은 내가 읽고 싶어 꺼내든 책이렷다.
2월부터 근 한달에 걸쳐 읽어주었다.(한달에 걸쳐 읽어주고 독서일기도 한달에 걸쳐 썼으니 작가는 나에게 상이라도 주라.) 길어서 다른 책 읽다 꺼내들고, 또 꺼내들고를 몇번이나 했다. 매 장마다 단일한 사건이 나오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결말(도로시 집에 돌아가다)을 향해 가는 구성이라 한 장씩 끊어서 읽어주기 좋다. 한마디로 일일연속극 같은 구성이다. 오늘 내용만 봐도 재밌고, 끝날 무렵엔 '내일도 또 봐야지'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서양의 장편동화 구성을 보면 잠자리에서 한 꼭지식 이야기를 읽어주는 그들의 문화가 보인다.
1. 제목 번역이 이상하다
이 책을 이전에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오즈의 마법사>라는 제목을 막연히 '오즈라는 장소에 사는 마법사'나 '오즈가 가지고 있는 마법사'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는 장소나 소유의 관계를 나타내니까. 그런데 읽다보니 오즈가 장소도, 사람도 아니고 마법사의 이름이다. (그래, 나 무식하다. 난 오즈의 마법사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ㅠㅠ) 원제도 'The wonderful wizard of OZ'로 되어 있다. 그럼 '오즈라는 마법사', 즉 '마법사 오즈'로 해야 되지 않나? 이런, 'of'라는 전치사를 '동격' 이 아닌 '소유격'로 번역했구나. 왜 그랬을까? 아마도 수십년 전 처음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성문종합영어(?)로 공부한 번역자가 of를 기계적으로 '의'로 해석했나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워낙 유명해지니까 그 뒤에 번역자들도 그냥 그대로 놔뒀나보다. 찾아보니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최인자의 번역만 '위대한 마법사 오즈'라고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다.
2. 편집이 아쉽다
내가 본 책은 초판 4쇄본인데도 단어가 빠지거나 문맥이 이상하고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있다(p.194 마지막줄 '양철 나무꾼이 작은 침착하게 따라했다' 같은 문맥상 잘못된 것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이 편집진의 실수다.
한편, 덴슬로우가 그린 삽화는 당시 인쇄기술의 한계로 요즘 나오는 그림에 비해 수수한 편이지만 이야기를 따라 상상력을 펼치기엔 참 좋은 그림인데 그림과 글자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가령 203쪽을 보면 도로시와 문지기의 대화가 나오는데 정작 삽화는 오즈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이런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이건 번역된 후 글자 길이가 달라져 원래 삽화가 들어가야 할 곳과 내용을 잘 맞추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편집진의 실수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매끄럽지 않아 읽는내내 불편하고 버벅댔다. 실망이 크다. 시공주니어라는 노련한 출판사에서 4쇄 본을 찍을 때까지 이런 것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3. 책 내용 중에서
p.137
에메랄드시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게 초록색이라는 데 삽화는 붉은색이라 처음엔 이것도 편집진의 실수인지 알았다. 아이한테도 '이 부분은 그림이 좀 잘못된 것 같은데...' 하며 읽어줬는데 나중에 보니 초록색 안경을 끼고 있어서 그렇게 보인 것이라는 오즈의 설명이 있다. 오즈의 마법사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내 무식이 들통나는 순간이다.
p.159장 <제 12장 못된 마녀를 찾아서>
오즈가 도로시에게 못된 마녀를 죽여야지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도로시 일행은 못된 마녀를 찾아간다. 이 장에서는 허수아비가 까마귀의 목을 비틀고, 벌떼가 독침으로 소는 등 무섭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는 마지막에 마녀가 녹아 없어지는 부분에서 아주 좋아했다. 분명 잔인한 장면들인데 좋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로알드 달 작품을 너무 많이 읽었나보다. 로알드 달의 작품에 자극적인 게 좀 많은가.
p.192
허수아비가 에메랄드 시를 향해가다 투덜대며 말하는 부분,
"우리는 길을 잃은 게 분명해. 빨리 길을 찾아서 제때에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지 못하면, 나는 영영 두뇌를 얻지 못할 거야."
이 부분에서 아이가 지적한다. '왜 제때 가야해? 그런 말 없었잖아?'
생각해보니 아이 말이 맞다. '언제까지' 에메랄드 시에 도착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으니 '제때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내용이거나 번역이다.
4. 꿈과 희망, 재미에 철학까지, 가장 이상적인 아동문학
딱딱한 번역이나 편집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용만 봤을 때, 이 책은 가장 이상적인 아동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에서 그릴 수 있는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통해 어린이가 맘껏 꿈꿀 수 있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게다가 철학도 있다. 제15장 <무서운 오즈의 정체>에서 마법사인 줄 알았던 오즈가 사기꾼으로 밝혀지지만 그래도 오즈가 제시한 해결책으로 도로시 일행은 저마다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데 이 부분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두뇌를 원했던 허수아비에게,
"지식을 가져다 주는 것은 경험뿐이란다. 너는 많은 일을 겪으며 날마다 무언가를 배우고 있으니 두뇌가 필요없단다."
용기를 원했던 사자에게,
"네겐 이미 용기가 있어. 다만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너한테 필요한 건 자신감이야. 위험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은 없어. 진정한 용기는 두려워하면서도 위험과 맞서는 거야."
마음을 원했던 양철 나무꾼에게,
"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네가 그걸 안다면 마음이 없는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길 거야."
옮긴이의 말을 보니 이 책에는 <명랑한 분위기와 유쾌한 유머, 어린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철학>이 곳곳에 배어 있단다. 재미와 철학이 있는 건 확실한데, 명랑과 유머는 별로 못느꼈다. 틀림없이 번역탓이리라.
이 좋은 책, 아이야 나중에 꼭 같이 원서로 읽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