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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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소설을 손에 쥐어들면 반사적으로 손에 땀이 고입니다. 분명 활자를 읽는 것에는 무리가 없지만 정녕 읽은 것이 맞나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왕왕 있거든요. 내가 놓친 행간에 의미가 영원히 우주를 떠돌 것만 같은 그런 기분. 황량한 낭패감 속에 혼자 남겨져 감응하지 못하는 무감한 스스로를 주섬주섬 추스르고는 합니다. 그런고로 이번에도 약간의 그런 긴장을 지레 집어먹고 《너의 나쁜 무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설렘도 살짝 추가할 예정인데요, 한국 문학을 잘 모르는 저도 '예소연' 작가와 작품은 여기저기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거든요.





 《너의 나쁜 무리》는 각기 다른 지면에 실렸던 총 7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표제작인 <너의 나쁜 무리>는 '유선'과 유선의 할머니 '여사'가 등장하는데요, 일면 발랄해 보이는 여사는 끊임없이 연애라는 소동을 일으키고, 유선은 이를 목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사는 유선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유선은 그 말에 반발심만 느낄 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유선은 여지없이 여사의 연애 소동에 연루되고 맙니다. 그리고 유선은 목장갑을 끼며 말해요, "이제부터 우리는 한패야."(p.111) 어딘가 불건전해 보이는 조손 관계는 스멀스멀 가지를 뻗어, 여사의 연애 상대인 현구 아저씨와 유선의 썸남인 이해신과 함께, 그런 '나쁜 무리'가 되어버립니다.





 여사와 유선은 조손 관계지만 서로의 연애담을 무람없이 나눌 정도로 거리낌이 없습니다. 둘의 관계는 애증이라는 단어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느껴지고 특정한 단어로 쉽사리 정의될 수 없어 보입니다. 이런 관계성은 다른 단편들에서 마주하는 인물들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들을 아우르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서로 관계를 '맺는' 능동적인 행태라기보다 서로 관계에 '연루'되어버리고 마는 그런 느슨하지만 또 어딘가 비뚜름하고도 비대칭적인 관계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런 관계의 인물들은 뒤뚱뒤뚱 어디론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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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소란한 속삭임>이라는 단편이 참 좋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소음을 발생시키던 사람에게 일갈하던 시내는 뜬금없이 모아에게 '속삭이는 모임'을 제안합니다. 이 모임의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그들은 명동역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수자도 포섭하고요, 층간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시내가 주장하는 시내의 윗집 이웃 두리도 이 '속삭이는 모임'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모임은 말 그대로 서로 속삭이는 모임인데요, 별달리 의미 없어 보이는 사실들을 그저 속삭였을 뿐인데 희한하게 마음 어딘가가 동요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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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p.129, <소란한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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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모아, 수자, 두리. 이들 모두는 우연찮게 조우합니다. 완벽한 타인들이 얼렁뚱땅 모여 어느새 마음을 속삭이기 시작해요. 어쩔 수 없이 연루되어버린 관계 속에 모아는 서로가 서로의 고통에 무의식적으로 감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던히도 삐걱거리는 그들의 관계지만 삐걱거리면 삐걱거리는 데로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흘러갑니다. 심지어 그 궤적, 꽤나 근사한 꼬리를 남깁니다. 바로 느슨한 연대라는 형태로 말이죠. 더불어 수자 씨의 유쾌한 너스레는 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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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만큼 아픈 사람이 없다는 걸 모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모아는 시내와 수자, 자신 모두 마음 깊숙이 어디 한 군데가 단단히 틀어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서로를 감지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p.157, <소란한 속삭임> 




 여러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성은 불완전합니다. 미움과 애정을 동시에 품고요, 관계 속에서 탈출을 갈구하면서도 다시 돌아오죠. 낯선 타인이 허무한 평화 속으로 침투해 균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두 기꺼이 그것을 곁에 둬요, 기꺼이 연루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의아해하며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함께 가는 겁니다. 타인에 대한 경계가 유난한 저로서는 다시 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구석입니다. 빗장을 조금 느슨하게 걸어놓고, 타인이라는 불가해한 우주를 부유하며 느슨하게 연루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기꺼이 '나쁜 무리'에 일원이 되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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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를 한 줄로 평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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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성긴 관계'가 주는 적당한 거리감 덕분에 말하지 못했던 근심을 가볍게 툭 던지고 털어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밀도 높은 관계에서는 차마 털어놓지 못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던, 다소 상쾌하기까지 했던 그런 관계도 있었지요. 연대란 것이 결코 단단한 결속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느슨한 연결에서도 우리는 기꺼이 연대할 수 있다는 옅은 따사로움을 감각해 보며 한 줄 평을 써보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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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한 우주 속에 느슨한 해먹을 걸어놓고

함께 유영하는 방법에 대하여



 어렵습니다. 책을 읽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최대한 활자로 옮겨보려고 했는데요, 쓰고 나니 어쩐지 갸우뚱만 오백 번 하다가 스리슬쩍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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