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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움 Ilium - 신들의 산 올림포스를 공습하라!
댄 시먼즈 지음, 유인선 옮김 / 베가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대저 판타지 혹은 SF 소설이 주는 인상은 " 겉으로 보기는 복잡할지 모르나 기실 뼈다귀는 없고 가볍고 사소할 것 같은 이야기들 " 이다. 선입견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소한 이 소설 < 일리움 > 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인상이 편견이요, 선입견이라는 것을, 최초의 서너 페이지만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은 금방 아실 터이다.
호머의 일리아드 에서 차용한 플롯을 가지고 과학소설을 구축한다는 아이디어도 참신하지만, 트로이 전투를 둘러싼 인간-반신-신들의 관계 설정을 기묘하게 뒤틀었다는 점도 저자 댄 시먼즈의 상상력을 드러낸다. (그런 왜곡으로 인해서 심지어 트로이 전쟁의 결말조차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져 있나, 싶을 정도로 열려있다... )
시-공간을 달리 하는 세 개의 스토리라인은 (많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그러하듯) 전혀 상호관계가 없는 듯 별개로 진행되다가 서서히 접점을 찾아가면서 서로 얼키고 설키며 대단원을 향해 교묘하게 합쳐진다. ( 사실 '대단원'이란 표현은 과장이다. < 일리움 >의 이야기는 그 속편이라고 할 < 올림포스 >에서 진정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알려진다. )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접점에는 일리아드 전문 학자인 호켄베리라는 인물이 있다. 어느 여신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트로이 전투의 진척을 낱낱이 관찰하고 신에게 보고하던 그는, 여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신비한 무기를 획득하면서 '수동적 관찰자'로부터 '적극적 개혁자'의 입장으로 변신한다. [ 트로이와 그리스의 전쟁에 원인을 제공했던 헬렌과 호켄베리의 섹스 및 교류는 약간 과장된 웃음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 급기야는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동맹 (!!??)에도 관련되고, 그들의 제우스 신을 향한 대반란에도 참여하게 된다.
흔히 판타지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심하고 우유뷰단한' 성격의 사내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180도 다른 성격으로 변하는 구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다.
< 일리움 >은 -제대로 그 맛을 모두 음미하기 위해서는-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만을 따라가기로 한다면 골치 썩이지 않고도 재미있게 읽혀지기도 한다. 저자가 인용하는 모든 고전 문학작품의 내용과, 그런 인용이 본문과 가지는 은밀한 연상 관계를 100% 이해한다면야, 읽는 재미가 몇 배로 커지겠지만, ( 아무한테나 그런 사전 조사라든지 배경 이해를 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 그런 치밀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끈을 놓칠 정도는 아니고 얼마든지 독서의 재미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인 욕구를 가진 과학소설 팬이라면, 댄 시먼즈의 < 일리움 > 행간에 숨어있는 문화적 코드라든가 고전작품에의 레퍼런스를 꼼꼼하게 연구해봄직하다. 더군다나 '다이제스트' 지식, 껍데기에 불과한 지식이 판을 치는 이 시대의 젊은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