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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목록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2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5월
평점 :
드라마화가 된 『살인자의 쇼핑 목록』의 원작 소설입니다. 장편소설인 줄 알고 책을 폈더니, 단편소설 모음집이더라구요. 『살인자의 쇼핑 목록』은 이 책에서 가장 처음 소개되는 단편소설입니다.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있구요. 장르는 스릴러·판타지·SF·미스터리·호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작품에 딱 하나의 장르만 있는 건 아니구요.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여러 장르가 잘 버무려진 단편들입니다. 이 모음집에서 메인의 역할을 하는 『살인자의 쇼핑 목록』도 재밌긴 했지만,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용서』입니다.
살인자의 쇼핑 목록
드라마와 달리, 원작 소설에선 주인공의 성별은 여자입니다. 캐셔로 일하고 있는 '은지'는 고객들을 관찰하는 것에서 흥미와 재미를 느낍니다.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은지는 고객들이 사가는 품목과 더불어 고객의 표정과 옷차림, 그리고 말투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추리합니다. 많은 고객 중 소설가라는 남자도 있는데요. 이 소설가는 2주마다 마트에 온다고 합니다. 그날도 소설가는 정확히 2주 만에 마트에 와서 장을 봤고, 은지가 있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합니다. 남자가 사간 품목 중엔 '애완 외날'이 있었는데,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고양이를 키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운다면 '애완 외날'이 아닌 실리콘 빗을 사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애완인 치고는 다른 애완 물품은 사지 않습니다. 아무튼, 은지는 여느 때와 같이 고객의 품목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20대 여성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살해된 흔적을 보니, 피해자의 몸에 일정한 간격의 바늘 형태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 남자가 사간 품목이 정확히 피해자의 몸에 사용됐습니다. 은지는 직감합니다. 그 남자가 범인이라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은지는 그 남자를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긴장감도 있고, 트릭도 있어서 속도감 있게 읽은 작품이에요. 재밌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제목의 뜻은 작품 내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보자면, 【깜냥 없이 큰 이야기를 벌여놓고 밑밥도 잔뜩인데 그걸 회수할 자신이 없는 작가가 신적인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단편소설은 그런 깜냥 없는 소설일까요? 이 작품은 미스터리·호러 장르입니다. 주인공인 '유수현'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유수현은 과 회식 중, '안다정'이라는 제자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고, 이 사건이 유수현의 인생을 바꿔버립니다. 안다정은 그날 이후 실종이 됐는데요. 취한 안다정은 유수현에게 '고독해서 아무나 따라간다'라는 문자를 남기고 그대로 사라져버립니다. 유수현은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고, 그 이후로 안다정의 시체라도 찾겠다는 심정으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한 안치소에서 만난 수녀에게서 '푸른 사향노루의 사향샘'이 담긴 '작은 향낭'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향낭 덕분에 귀신을 볼 수 있게 되죠. 귀신에게 물어가며 다정이를 찾으라는 겁니다. 유수현은 향낭을 받은 이후, 밤마다 유령 택시를 운행하게 됩니다. 오싹하면서도 심리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어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살인자의 쇼핑 목록』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덤덤한 식사
7개의 단편소설 중 가장 짧은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고양이인데요. 주인 없는 고양이의 이야기입니다. 주인 없는 고양이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굶어 죽는 게 다반사인 길거리 생활에서 결국 형 고양이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형 고양이는 유령이 되어 동생 고양이를 지켜보는데요. 형 고양이의 시선으로 전개가 되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생 고양이는 동물 병원에서 일하는 한 여자에게 기적적으로 구출되게 되는데요. 치료 도중 동생 고양이가 희귀한 B형 혈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 고양이는 그 동물 병원에서 공혈묘의 생활을 하게 되죠.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도 되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러닝 패밀리
이 작품은 SF·판타지 장르입니다. 러닝 패밀리는 게임 이름인데요.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인기가 퍼져나가고 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국어 교사 '다영'은 그런 유행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게임의 홍보 내용은 이렇습니다. 러닝 패밀리의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 때문에 현질을 하게 만드는 홍보입니다. 아무튼 다영은 그 내용을 한 귀로 흘리고, 계속해서 결석을 하고 있는 다영이의 제자인 '선우'의 집을 찾아갑니다. 선우는 반에서 은따를 당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 흔한 핸드폰도 없죠. 집도 가난합니다. 그래서 알바를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다영은 선우의 집을 찾아갔는데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합니다. 선우가 바닥에 뚫린 구멍에 끼워져 있는 겁니다. 선생님은 나오라고 소리치지만, 구멍이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어서 구급대를 부르려고 하지만, 선우가 막아섭니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하면 구멍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과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선우의 할머니도, 선우의 아빠도, 선우의 새엄마도, 아랫집 아줌마도 모두 구멍에 잡아먹혔고, 선우가 마지막 발악으로 구멍에 빠진 선우의 동생을 한 팔로 겨우 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영은 그날 제자에게서 들은 러닝 패밀리와 도시괴담, 그러니까 사람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떠오릅니다. 그 순간 오싹한 기분을 느끼죠.
소재가 참신하다고 생각한 작품입니다. 전개도 재밌구요.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살짝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은 작품입니다.
★용서
7개의 단편소설 중 가장 재밌고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뽑을 만큼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판타지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판타지가 아닌 작품인데요. 주인공은 33년간 국어 교사로 재직했었던 박혁필입니다. 과거형으로 말한 이유는, 주인공이 죽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살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다시 태어나게 돼요. 회귀는 아니구요. 환생입니다. 전생이 있는 세계관인 거죠. 저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바로바로, 갓난아이는 100일간 전생을 기억한다는 설정인데요. 박혁필은 환생해서 다시 태어났고, 자신을 '깨몽'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엄마를 봅니다. 전생을 기억한다면 이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럽죠. 젖도 먹어야 하니까요😳
그럼 환생 라이프를 즐기는 주인공의 이야기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작품 제목이 용서인 이유가 있어요. 박혁필은 고양이와 마음으로 대화를 하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100일간의 특권이 동물과도 대화를 가능하게 하나 봅니다. 아무튼, 박혁필은 처음 부임 받은 한 여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생각합니다. 산골짝이 여고이기도 하고, 그 시절은 힘든 학생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수학여행도 돈이 없어 못 가는 학생이 반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을 사랑했던 교사 박혁필은 결국, 불법 과외를 한 달간 하게 되고 그 돈으로 아이들 모두와 수학여행을 갑니다. 반장과 부반장이었던 은희와 효진은 담임인 박혁필에게 감사함을 느껴요. 박혁필은 뿌듯한 마음으로 기차에 탑니다. 그런데 거기서 쎄한 직감을 느낍니다. 은희와 효진이 심상치 않은 관계라는 것을 느껴요. 혁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합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여행은 일정대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날이 왔고, 지루한 유적 관람보단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바다를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박혁필 반의 버스만 따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요. 박혁필만 살아남습니다. 박혁필은 그 이후 죄인처럼 살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식물인간이 되어 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정말이지 뒤로 가면 갈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솔직히 전생이나 환생물은 여러 웹 소설 때문에 일반 소설로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됐는데요. 이 작품은 웹 소설에 남발되어 있는 흔한 전생과 환생물이 아닙니다. 예상이 가면서도 결국에는 소름이 돋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너무 인상 깊었고, 감동까지 있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개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학생입니다. 임조이, 박연수, 김태현, 윤서가 사건을 이끄는데요. 장르는 스릴러이구요. 4명 중 사이코패스가 있습니다. 우선, 작품 이름이 『어느 날 개들이』인 이유는, 윤리 선생님의 과제 때문입니다. 토론 과제이구요. 조원은 임조이, 박연수, 김태현입니다. 윤서는 조이의 친구예요. 토론 주제는 만약 개에게 인간과 같은 지능이 주어진다면, 개들에게도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제입니다. 의견은 임조이, 박연수 VS 김태현으로 갈리게 돼요. 박연수, 임조이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구요, 김태현은 반대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서로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건데요. 애완견은 주인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에게 불리한 상황이 왔을 경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애완견과 인간들의 비밀 폭로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거죠.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사이코패스가 누구일지 짐작이 가겠지만, 그게 다라면 재미가 없겠죠. 김태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김태현이 반대 입장을 주장하면서 저런 말을 했는지 이해 가시죠? 아무튼, 김태현의 비밀을 저 3명이 눈치채게 됩니다. 김태현의 비밀과 사건 전개가 속도감 있고, 긴장감 있게 펼쳐져서 지루하지 않게 읽은 작품입니다.
각시
이 작품은 전통 호러 장르라고 생각되는데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증조할머니가 증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입니다. 증조할머니에게는 작은할아버지가 있었는데요. 작은할아버지는 지능이 좀 떨어지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혹 같은 자식이었습니다. 그나마 힘이 좋아서 간간이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노름으로 다 날리지만요. 아무튼, 이런 사람이라 나이가 다 차도록 색시가 없습니다. 작은 할아버지인 석삼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예쁜 처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이상한 짓을 하는데요. 바로, 당산나무 제상에 있는 음식을 이 처녀가 겁도 없이 먹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음식은 함부로 먹었다간 동티가 나서 거지패조차도 제상은 먹지 않는데, 이 처녀는 허겁지겁 먹는 겁니다. 석삼은 놀라서 말리지만, 처녀는 아랑곳 않죠. 그러다 처녀의 미모를 보고 자신의 색시가 돼달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여자가 석삼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석삼의 마을은 하나 둘 누군가 죽어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통 호러 작품답게 반전이나 트릭은 없었지만, 오싹함 만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이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