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멍 - 글 쓰는 멍멍이
예예 지음 / 모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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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멍멍이, 뭉게 (08년 생 말티즈)

7시쯤 되니 습관처럼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게슴치레 눈만 뜨고 몸은 가만히 둔 채로 발만 움직여 침대 맡을 더듬어 본다. 역시나 발 아래 쪽에 우리집 강아지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내 움직임 때문에 방금 깨어난 건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일어나 양 옆으로 몸을 부르르 털어내더니 필라테스 강사님 마냥 제법 훌륭한 자세로 스트레칭을 한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쟈쟈"하는 소리를 내며 응원하게 된다.)

좋은 소식은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이고, 안좋은 소식은 출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일 출근시간에 맞춰진 생체리듬 덕분에 강제 기상을 하긴 했지만 출근 전 잠깐이라도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 들고 거실 식탁에 앉았다. 주중에 바쁜 출퇴근 길 위 에서가 아닌 주말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에서이와 함께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이었다.

책 표지엔 이 책의 저자(?) 뭉게가 당당하게 멍청미를 뽐내고 있다. 언제 다시 올라가 자리를 잡았는지 턱을 다리 위에 괴고형이 아침부터 또 뭘 하나하는 표정으로 침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와 책 표지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봄이'는 고개를 시계방향으로 15도쯤 기울이며 갸우뚱 한다.

이 책은 반려견 뭉게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으로 접근 방식부터 굉장히 신선했다. 우리는 늘 사람의 입장에서 강아지를 대하는데, 역으로 강아지의 시선에 우리는 어떻게 비춰질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애견인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사실강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컨셉은 <달러구트 백화점> <모란시장>이라는 책을 통해 접해본 적이 있는데 읽을 때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선 평소에 강아지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들에 착안하여 그러한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런 행동을 할 때 강아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에 나온 내용들이 마치 우리집이의 관찰 일기를 써놓은 것 마냥 똑같아서 너무 놀라웠고 한편으론 귀여웠다. 그리고다른 집 강아지들도 다들 비슷한가 보구나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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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이 불면 코를 씰룩거리는 것, 고구마를 보면 환장하는 것, 산책할 때 낯을 가리고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것, 자극적인 음식이라 조금도 나눠주지 못할 때 갑자기 현관에 놓인 패드로 달려가 갑자기 분뇨를 싸지르는 것(갑분싸), 졸음이 쏟아져 죽겠는데도 자기가 잠들고 나서 우리끼리 신나게 놀까봐 꼭 옆에 기대서 잠드는 것 등등 사랑스러운 모든 행동들이 차곡 차곡 잘 담겨있다.

‘뭉게’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고, 그 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기에 이런 모습들을 책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 담기로 결정했는지 그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을 받아서 읽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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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모두 알고 있지만 외면하며 지내고 있는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고하게 될 날이 다가온다는 것.

각자의 세계에서 흐르는 시간이 서로 달르다 보니 나보다 조금 더 먼저 여기 저기 나이듦을 호소하게 되는 것. 이 대목에서는 잠시 코끝이 시큰거리기도 했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는데, 실제로 꽤나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잃고 우울증이나 무기력증과 같이 심각한 증상들을 겪기도 한다. 우리 모두 경험해 본 적 있겠지만, 슬픔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금새 그 주변으로 더 큰 슬픔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와 깊은 감정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회자정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라는 뜻인데, 그건 부모자식간이건 부부건 친구건 반려동물이건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뭉게의 생각처럼 미래를 걱정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그저 하루하루 서로에게 잘 대해주고 행복함으로 채워가는 일, 그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얼른 퇴근해서 우리 봄이랑 산책가야지!

나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하얗고 예쁜 눈이 소복소복 쌓이듯

자연스럽고 소중한 일상 중 하나이다.

소중한 것들은 소리 없이 마음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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