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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평점 :

<영혼을 팔기엔 좋은 날>은 뜻밖의 선물처럼 내 손에 들어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 가슴에 남은 책이다.
몇 번의 실망 끝에 나는 언젠가부터 단편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한 권에 여러 편이 실리다보니 깊이 없는 작품, 설레발만 치고 끝나는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가운데 만난 <영혼을 팔기엔 좋은 날>은, 곽세라는 작가의 이름도 생소했고, 한 권의 두 편의 작품이 담겨있다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렇게 나와 스쳐지나갈 책이었다. 그러나 다음 문학 3주 연속 최다 조회 수라는 기록은 ‘모’ 아니면 ‘도’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찌되었든 인터넷 소설에서 조회 수를 많이 올린다는 것은 일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금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소개를 보면서 결국 내 손에 들어온 책.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먼저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을 살펴보면,
평범한 캐릭터가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으며 인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모두 매력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배경에서 극단 ‘츠키’와 미나 선생은 작품의 주된 분위기인 신비로움에 녹아들고 일반 극단과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연습환경은 미나 선생이 기획하는 특별한 공연으로 설명된다. 전혀 사실적일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개연성을 갖췄고 독자들은 작품 속 깊숙이 빠져든다. 주인공 유정의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오가며, 사건을 풀어헤치는 것도 좋았고 유정의 특별한 공연 입문과 발단, 절정, 포기…, 그리고 치료의 과정은 칠성급 호텔의 최고급 코스 요리를 보듯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게다가 이 작품 곳곳에 보이는 작가의 은유문장능력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리에가 카레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p24),
해가 지는 순간을 떠나는 슬픈 엄마 같은 시간으로 표현한 것(p121)이라든지,
‘집 안은 좋은 냄새로 단풍처럼 물들어가고 있었다(p152).’는 문장이나,
‘완두콩이 민감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연록색 몸을 뒤집는다.(p156)’처럼 인물이 요리하는 상황에서 ‘인물=소재’ 등식을 만드는 센스,
‘신중하게 포장지를 고른 뒤, 다음 말을 감싸서 내게 건넸다.’, 나
‘그는 내가 내민 봉투를 보더니 조금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동자를 타고 잠시 어딘가로 다녀와야 할 곳이 있는 것 같았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중한 동공이 날 상처 나지 않게 가만히 만졌다.(p225)’와 같은 문장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 하겠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코 쓸데없이 존재하는 캐릭터는 없으며, 리에와 유정의 결말은 작가 곽세라의 힐링 스타일을 보여준다.
뒤이어 보여주는 ‘천사의 가루’.
이 작품 또한 곽세라만의 철학을 품고 있다. 요요, 교토호텔713호, 라라, 우에다 유코, 키무라 히로시, 후키자와 코이치, 야마구치 나오, 히라다 사토유기, 노무라 케이타, 키노하라 미사코, 미도리카와 사나에, 후지와라 유이치 등 사람과 사물이 화자가 되어 각 장을 메우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이 중심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요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은 각자의 상처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한다.
나는 처음에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요가 나리타 공항에 나타나고 한없는 기다림 속에서 초반에 쓰러져간 이의 말이 다시 생각나고, 너무 가볍게만 보이던 요요라는 캐릭터의 사랑과 집착,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히로시, 히로시의 아내 등을 통해 전혀 새로운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앞의 작품보다 은유문장이 적게 보이긴 하지만 그 중의 최고를 꼭 말하고 싶다.
‘즐겁게 으깨어져, 기꺼이 술에 취한 머루와 사과와 매실의 웃음소리가 내 심장 가까이에서 캐럴처럼 울릴 땐 정말로 기쁘다.’
두 작품 모두 아주 독특하고 새로우며 가슴을 울린다. 먼저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을 실고, 천사의 가루를 편집한 것도 좋았다. 또한 공부에 대한 정의(p21)나, ‘라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스스로를 인도인이라 생각하는 한국인이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자신은 공기와 여행가방이 입맞춰서 태어난 아이라고 생각한다)은 작가의 개인철학이 담긴 것 같아 좋았다. 화가들이 작품 속에 작가만 알 수 있는 사인을 몰래 남겨 놓은 것처럼.
작가 곽세라의 작품은 보통의 신선함과 독특함을 내세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바로 깊이 있는 이야기, 완벽한 구성력,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로 철저히 무장한 작가의 프로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곽세라’.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또 한 명의 작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