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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지은이'는 모르는데 '엮은이'와 '옮긴이'는 알고 있습니다. '바바라 몰리나르'는 모르지만 '마그리트 뒤라스'와 '소설가 백수린'은 안다는 말이죠. 잇따를 감상을 예견하듯 희한한 첫인상이었습니다. 바바라 몰리나르는 뒤라스의 친구였고, 글을 썼습니다만 쓰는 족족 찢어버립니다. 무려 8년 동안 그랬다고 하는데요, 보다 못한 그녀의 남편과 뒤라스가 그녀를 설득해 원고를 모아 출판한 것이 이 책,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라고 합니다. 원제는 '와줘, 오라, 와'라는 의미의 《VIENS》이고, 영문판은 '극심한 공포, 공황'이라는 의미의 《Panics》입니다. 각 제목 간에 의미 차이가 굉장히 크지 않나요?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죠.

바바라 몰리나르가 평생 유일하게 남긴 이 소설집은 사실 굉장히 난해합니다. 소설들은 대체로 다짜고짜 불가해한 어떤 상황 속에 뚝 떨어지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도시를 방황하거나 혹은 불명한 초대를 받고 기이한 고행을 겪기도 하죠.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지하로 깊이 침잠하거나 도달하지 못할 지상을 계속 오르기도 합니다. 얼굴이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잘린 손을 들고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초현실적이고 아방가르드하지요? 저는 초반에 읽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습니다.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늘어뜨린 채 여자는 시간에 자신을 맡겼다. 그녀가 잘 아는, 그러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하는 이 죽은 시간 속에. (…) 하지만 또 생각했다. 내일은 다시 시작해야만 하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매일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p.22,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기괴한 요소들의 비일상적인 묘사가 꽤나 불편합니다. 주로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가운데 폭력적이거나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거든요. 그리고 불현듯 끝나버리기 일쑤이고요. 작가는 마침표로 끝을 냈는데 독자는 물음표로 시작합니다. 그런 물음표를 내내 물고 가다, 문득 뒤라스의 서문이 다시 떠올랐어요. 바바라 몰리나르는 자신의 글을 모두 찢어버렸다는 것. 그러니까 책으로 묶인 이 글들도 뒤라스가 아니었다면 찢어질 운명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러니까 이 글들은 '읽혀지기' 위한 글이 아니라 '찢어지기' 위한 글인 겁니다. 애초에 독자를 상정하지 않은 글이고 읽혀지고, 이해하고, 해석되기 위한 글이 아니니 너무나 당연하게 읽기가 난해했던 거죠.
그녀가 써 내려간 글들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강박적이고 때로는 망상적이기도 합니다. 현실을 초월하는 전개와 묘사는 한 편의 환상적인 악몽 같기도 해요. 광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독하고요. 뒤라스는 서문에서 이런 말도 했는데요, '이 책에 실린 글을 지어낸 것도 꿈을 꾼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살아낸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살아낸 것에는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다.(p.11)'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바바라 몰리나르가 삶에서 마주한 불가해한 총체의 기록이었고 '쓰기'라는 행위는 그런 것으로부터 살아내고자 했던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바바라 몰리나르는 왜 그런 자신의 원고를 박박 찢어버렸을까요?

언젠가 심리학 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부정적인 감정을 종이 옮겨 적고 구겨서 버리거나 찢어버리면 심리적으로 완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 '외현화'라고 한다네요. 바바라 몰리나르가 자신의 원고를 찢어버린 것도 그런 심리적 기전에 따른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불안·광기·폭력·우울·고독·권태와 같은 삶의 기록을 찢어버림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일종의 해방을 맞이하는 것이죠.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찢는 것도 세심하고 특정한 방식(p.9)으로 이루어진다는 뒤라스의 전언도 이를 뒷받침할 것 같고요. '쓰고 찢는 행위'는 바바라 몰리나르에게 일종의 의식(ritual)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파기되지 못하고 남은 불가해한 총체의 기록, 해소되지 않고 남겨진 환상적인 악몽의 집합을 텍스트로써 읽어 내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읽으면서 느껴지는 심오한 정서, 감정의 동요, 불온한 심상을 감각하며 읽는 것이죠. 초반에 느꼈던 위화감은 어느새 잦아지고 어느덧 이 기묘한 차원의 세계로 스며들게 됩니다. 찢어지지 못하고 남아버린 불온한 총체의 기록은 독자에게 전가되어 확장합니다. 독자는 그 비틀린 세계를 거울삼아 자신만의 무엇을 읽어내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번에 이를 파기하는 역할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죠.
내게 말해준 건 그 사람이다. 저기 보이는 것이 지상이며, 지상이 곧 천국이라고.
어떻게 그를 믿겠는가?
나는 절대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p.122, 아버지의 집
솔직히 어렵습니다. 방금 내가 읽은 것이 맞나 싶어서 행간을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고요, 소심한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뒤라스의 서문과 대담, 옮긴이의 말, 출판사의 책 소개, 책에 따르는 추천사까지를 두세 번 정도 정독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책을 이해하는데 책 밖으로만 나가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갈피 해놓은 문장과 문단, 제목과 작가, 정서와 감상을 곱씹으니 투명했던 감상의 윤곽이 얼핏 보이기도 했죠. 그 찰나를 잡아 횡설수설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흐리멍덩한 유령 같은 잔상이지만요.

이쯤에서 처음에 언급했던 제목을 살펴보며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와줘, 오라'는 뜻의 원제 《VEINS》는 작품 속에서 인물을 추동하게 만드는 존재가 건네는 말입니다. 이 목소리의 초대, 요구, 약속을 쫓는 인물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방황하죠. 고로 '고통'을 야기하는 근원적인 욕망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영문판의 제목인 《Panics》는 좀 더 직관적입니다. 책 그 자체에서 서술하고 묘사하는 상황과 모든 것이 모두 패닉적이거든요. 그리고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는 마지막으로 수록된 작품의 제목이자 마지막 문장인데요, 바로 그 앞에 문장을 주목을 합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p.211) '밤에 혼자 있는 나'는 곧 자유입니다. 모든 혼란과 방황이 소거되어 홀로 남은, 깊은 밤의 고요를 닮은 자유라고 말하고 싶네요.
D 허무, 그건 뭘까요?
M 그건 오히려 여기죠. 우리가 살아가는 것, 그게 허무예요. 바보짓이죠. 허무는 어디에나 있어요. 도시에도, 사람들 속에도요. 인간이란 종(種)은 더 나아져야 해요. 우리는 정말 보잘것없어요.
D 당신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죠? "제가 저답게 살려면 약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M 그래요. 저는 자신을 넘어서려 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에게 압도되지도 않을 거고요.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p.224, 지하 납골당,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기록한 작가와의 대화 (D-뒤라스, M-몰리나르)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