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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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장르와 분야를 읽자고 다짐하면서도 유난히 가까워지지 못하는 장르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시'입니다. 알고 있는 시인과 시라고 하면 중·고등학생 시절에 배운 시와 시인이 전부입니다. 사실 이것도 너무 오래전에 배운 터라 지금은 거의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죠. 시집을 한두 권 사서 읽어보기도 했지만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낭패감. 난해하고 어지러웠거든요. '그저 느끼면 된다, 감상에 정답은 없다'라고 하지만 여전히 그 세계는 다른 차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시인이 쓴 산문이라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읽어갑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에 관한 것뿐이다. 존재하는 것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듯,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p.9, 여는 글

 최지인 시인이 쓴 《일렁이는 음의 밤》의 독특한 구성이라고 한다면 각 글과 상응하는 음악이 병치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글마다 첨부된 QR코드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시각, 음악을 듣는 청각, 책을 잡은 촉각, 공간이 풍기는 후각, 커피가 주는 미각까지 함께 하며 오감으로 《일렁이는 음의 밤》을 감각할 수 있죠. 덕분에 책을 읽으며 들으며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읽고, 듣고 나니 이 모든 총체적인 감각이 딱 표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옅은 푸름이 겹겹이 덧칠해져 끝내 짙어진 푸름 속에서 고요한 사색을 나누는 기분이 들거든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사유합니다. 그런 사유를 관통하며 음악이 내내 흐르는 거죠. 결국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 스승, 지인 등과 너른 관계 속에서 파동 하는 주파수를 섬세하게 끌어올려 음악과 함께 공명합니다. 음악은 대체로 위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감상을 대변해 주기도 하죠. 시인이 글에 녹여낸 한 음절의 가사를 따라 읽으며 흥얼거리다 보면 '아 이것이 다시 '시'인가, 아 결국 '시'와 다름없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시인의 산문은 역시나 시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시라는 것은 제게 조금 달라진 의미였고요.





 '시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내게 한 선배는 '무엇이 시가 될 수 있을까' 물으라고 했다. 그 말이 '삶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삶이 될 수 있을까' 묻는 태도처럼 들렸다.

 네게 무엇이든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p.84, [너의 말투로 때아닌 여름을 불러줄게], 끝없이 울려 퍼지는 청춘의 소리, 아이묭 『청춘의 익사이트먼트』

 음유시인吟遊詩人, 거리나 마을을 떠돌며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던 이들을 이르는 말이죠, 시인인 저자는 현대의 음유시인으로써 시인의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주 노동자, 참사 유가족, 전쟁 피해자… 사회를 떠돌며 그들을 위해 시를 읊는다는 것에 대하여 사유하는 것이죠. 시대를 앓으며 계속해서 시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치유의 과정처럼 읽힙니다. 고민과 성찰, 사유와 사색, 청음과 낭송, 사람과 사람. 모든 것이 적절한 농도와 색채를 띠고 적당한 깊이로 침잠합니다. 깊은 바닷속 고요한 적막을 덮어쓰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체온이 주는 만큼의 온기로 읽는 기분이랄까요.

 문학은 시대를 구할 수 있을까. 시절이 어수선할 때 문학인은 무엇을 써야 하는 걸까. 의미와 무의미를 넘나들며 내가 다짐한 것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존재하기를 통해 실천하며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다. p.155,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악장을 연주하는 사람들], 첼로 음악을 새롭게 정의한, 파클로 카살스 『J.S. BACH: Six Suites for Solo Cello』







 지나간 시간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 어딘가에 머물다 불쑥 되살아난다. 그 밤들은 음악의 힘을 알게 했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음音에 불과하지만, 그 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이다. p.161, 닫는 글

 뒤돌아 보며 안녕하고, 앞으로 나가 다시 안녕을 건넬 바로 지금 이 계절에 읽기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일상과 삶에 여러 부침 속에 침잠하고 부상하기를 반복하겠죠. 《일렁이는 음의 밤》은 그런 삶의 기록이라 읽힙니다. 그런 삶의 장면마다 삽입할 수 있는 음악이 있는 것은 분명 제법 멋지고 근사한 일이고요. 음악이 또 그런 삶의 부침을 견딜 수 있게 변주해 주기도 하잖아요. 음악이 때로는 불명한 삶의 사건을 그대로 품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운율과 음절을 따라 마음껏 일렁이는 밤을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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