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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본새 나는 양장본,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인비인'이라는 제목, 《혼모노》로 4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작가의 명성보다도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기담집'이라는 타이틀. 괴담과 기담을 넘나들며 기묘한 이야기라면 쉽게 사로잡히고 마는지라 도착한 책을 집어 들고 다소 게걸스럽게 (…) 읽었다. 보통 이 분야의 강자인 일본 장르 문학 속 기담 혹은 괴담에서는, 으레 등장하곤 하는 유령이나 귀신, 기이한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대하곤 하는데 《인비인》은 그 관성적인 기대를 다소 우회한다. '인간 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는 공포류의 오랜 명제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간 아닌 인간.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수나 AI일 수도 있고 귀신 혹은 신일 수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p.51, <인비인> 작가 해설 중에서
총 아홉 편의 이야기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세 가지 챕터로 세 편씩 묶여있다. '어제'는 친일을 도모했던 자들의 이야기, '오늘'은 현재에서 소외 당한 자들의 이야기, '내일'은 이미 도래한 혹은 도래할 AI 인공지능과 관련한 이야기로 다소 거칠게 요약할 수 있겠다. 각 챕터마다 제공되는 작가의 플레이리스트를 큐알 코드로 함께 하면서 읽는 동시에 듣는,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고, 각 단편마다 작가의 해설이 함께 있기에 작가의 집필 의도나 작품의 의의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보통의 기담이 현상에 대한 해설과 해석이 생략된 채, 불가해한 영역을 남기며 불쾌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맥락에서 《인비인》은 명확하기 때문에 쾌청하다. 물론 작품의 내용 자체는 그렇지 아니하지만….

어떤 작품이 가장 기묘하느냐고 묻는다면 표제작인 <인비인人非人>을 꼽을 수밖에. 일제강점기 시대, 731부대의 생체 실험에 관한 내용으로 '가타마리(덩어리)'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묘사되는 그 물리적 실체도 끔찍하게 느껴지거니와 그 존재가 잉태된 상태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과 말끔하게 소거된 인간성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무력함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영화가 될 만한 것은 이것 말고도 차고 넘친다(p.48)'며 원고를 파쇄기에 넣어버리는 무감한 화자의 역사적 인식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비참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요시무라 히사토와 이시이 시로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다는 작가 해설을 읽고 나면 역시 현실보다 더한 공포는 없지 않을까 싶어진다. 가타마리는 인비인의 가시적인 무엇일 뿐, 인비인은 행한 자와 무감한 자들 일 테다.

<인비인>이 내용 그 자체가 기묘했다면 작품을 읽고 생겨난 마음이 기묘했다고 해야 할 것 같은 작품은 <아미고>. '내일' 챕터에 속해 있는 <아미고>에 등장하는 피지컬 AI, 즉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내용이 그렇다. <아미고>에서는 스턴트맨인 주인공을 대신하여 '야키마 H1'이 다분히 '인간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언캐니'한 정서가 다소 복잡한 마음을 일게 한다. '당신은 무사할 거예요, 아미고.(p.216)'라고 말하던 야키마 H1의 묘한 대사를 곱씹으며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던 비인간적인 존재 '아미고'가 인간을 향해 행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두고 '인간성'이란 대체 무엇인지, 인간에게만 국한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연 본질적으로 인비인은 무엇인가.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p.229 <아미고>

어설프게 닮으면 불쾌하고, 보다 우월하면 경이롭지만, 구별되지 않으면 공포스러워진다.
p.280 <고蠱>
인간 아닌 인간. '인비인'의 의미를 내내 생각해 본다. 결국 '인간'에 대한 정의를 뒤흔들게 만들고야 만다.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오늘' 파트에서 다루는 인간 또한 도구적으로 소비되거나 쉽게 대체되고 현재에서의 존재성이 얄팍하다.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기준점으로서의 인간성은 현실 세계에서도 생각보다 빈번하고 쉽게 무너진다. 인간이 아니면 인간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끝까지 '인간'이 붙는 '인비인'이라는 단어가 건조하고 불쾌한 농담처럼 들린다. '인간이 아닌' 것까지 결국 인간이 되고 말아버리는, 인간에 대한 서늘하고 불쾌하며 기묘한 한 권의 농담.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