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믿지 못했다 - 나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함께 꿈꾸는 진정한 리더 이야기
김성호 지음 / 파지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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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삶을 내가 선택했듯 내가 쓰는 글도 내가 결정한다.”

책의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첫 페이지에 쓰여진 문구였는데, 이 글을 보며 습관처럼 작가의 이미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단단한 표현이었고, 매 순간 수많은 선택들을 거듭하며 그간 걸어온 자신의 인생에 있어 진심을 다하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앞으로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있어 그만큼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신뢰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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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88 9월 첫 번째 직장 생활을 시작으로 약 33년간 수많은 분야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몸 값을 빠르게 올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최고 경영자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장과 이직을 통해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저자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저돌적으로 계획을 이행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 건강을 잃으며 방황한 적도 있었다. 인생에 있어 건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가족과도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 앞에 닥친 문제점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고 대안을 찾아가며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이른 나이에 재무담당임원(CFO)을 맡기도 했고, 외국계 기업에서 오랜 기간 몸담으며 적자 기업의 턴어라운드를 성공시켰으며,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영국의 다섯 개 패션기업들을 경영했다. 그의 이력서는 말 그대로 화려함 그 자체이다. 또한 이러한 그의 커리어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피, 땀 흘리며 한 계단 한 계단 쌓아왔는지 그간의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성장 스토리이며, 그 가운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사고들을 겪으며 배우고 깨달았던 것들을 공유한다. 특히 본인이 경험했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느꼈던 것들 중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다음 몇 가지 정도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도(正道), 인연(因緣), 인내(忍耐), 정성(精誠)

물론 목표의식과 근면성실함 등은 당연하게 기저에 깔려있다는 전제하에 위 몇 가지 항목들에 대해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 처세술, 맺음과 끊음에 대해 무엇보다도 여러 번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걸로 보아 그를 현재의 자리까지 이끄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퇴사하는 이유 부동의 1위가 대인관계라는 통계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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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에 관한 책들은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 동안 리더에 대한 정의는 정말 다양하게 내려져 왔다. 왜 사람들은 이 리더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영향력이다.

영향력이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데, 소위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며,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보통의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든 그 영향력이 극히 제한적인 반면 리더의 경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따라오는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다. 힘들고 부담스러운 자리일수록 그 영향력 또한 강력하므로 언행 하나하나 신중한 고민과 결정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이 영향력은 을 상징하며 이는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각종 여러 가지 보상이 뒤따른다. 어떤 분야에서든 선두에 서서 변화를 이끌고 방향과 비젼을 제시하는 이들을 우리는 리더라 부른다.

둘째는 배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더란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듯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선 그에 걸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혹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들의 행동패턴과 사고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을 접하며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기도 하고 벤치마킹도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을 도모한다. 이들이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엄청난 노력의 집약된 결과물이므로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이라면 받아드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세상은 기술 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각 시대마다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변하고 있으며,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반영한 트렌드 역시 기민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리더의 모습 또한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각 시대와 분야에 따라 다양한 리더의 모습이 존재하며, 실제로 변화무쌍한 자질이 요구 되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몇몇 소수 리더들에 의해 세상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많은 이들의 삶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책을 덮으며 개인적으로 받은 느낌은,

이 책은 단순히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기 보다 주체적인 우리의 삶과 그 본질적인 성장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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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숱하게 들었다. 그 말을 뜯어 보면 결국 직원들이 주인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주인인 주주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직원들에게 그것이 당연하지 않기에 굳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모두 주인이다. 기업의 주인이 아닌 자신의 경력의 주인이다.

나를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나 질투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고,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질투를 잘 다루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인간관계도 유지되지만, 잘못 다루면 사람들을 크게 다치게 만들 수 있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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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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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도쿄의 어느 한 병원. 주인공 ‘료가’군이 어렸을 적 동창이었던 ‘야다 이즈미’와 조우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료가는 현재 도쿄의 한 식당에서 점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친구 야다는 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 둘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사실 료가는 이 날 검사결과를 받기 위해 병원에 방문하는 길이었는데, ‘악성 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불행이 다가오는 데 적절한 시기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은 원망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필 왜 자신에게 왜 이런 불행이 찾아온 것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머릿속에 하나 둘 생각이 정리되며 현실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하다.

‘위암’이라는 사실을 먼저 눈치챈 것은 같이 일하는 동료 ‘다카나’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잦은 구토가 위암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기 힘든 이 비보를 터놓고 전할 수 있는 것은 평생 친구처럼 지내온 형제 ‘교헤이’뿐이었다.

소식을 들은 교헤이는 바로 병원을 찾았고, 주인공 료가는 바로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정황이 확인되어 희망을 갖긴 쉽지 않았다. 믿음을 갖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료가는 어릴 적 교헤이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나기’산에 등산을 갔다가 조난당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교헤이와 료가는 각각 선물 받은 파란색, 오렌지색 등산화를 신고 눈 덮인 산을 올랐는데 실수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경로를 이탈하게 된다.

교헤이의 젖은 등산화를 대신해 자신의 오렌지색 등산화를 내어준 료가는 안타깝게도 동상이 걸리게 되고 그 흔적은 발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 하지만 늘 침착하고 성실했던 료가의 기지 덕분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국 희망을 잃지않고 구조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료가의 증상은 더 악화되었다. 차도가 있는 듯 하다가 급격히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료가는 서서히 불씨를 잃어갔다.

주인공은 점점 짙어지는 그림자가 자신을 엄습해오는걸 느꼈고 너무나 두려워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기 위해 과거 조난 당했을 때 두려움과 절망에 맞섰던 당시의 용감무쌍함을 상기시키고자 친구들과 함께 나기 산을 다시 찾게 된다.

등반을 하는 동안 자신을 챙겨주는 주변사람들과 본인 스스로에 관한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참 본인답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그간의 발자국을 돌아보게 된다.

문득 문득 이들의 뒤로 펼쳐지는 멋진 저녁 노을,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당시 둘도 없는 내 가족에게 내어주었던 등산화. 눈 속에서 이들이 구조될 당시 아버지의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바로 그 색.


이 책에서 오렌지는 ‘희망’이었다.


‘암 투병’과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눈물 즙을 짜내려는 클리셰가 없어서 덕분에 더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료가의 상태가 변해갈수록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심정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가는지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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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는 내낸 1년여의 고생스러운 투병 끝에 작년 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지금도 아주 가끔은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느닷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에 한동안 잠식당해 있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웃으며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은 슬픔을 극복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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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늘 궁금했었다.

‘지금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고 말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아버지 대답을 듣는게 두려웠던 건 같다. 혹시나 눈치 빠른 내가 아버지의 대답 속에서 혹여 '단념'이나 '포기'를 엿보게 될까봐 겁이났고 무서웠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끝내 묻지 못했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약속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이번 서평을 마친다.


끝.

"왜, TV리모컨 같은 데 보면 5번 부분에 작은 돌기가 나 있는 거 몰라? 눈이 불편한 사람도 거기가 5번이라는 걸 알고 조작이 가능하게끔. 그리고 어두울 때도 알아차릴 수 있게끔 말야. 유니버셜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 료가 군은, 어려울 때 저절로 찾게 되는 사람이야."

그 점을, 그 애가 어릴 적 더 많이 칭찬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아는 깔끔함을.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착실함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실함을.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진중함을. 자신의 의견을 구태여 내놓지 않는 상냥함을. 엄마인 내가 제대로 입 밖에 내어 인정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거기서부터는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자신의 신발로 덧새기듯 걸어 나갔다. 누군가 이 길을 걸어왔다. 자신은 그 뒤를 쫓고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 죽는 것과 닮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걷다가 이윽고 어딘가에서 그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엄마 아빠는 제 인생이 짧아 가여우신가요?
하지만 저는 가엾지 않아요.
제 인생은 정말로 행복했어요.
가족들 덕분에 즐거운 일투성이었어요.
저는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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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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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인 이치노세이 소녀는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역 플랫폼에 서있다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몸을 던질 타이밍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한 걸음씩 안전선 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위태로워 보이기만 하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남자 주인공 아이바이윽고 소녀가 결단을 실행에 옮기려던 찰나 사내가 팔을 잡아채며 이를 저지시킨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방해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곤 귀찮다는 듯 팔을 뿌리쳐 버리는 소녀이 남자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소녀의 얼굴에서 놀란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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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기묘한 인연은 이랬다.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던 소심한 남자 주인공에게 어느 날 낯선 이가 다가와 자신을 ‘사신’이라고 소개하며 솔깃한 제안을 하나 건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과 당신의 수명을 맞바꾸시겠습니까?

어차피 세상에 미련이 없던 아이바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이후 바라온 대로 양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뉴스에서 한 소녀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된다그가 자살을 떠올릴 때 마다 찾았던 바로 그 다리에서 벌어진 일이라 유독 더 신경이 쓰였고결국 시간을 되돌려 그녀를 구하게 된다.

이게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소녀는 암으로 친아버지를 잃었고 그 후 엄마와 양아버지 사이에서 지냈는데가족이며 친구 어느 누구 하나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이가 없었다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삶 속에서 소녀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이러한 연유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어릴 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로운 삶을 살아온 아이바는 이 소녀를 알게 되면 될수록 자신과 무척 닮아 있음을 느낀다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고더더욱 그녀의 죽음을 못 본채 할 수 없었다소녀의 계속된 자살 시도가 스무 번 째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자신을 밀어내는 소녀를 계속해서 구해냈다.

세상에 내 편이 생겼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 볼만한 이유가 생겼다는 것과 같다.

그의 진심이 닿았는지 소녀는 차츰 죽기로 했던 결심을 거두게 된다그의 구원을 통해 소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고그런 소녀의 모습을 통해 그 역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구원을 받았다.

날개를 잃고 방황하던 나비 한 쌍은 그렇게 서로의 날개가 되어주었고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듯 보였다.

하지만 가까워진 둘의 거리만큼 사신과 거래했던 그 죽음의 시간 역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삶이란 것도 결국 유한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소중하다고 했던가.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준 존재이기에 함께 할 때 비로소 이들은 빛이 되었다즉 홀로 남겨진 세상은 다시 암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서야 삶의 시계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 두 사람끝을 향해 내달리는 이들의 종착지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 졸이며 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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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끝이 보이는 편이 살아갈 의욕이 더 솟구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똑같아요. 남은 3년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 하고 시간을 되돌려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서 일시적으로 삶에 적극적이 되거든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바뀌는 동안 자신의 본질을 깨닫습니다."(중략)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그 기세로 무슨 일이든 잘해 나갑니다. 자신감이 붙으니 주위 사람들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해주고요. 그러면 깨닫는 겁니다. ‘조금만 달라져도 살아갈 수 있었겠구나’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어릴 때부터 불꽃놀이를 좋아했다. 하늘로 솟구친 불꽃을 그저 올려다보기만 하면 되었다. 시야에는 불꽃 밖에 보이지 않아서 불쾌할 일도 없다. 부모와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즐길 수 있다. 그때만큼은 평범한 인간처럼 주위에 녹아 들 수 있다. 그래서 불꽃놀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꽃을 보지 않고 아이나 연인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이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치노세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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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 아저씨 - 아제세이 ajaes-say
정윤섭 지음 / 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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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작가 중 한 분인 <망원동 브라더스>,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님의 강력 추천작인데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키워드인 ‘아재美’를 다룬 책이라고 하니 얼른 읽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사실에 입각한 디테일한 그림체와 아재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개그 코드, 40대 남성의 애환이 담겨있는 이 책은 유쾌하게 읽기에 딱 좋았다.

‘불혹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어지는 나이’를 지나서 이젠 어디에 가든 에누리없이 ‘아저씨’ 호칭으로 불리는 중년 남성의 아주 평범한 일상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그 속에는 지난 간 것들에 대한 ‘약간의 미련’과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쥐고 있는 ‘약간의 희망’ 그럼에도 내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로 인한 ‘약간의 행복’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매일 투닥 투닥 감정 싸움을 벌이면서 지내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딸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사십 대의 아빠는 그렇게 오늘도 또 한 계단 인생을 배워나간다사십이건 오십이건 아빠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라 서투른 부분 투성이지만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걸 보니 명실상부 ‘딸바보’임이 확실하다저자가 묘사하는 딸의 모습과 위트 있게 풀어내는 딸과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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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엔 한 채의 집이 하늘 위에 섬처럼 둥둥 떠있고그 뒤로 파란색과 검은색 배경이 깔려있어 마치 대기권을 탈출한 작은 섬이 이제 막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당도한 것처럼 보인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천공의 섬’이라는 글자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고저자의 의도가 궁금했다천공의 섬은 하늘 위에 떠있는 신들이 사는 섬(나라)을 뜻하며,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 적이 있고미야자키 하야오의 SF 애니메이션인 <천공의 성 라퓨타>와도 흡사했다.

책을 읽고 내가 추측해 본 저자의 의도는 이랬다.

하나의 커다란 대지에서 여러 차례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땅 덩어리 일부분이 분리되어 떨어지는 것이다큰 땅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섬의 형태를 이루는 게 ‘딸’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하루하루 어른이 되어 갈수록 멀어져 가며마침내 일정 거리까지 떨어지고 나면 그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본인()만의 특색을 갖추어 가는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본체였던 아버지라는 섬은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며 응원할 뿐이다단지 그 섬이 구색을 갖추며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놓칠세라 열심히 눈에 담으려 할 뿐이다한 남성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하늘로 점점 떠올라 고립된 천공의 섬이 되었듯언젠가 그 자식도 중년이 되고 또 공중에 떠올라 외로이 하늘을 헤엄치는 또 다른 하나의 천공의 섬이 될 테다.

‘섬’이라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올해 초 읽었던 <어서 오세요휴남동 서점입니다>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은 결국 하나의 섬이 아닐까 해요섬처럼 혼자고섬처럼 외롭다고요혼자라서외로워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해요혼자라서 자유로울 수도 있고외로워서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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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창가에 서서 ‘나도 언젠가는 저 공허한 하늘에 묵묵히 떠있는 섬이 되겠구나’하며 이런 저런 망상에 빠지던 찰나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바닥이 지면에서 ‘둥실’하고 살짝 떠오르는 것 같았다.

‘젠장벌써 시작된 건가… 나 아직은 30대라고!!




요즈음 나는 화를 많이 냈다. 화를 내는 일은 사실 꽤 힘든 일이다. 그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그가 어떤 일로 기뻐하고, 정치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무슨 말을 하느냐 보다 그가 어떤 일로 화를 내느냐가 그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결혼 2년 차에 변기 커버를 꼭 내리는 훈련을 통과했다. 10년 차 즈음 앉아 싸기를 시작했다. 17년 차인 요즘은 변기 뚜껑 덮는 훈련을 받는 중이다.

그렇게 돌아오는데 문득 제리 사인펠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길거리 노숙자 둘이 이야기하는 걸 보고 이렇게 농담을 했었다.

"틀림없이 저 노숙자 중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충고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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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
최리나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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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의 여정은 가히 K-막장 드라마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모든 상황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금까지 견뎌온 그녀의 정신력에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두 번의 지독한 이혼을 겪으며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 숨 죽여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 때론 너무 가혹한 시련에 부딪혀 무너져버렸던 순간들.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엄습해 왔기에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뇌며, 스스로를 이해시켜야 했다. 살기 위해 정신을 돌려야 했고, 그렇게 그녀는 일에, 종교에, 책에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몰두해야만 했다.

책을 통해 그리고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통해 치유 받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과 자아성찰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책의 중간 중간 그녀의 억울함과 분노가 울컥 울컥 글 밖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글로써 전달을 위해 꾹꾹 눌러 담아보고자 했던 그녀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도 불안정한 감정선이 문장 이 곳 저 곳에 베어있는 듯 했다. 읽으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의 이 모든 아픔들을 어찌 이번 생에 모두 풀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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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높은 계단의 맨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한 여성과 그 앞으로 살짝 열린 철문이 보인다. 여성은 그 문을 향해 한 쪽 손을 뻗고 있으며 밝은 주황색 빛이 벌어진 문틈 사이로 쏟아지듯 흘러나오고 있다.

힘겹게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높은 층계는 그 동안 그녀가 부딪혀야 했던 고난과 시련들 그리고 냉정한 현실과 끝없이 반복되는 역경, 모든걸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서 당당히 문을 열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서려는 듯 보인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엔 계단 끝에 서있는 이 여성이 저자인지, 저자의 딸인지 사실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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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어나요?’라는 책의 내용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공동 저자인 페리 박사는 트라우마는 대물림되며, 방치해두면 평생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폭력적인 할아버지를 평생 증오했으며, 전쟁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던 저자에게 비수를 꽂아버린 비정한 아버지와는 현재까지 연락을 않고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절친이었던 친구와 절교를 했고, 전 남편과 면접교섭을 갔던 사춘기 딸과도 갈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연락두절인 상태다.

여러 가지 불안한 요소가 즐비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그녀의 마음 속엔 본인도 모르는 새 어떤 씨앗이 자리잡았던 것 같다. 폭언과 폭행을 견뎌내며 그 씨앗은 발아했을 것이고, 매사에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내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마음 속 씨앗은 예민하고 공격적인 방어 기제로 자리잡아 그녀를 선인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이 일렁일 땐 주변에 잔잔한 파도도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내 안의 너울치던 물결에 그 파동이 더해져 순식간에 서운함과 분노라는 해일로 탈바꿈해 나를 덮쳐온다.

어쩌면 이번 서평엔 나의 냉정한 면면이 고스란히 담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의 반성과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두 번의 이혼 과정에서 자녀들을 얻었다. 이혼은 결코 저자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며, 저자 역시 어릴 적부터 자라온 가정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트라우마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격분했던 이유는 지금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경각심을 가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부디 사랑하는 딸과 아들은 표지 속 높디 높은 계단을 오르며 이 곳 저 곳을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할 테니 말이다.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가 독자들로부터 더 많은 위로를 받길 기도한다.

이제서야 본인의 호흡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가족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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