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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은 ‘쓰다’라는 행위에 대해 흠모와 환멸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있는 9명의 작가들의 언어로서, ‘쓰는 행위’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들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9인 9색의 이야기는 마치 잘 차려진 9첩 반상과 같아서 색감과 그 맛이 각가지로 매력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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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은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커피와 차에 대해선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유독 민감한 오감 덕분에 늘 고집하는 섬유유연제나 바디 샴푸가 정해져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 말이다. 왜인지 모르게 작가라는 타이틀이 불러일으키는 경외심이 있고, 동시에 상상되는 편집적 성향이 있다.
번뜩 떠오른 영감이 이야기를 멈출 새라 서둘러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토해내듯 글을 쏟아내는 모습. 마치 접신한 듯 쉼없이 달려 마침표까지 찍어버리고 나서는 영혼을 모두 불태워버렸다는 듯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악마의 재능충. (‘충’이란 표현대신 더 맛깔나는 표현을 찾지 못한 무능력함을 용서해주소서..)
그러나 이 책에선 그런 환상들을 제대로 깨부수기로 마음 먹은 듯 창작의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 민낯들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죽어도 글을 쓰기 싫은 이유와 그럼에도 다시 무언가를 적는 이들의 삶은 매일 스스로와 타협점에서 대치한다. 정해진 기한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고, 때론 ‘에라 모르겠다’싶어 외면하다가 그런 자신의 무책임함에 자책하고, 하루 왠 종일 씨름하다가 급기야 알몸의 형태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듯 어두컴컴한 감정의 심연 속으로 침잠하는 이 괴로운 굴레를 반복한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복잡한 고민들을 정신없이 쫓다 보면 결국 아주 원초적인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고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그 원점까지도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숨막힐 듯한 수세에 몰린 그 상황에서 끝끝내 고통과 맞바꿔 얻어낸 글들은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그 이야기의 쫀쫀함과 깊이가 소름끼칠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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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기 위해, 머릿속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실타래 풀 듯이 글자로 풀어 내기 위해, 옮긴 글자가 거슬리지 않고 매끄럽게 읽히도록 만들기 위해, 그 과정에서 보탬이나 빠짐이 없이 처음 머릿속에 있던 그 느낌 그대로이기 위해 얼마나 고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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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에게 수면 아래서 쉴 새없이 버둥거리는 다리 짓이 숨겨져 있다고 한들 고귀하고 영롱한 그 모습이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수면 위와 수면 아래 모두 진실일 뿐이다. 가려져있던 모습 마저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쓸 때 가장 솔직하고, 고독하며 그리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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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댓글은 달고 글은 쓸까?
(이 놈의 엉뚱한 생각이 또 치고 들어온다.)
달고 쓰고 차이는 어디서 올까? ‘책임감’에서 올까? 아니면 진심? 시간?
글이라는 게 이렇게 쓰디 쓸 줄 알았다면 표현이라도 좀 달달하게 ‘글을 달다’라고 정해 놓았으면 조금은 나았으려나.
이 책의 작가들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마치 착즙하듯이 자신을 쥐어짜는 걸 보니 ‘글을 짜다’는 어떨까 싶기도 했다.
끝.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 대도 셈의 결과는 0말곤느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누군가에게 나는 노래하는 사람, 영화하는 사람, 만화 그리는 사람 혹은 어쩌고저꺼고일 테지만 결국 모든 것은 다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들은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만드는 것들이 언젠가는 다 이어질 거라고.
글과 나 사이에 차가운 강이 흐른다. 글로 가기 위해서는 그 차가운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한다.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두고, 신발도 벗고 헤엄쳐 가야만 글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결코 죽지는 않는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있을 뿐이지만, 제정신으로는 누가 그 고통을 반복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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