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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 - 빛으로 그려진 영원의 시퀀스, 사랑으로 읽는 50개의 명화
원형준 지음 / 날리지 / 2025년 2월
평점 :
중세의 자연관에 의하면 인간은 네 가지 기질로 나눠며, 그중 멜랑콜리아는 토성에서 발한 기질이다. 책 속에서 정의된 멜랑콜리아는 ‘항상 깨어있어 부단히 신적 경지를 추구하나 그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 좌절도 하는 창조적 존재‘이다. 혹은 ‘천재적인 재능, 특히 상상력이 뛰어난 예술가나 학자 등 고민하는 존재‘를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은 신적 경지를 초월하고 싶어 한 예술가의 그림 수십 점이 실려있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 선 독자들은 모두 상상력이 뛰어난 학자가 된다. 저자의 친절한 해석을 통해서 말이다.
미술에서, 특히나 현대 미술 이전까지의 시대에서는 도상학적인 문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대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그림은 어떤 신화나 그리스도의 영광 같은 종교적 이야기가 녹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도상적인 기표를 추적하는 과정은 탐정이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좇는 일과 비슷하다. 그림 속 인물이 어떤 도구를 소지했고, 어떤 인상착의를 가졌으며,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유의 깊게 살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인물이 성서 기록, 신화 속 인물이니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독자는 그 추리를 따라가며 그 과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주류 해석 외에도 다양한 비주류 해석을 열린 결말로 제시해 두고 있다. 이로써 독자 스스로 다른 해석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 도상적 추리는 현대 미술, 그리고 낭만주의, 인상주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미이다. 그래서 추측컨대 다른 미술 책과 달리 시대 역순적 구성으로 목차를 구성하지 않았나 싶다. 이 역순 구성은 인상 깊다. 그리고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갈수록 상대적으로 도상과 기표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나타난다. 앞에서 독자들은 충분히 도상적 추리를 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중세와 고대 미술의 상징을 더욱 인상 깊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서양의 고전 미술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즐거워지는 ‘ 세계임이 분명하다. 중세-고대의 이미지와 도상은 미술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되어 되살아난다. 그래서 지금까지 도상은 고리타분하고 낡은 이미지가 아니라 고전으로 소비되고 재해석된다. ‘아, 이거 어디서 봤는데!‘하는 즐거움도 작가의 말과 상통하지 않을까?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 ‘사랑‘을 언급하는 책의 제목처럼, 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미술을 처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말 친절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미학 입문자에 불과하지만 어려운 미술 용어에 대한 도움을 얻었다. 앞으로 미술의 즐거움을 끊임없이 발견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