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Dazed & Confused Korea A형 2021.2 (표지 : 엔하이픈) - 주요기사 : 김희재, 김선호, 엔하이픈 데이즈드 2021년 2월호
렉스트림 편집부 지음 / 렉스트림(잡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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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표지 보고 구매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화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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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나이다 1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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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엔 익숙하지 않은 유대교의 율법과 가족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이해도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됐는데 읽다보니 느낀 건 가족간에 느끼는 갈등과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거였다. 유대교를 따르는 4대에 걸친 한 집안 이야기를 주축으로 먼 나라의 독자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겠지.
사실 블록 집안을 파국으로 이끄는 요인들은 특별한 것은 없다. 특별한 악인도 없고 아이들이 특별히 빗나가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가장, 보통의 아내, 보통의 자녀들. 그러나 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자신의 한도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의 삶의 궤적이 서로에게 의도치 않는 상처를 안기며 대립한다. 또하나 미국계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사실이 갈등의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대교 율법을 어디까지 따를 것인가? 나는 미국인인가 유대인인가? 이스라엘 유대인과 미국의 유대인들은 어디까지 서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평온할 때는 모른 체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대립할 때는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결정적인 외부요인은 이스라엘을 덮친 국가적 재난과 그에 따른 주변국가들간의 분쟁이다. 1권 후반부에서는 가족의 갈등과 국가의 위기가 겹치면서 파국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2권에서는 이 긴장감이 허무할 정도로 느슨하게 풀려 버린다.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던 아버지 제이콥은 가족 곁에 남고 이스라엘은 어찌어찌 상태를 유지해 나간다. 이또한 우리 삶이 그렇듯 영화같은 파국 대신 삶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이혼하고 아이들은 독립하고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무조건전 존재론적 대답처럼 인간은 너덜너덜 상처입은 감정을 지닌 채로 살아간다. 책의 마지막은 늙은 개 아거스를 안락사시키면서 끝난다. 한 국가와 민족을 덮친 재난과, 한 가족의 해체와, 한 개의 죽음 중에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있고 고통스럽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양과 질을 따져 피해정도를 계산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소설의 힘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민족의 고통을 내 개를 보내면서 느끼는 고통으로 치환시키면서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는 데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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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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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추천. 개인적으로 인간 군상을 과찰하며 그 속물성을 가차없이 드러내는 소설을 좋아해서 취향 저격이었음. 대처시대 영국 상류사회에 대한 주인공의 조롱과 동경이 꼭 나 보는 것 같음. 역시 최고의 소설가는 최고의 관찰자인 게 맞다. 전체적 구성도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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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 AI 시대, 우리를 기다리는 섬뜩한 질문
송은주 지음 / 웨일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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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한뒤 나같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공지능같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과학에 문외한인 나도 이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감정까지 습득한다는 과학기술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고 어설프게 "기계권" 이란 말을 꺼냈다가 친구에게 충격이라는 비난도 들은 적이 있다. 기계에 의해 인간의 영역이 위험받고 있다며 어떻게 인간도 아닌 기계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냐?라는 게 친구의 힐난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기계가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학습에 의해 발전해나가는 존재라면 인간과 다른 점이 뭐냐?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런 즈음에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어려운 과학이 아닌 SF 소설 속에서 답을 찾는 이 책과의 만남은 반가웠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인공지능, 로봇, 복제인간 등을 소재로 한 SF 소설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서의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맺음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책이다. SF 소설에 별 흥미가 없을 뿐더러 쟝르문학은 수준이 낮다는 편견까지 갖고 있던 나였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 SF소설이 얼마나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반성어 시간도 가졌다...
책에서 제일 관심을 끄는 주제는 역시 "포스트휴먼"이다. "기본적인 능력이 현재의 인간을 근본적으로 넘어가버려서 더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 새로운 인간"을 뜻하는 포스트휴먼은 결국 미래의 인류이고 이 신인류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새로운 종이 될지도 모른다. '지배할 것이냐 지배당할 것이냐'라는 적대적인 이분법을 넘어 출현한 이 새로운 인류는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이렇게 보면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은 오히려 슬프게 들린다. 그것은 로봇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에게 강제된 불합리한 규율처럼 보인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나는 무조건 인간이며 나 외의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확신부터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고 인간권을 넘어 동물권, 기계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과거에 신과 왕을 끌어내렸듯이 '최고 존엄'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고 있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에 불과하다는 센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인간도 로봇3원칙의 계명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보호하고 싶다면 자신을 "원 오브 원"이 아닌 "원 오브 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문학을 "상상된 과거" 또는 "오래된 미래"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 기반해서 앞으로를 상상하고 준비하게 해주는. 결국 지금 책을 읽는 것은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서 내다보는 이중의 창을 보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이 책 뿐만 아니라 소개되는 여타의 SF소설들도 접해본다면 우리가 결국은 만들어낼 미래의 기계사회에 대한 우리의 공포심과 적의도 조금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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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2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2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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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음악평론가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1권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2권도 망설임없이 집어들었다. 1권에서 동양과 서양, 근대와 현대, 클래식과 로큰롤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음악사의 높은 산맥의 숨은 이면을 짚어주었던 터라 또 무슨 할 이야기가 남은 걸까 궁금했다. 2권에서는 좀더 세부적인 이야기들, 러시아와 조선 근대기의 혁명적 음악가들, 80년대의 문화 대폭발, 인간 이성에 대한 행복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20세기 신빈악파와 비밥의 역사가 등장한다.
어떤 장르이든 그 대상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지만 가르치려 들지 않고, 애정이 넘치지만 타 장르에 배타적이지 않으며, 뚜렷하고 일관된 소신이 있으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대단히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더구나 그가 위트있는 이야기꾼이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다.
생소하고 지금 들으면 이게 왜 대단한지 귀로는 이해가 안가는 조선음악가 동맹의 음악이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김순남의 드라마틱한 생애는 내가 영화 제작자라면 당장 영화화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한국도 미국도 가히 대중음악의 양적 질적 성장이 폭발했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당장 그 익숙한 음악들을 다시 끄집어내 새삼스레 들어보게 된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때는 진정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를 견인하고 경쟁해가며 최고의 음악들을 쏟아냈던 황금기였다. 새는 양쪽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여기에 쓰여야 한다.
모든 장이 흥미롭지만 3장 클래식어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에 대한 저자의 일침은 매서운 죽비와도 같다. 개인적으로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이 쪼그라든 것은 예전에 유행하던 컴필레이션 음반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수의 베스트 음반의 횡행은 양반이고 아무 의미도 없이 당대의 히트송들을 쓸어모아 '비 올 때 좋은 음악' 따위의 낯간지러운 타이틀을 붙여 역시 아무 맥락도 없이 인기 연예인의 얼굴을 표지에 떡하니 붙인 음반이 쏟아져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음악들을 고소영이 선곡하기라도 했나?) 조성모가 음반 백만장을 팔아치우던 좋은 시절이었는데 그런 식의 저질 음반이 돈 벌겠다고 나대는 꼴을 보고 가요계도 텄다 싶었다.
저자가 지적한 클래식계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카라얀에 실망했고 번스타인을 다시 봤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대신 왕년의 대가들을 몇십개 버젼으로 재생산하면서 결국 클래식은 스스로를 과거의 유물로 박제해 버렸다.
결국 저자가 700p 가까이 음악사의 천일야화를 통해 들려준 "전복과 반전"은 음악어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의 본질이다. 전복과 반전을 시도하지 않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다. 클래식이든 로큰롤이든 재즈든.
저자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구분을 못마땅해 하는 듯 하다. 예술에는 쟝르도 계급도 없다. 기존의 자신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느냐 과거의 영화만을 반추하며 서서히 고사하느냐의 차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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