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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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추·미·스 혹은 오컬트나 공포 장르를 가장 좋아하는 반면에 가장 크게 거리감을 느끼는 장르는 SF나 판타지 장르다. 독자적인 세계관이나 특수한 설정에 대한 이해를 조금 귀찮아(?)하는 편이고 쉽사리 몰입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오컬트를 좋아하는 주제에 SF나 판타지가 현실과 너무 괴리된다고 느끼는, 이런 다소 모순적인 취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시간의 끝》은 이런 상충하는 나의 취향을 저격하고야 말았다. 무려 형사와 수학자와 교주가 동시에 등장하고 마는데 '수학자'에서 덜컥 겁이 난 수포자(본인)도 끝까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현실화된 세상. 하늘에는 부서진 달의 파편들이 떠있고 이계에서 정의할 수 없는 삿된 존재들이 현실에서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세상의 혼란을 틈타 각종 사교도가 횡행하며 사회는 끝을 향해, 종말을 향해 가속도를 내며 치닫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교도수사과 형사 천수영, 수영의 배우자이자 수학과 교수인 이지호, 그리고 불명의 사교도 교주라는 세 인물의 시선을 교차하며 《시간의 끝》 속 아포칼립스를 그려내고 있다. 이 절망적인 세계관에서 서로 다른 입장의 인물들이 '사교도'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이는 손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일으킨다. 






 이야기의 핵심 축인 '사교도'의 행태가 특이하고도 흥미로운데 바로 가장 대척점에 존재하고 있는 수학과 오컬트를 한데 혼합했다는 점이다. '틸링해스트 수학'을 중심으로 그 풀이와 수식을 통해 궁극의 진리에 통달한 이들은 '2차 시간'이라는 다른 차원을 깨닫게 되며 이를 통해 시간의 끝,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끝'을 향해 인물들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하고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라는 개념은 서서히 미묘하게 붕괴되며 혼란스러워지고, 선형적인 1차 시간과 비선형적인 2차 시간이 교차하며 인물 자체의 피아식별도 확신할 수 없게 돼버린다.





 오컬트처럼 기묘한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수학과 물리, 과학적인 상상력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오묘한 색채를 지니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칠판 가득 수학 공식과 그래프를 판서하면서도 주술진을 피로 그려내고 명상과 함께 주문을 외우며 궁극의 상태에 도달하는 장면은 이질적인 두 소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인 시너지를 발휘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현실에서 일어난 오컬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기이한 현상들과 같은 비과학적 현상을 '틸링해스트 수학'이라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학적 요소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 또한 설정에 현실성과 개연성을 부여하는, 의외로 케미(?)가 좋은 상호보완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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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한 줄기 직선이 아님을 인정하면 인과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인과가 없으면 책임도 없고 잘못도 없으며, 삶도 죽음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앞에 있는 원인을 따르는 결과로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어떤 존재에도, 사건에도 원인이나 결과는 없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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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이 오는 순간까지, 저는 그걸 막을 방법을… 올바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여러분 하나하나가 저를 찾아오실 때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종말의 시대에도 사람답게 살아보자고요." 

 "더운물에 목욕하고 지붕 아래 자고 삼시 세끼 먹으면 그걸로 사람다워집니까?" 

 다들 조용해진다. 나는 더욱 힘주어 말한다. 

 "끝도 사람답게 맞이해야 사람답게 산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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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칼립스, 종말, 사교도 등 말초적인 소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담론도 이끌어낸다. 종말론적 예언을 받아든 인간들이 남은 삶을 두고 삶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블록 우주'라는 개념을 통해서 '인과율'을 정면으로 깨부수며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지,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리게 만드는 운명론적 결말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다. 말초적인 장르적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 실존에 관한 철학적인 화두까지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점이 《시간의 끝》이 선사하는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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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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