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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
최리나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4월
평점 :
그녀의 삶의 여정은 가히 K-막장 드라마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모든 상황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금까지 견뎌온 그녀의 정신력에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두 번의 지독한 이혼을 겪으며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 숨 죽여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 때론 너무 가혹한 시련에 부딪혀 무너져버렸던 순간들.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엄습해 왔기에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뇌며, 스스로를
이해시켜야 했다. 살기 위해 정신을 돌려야 했고, 그렇게
그녀는 일에, 종교에, 책에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몰두해야만 했다.
책을 통해 그리고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통해 치유 받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과 자아성찰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책의 중간 중간 그녀의 억울함과 분노가 울컥 울컥 글 밖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글로써 전달을 위해 꾹꾹 눌러 담아보고자 했던 그녀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도 불안정한 감정선이 문장 이 곳 저
곳에 베어있는 듯 했다. 읽으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의 이 모든 아픔들을 어찌 이번 생에 모두 풀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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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높은 계단의 맨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한 여성과
그 앞으로 살짝 열린 철문이 보인다. 여성은 그 문을 향해 한 쪽 손을 뻗고 있으며 밝은 주황색 빛이
벌어진 문틈 사이로 쏟아지듯 흘러나오고 있다.
힘겹게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높은 층계는 그 동안 그녀가 부딪혀야 했던 고난과
시련들 그리고 냉정한 현실과 끝없이 반복되는 역경, 모든걸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서 당당히 문을 열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서려는 듯
보인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엔 계단 끝에 서있는 이 여성이 저자인지, 저자의 딸인지 사실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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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어나요?’라는 책의 내용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공동 저자인
페리 박사는 “트라우마는 대물림되며, 방치해두면 평생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폭력적인 할아버지를 평생 증오했으며, 전쟁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던 저자에게 비수를 꽂아버린 비정한 아버지와는 현재까지 연락을 않고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절친이었던 친구와 절교를 했고, 전 남편과 면접교섭을 갔던 사춘기 딸과도 갈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연락두절인 상태다.
여러 가지 불안한 요소가 즐비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그녀의 마음 속엔 본인도
모르는 새 어떤 씨앗이 자리잡았던 것 같다. 폭언과 폭행을 견뎌내며 그 씨앗은 발아했을 것이고, 매사에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내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마음 속 씨앗은 예민하고 공격적인 방어 기제로 자리잡아 그녀를 선인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이 일렁일 땐 주변에 잔잔한 파도도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내 안의 너울치던 물결에 그 파동이 더해져 순식간에 서운함과 분노라는 해일로 탈바꿈해 나를 덮쳐온다.
어쩌면 이번 서평엔 나의 냉정한 면면이 고스란히 담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의 반성과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두 번의 이혼 과정에서 자녀들을 얻었다.
이혼은 결코 저자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며, 저자 역시 어릴 적부터 자라온 가정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트라우마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격분했던 이유는 지금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더 경각심을 가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부디
사랑하는 딸과 아들은 표지 속 높디 높은 계단을 오르며 이 곳 저 곳을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할 테니 말이다.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가 독자들로부터 더 많은 위로를 받길 기도한다.
이제서야 본인의 호흡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가족 모두를 응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