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12·3 내란 사태 이후로 매일 챙겨 보는 시사·정치 유튜브가 두세 개쯤 생겼다. 자연스럽게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관련한 정치 이슈들이 매일 새롭게 떠오른다. 근래에 가장 뜨거웠던 정치 이슈는 단연 검찰 개혁.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사법 개혁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전체적인 개혁의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기소청과 중수청의 소속 기관과 권한,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속 여부, 상대적으로 비대해지는 경찰 수사권의 견제 등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여전히 다루어야 할 논점이 많다. 대통령을 비롯해 법무부 장관, 법안을 주도하는 여당 정치인들과 관련 법조인들까지 논쟁 속으로 휘말리면서 한동안 논란 아닌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련의 과정들을 목도하며 실패한 과거를 답습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울렁거렸다.
'진범을 상대로 유죄 판결을 받는 건 어느 검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유죄 판결을 받는 건 정말 재능 있는 검사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p.24

그런 와중에 시의적절하게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을 읽고 울렁거리는 불안한 멀미를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윤석열로 대변되는 이른바 '검찰 공화국'이 그동안 자행해 온 불법적이고도 불온한 행태들은 결국 불법 비상계엄, 12·3 내란 사태에 이르렀고 이는 검찰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검찰 개혁을 두 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형사 사법 체계를 바라보는 우물 안 시야를 벗어나자는 것(p.7)과 둘째, 검찰 제도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인간의 발명품이며 계속 변화하는 현재진행형 제도라는 사실(p.8)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의 형사 사법 체계의 실태와 문제점을 윤석열 검찰 공화국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동시에 세계 여러 나라의 형사 사법 체계를 들여다보고 비교하며 검찰 개혁의 대안과 방향의 제도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역시 가장 큰 골자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현시대에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우리나라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견제 받지 않는 집중된 권력이 어떻게 한 나라를 도륙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여러 나라의 과거 형사 사법 체계에서는 이미 그러한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여러 제도적인 장치들을 계속해서 도입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한계점들을 보완하며 형사 사법 체계를 발전시켜온 역사가 있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예심 판사'는 법원 소속이나 재판에 관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수사만을 관장한다. 수사 활동에 필요한 압수수색이나 증인 심문, 통신 감청 등의 권한을 가지며 하나의 독립적인 사법관이다. 이때의 기소 결정 여부는 검사가 가진다. 영국의 경우에는 경찰이 수사와 기소 권한 모두를 가지고 있었는데, 무고한 소년들이 옥살이를 하게 된 '맥스웰 콘페이트'사건을 계기로 1986년에야 기소권이 독립되어 기소청이 설립되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만으로 끝일까? 아니다. 기소권은 여전히 막대한 권력이었고 기소권을 가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제도들도 각국마다 다양했다. 미국의 대배심 제도는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시민들이 검사가 제시하는 근거를 바탕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있고,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역시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검찰이 내린 불기소 처분의 타당성을 심사한다. 특히 이 제도는 기소의 영역이 아닌 불기소의 영역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검찰이 고의로 누락할 수 있는 사건의 사각지대까지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외에도 독일에서는 법왜곡죄를 통해서 특정인에게 부당한 이익 혹은 불이익을 고의적으로 행한 법관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사법 독재는 법치라는 미명 아래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법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민주주의를 초월하는 이념이 아닙니다. 헌법이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등 법치의 예외를 둔 것은 판검사가 법을 악용해 선출직 공직자를 탄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p.263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두드러졌던 부분은 바로 법치에 작용하는 민주주의.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으로 검찰을 비롯한 사법의 권력을 견제하는 예시는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미국의 대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회 외에도 미국에서 전개된 진보적 검사 운동이나 검사 선거 제도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나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신성하게 부여된 절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검찰과 사법을 견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국민이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을 선출할 권리를 제거하고자 대선 결과에 개입하려 시도했던 조희대의 사법 쿠데타는 법치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무시한 아주 오만하고도 적절한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불소추 특권은 대통령이 된 '어느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뽑고 그의 원활한 대통령직 수행에 이해관계를 갖는 '국민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르 교수는 이 점을 더 선명한 비유로 강조합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보다) 국민 대표성이 떨어지는 이들(판검사)이 나라 전체를 인질로 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p.190

나를 비롯해 여러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검찰 개혁이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졌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를 읽으면서 피상적으로 느껴졌던 많은 부분들이 해갈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닌 것 같은 막연한 물음표에 쉽고 친절한 톤의 느낌표를 달아주는 것이다. 특히 나는 그들의 권력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한 까닭에 마치 신성불가침인 것인 양 휘둘러댔던 그 권력을 이제는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국민주권이라는 것을 천명해야 한다. 법이라는 권력으로 헌법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그 모든 비뚤어진 권력을 견제하고 다시 재건해야 하는 것이다.
수사기소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말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믿어 달라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권한의 오남용을 견제할 충분한 장치가 갖춰져 있어야 그 제도를 통과해 나온 결과를 신뢰할 근거가 생깁니다. 그런 제도 개혁 노력은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습니다. p.76
제도라는 것은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 민주주의라는 정당성의 토대 위에서 수정과 보완, 견제와 감시가 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나라의 개선된 법과 제도들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효율성이 저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연성을 가지고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끊임없이 논의할 수 있어야 하고 수정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민주주의를 초월할 수 없다. 그 권력에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없다.
독재자들이 지배하는 체제에 맞서야 한다. 그들에게 선량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체제를 요구함으로써.
_<'진보적 검찰'의 역설 The Paradox of "Progressive Prosecution"> p.211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