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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국경을 넘다
이학준 지음 / 청년정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1박 2일 캠프를 떠나기가 두려워 집안에 숨은 채 아픈 척 연기했던 어린 소년은 역마살이 있다는 점쟁이의 말처럼 이슈가 있는 곳은 물론 남들이 가길 꺼리는 곳마저 족적을 남기는 기자가 되었다.
뭣 모르고 시작한 탈북자들의 실태를 다룬 촬영은 때로는 자신의 목숨은 물론 애꿎은(?) 후배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며 많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남겼다.
‘국경’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와 나라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 ‘주권국가의 공간적 관할권이 배타적으로 미치는 범위’라고 나온다. 그러나 작가는 ‘국경’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극한 상황이 연출되고,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으며,
폼 나는 ‘이타주의’ 대신 너절한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보다 돈에 대한 신뢰가 앞서는 곳이라고 말한다.
몇 년 동안 수차례 북한과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의 국경을 건너며 몸으로 깨우친 정의다. 처음에는 재능이 모자란 기자가 특종을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덧 일을 넘어서 그들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하루에 한 끼는 고사하고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북한에서 굶어 죽느니 압록강을 건너고 두만강을 건넌다. ‘두만강은 낮과 밤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길을 연다. 낮에 본 강은 국경을 수평으로 가르고 어둠이 깔리면 강은 수직으로 열린다.(p90)'고 했듯이 수평으로 흐르는 강물을 수직으로 열어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추운 날씨에 강과 함께 얼어 얼음미라가 될 지언정 북한 주민들에겐 살기위한 첫 몸부림이다. 누군가는 북에 남은 가족을 위해 인간 시장에 자신의 몸뚱이를 판다. 가난한 중국 남자에게 팔려가 고된 노동에 씨받이 역할을 하지만 탈북자의 아이는 북한도 중국도 한국의 국적도 얻을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다(중국을 떠도는 탈북자의 수는 10만, 그들이 낳은 아이는 2만). 그렇게 지내다가도 공안의 잡혀 하루아침에 손에 구멍이 뚫린 채 북으로 이송되어 처형당하거나 간첩죄로 고문을 받다가 죽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히 몇 달간의 감옥살이로 끝난다면 그들은 다시 목숨을 건 채 북한을 탈출한다. 역사가 반복되듯이 그들의 탈북도 반복되고 그들의 비극은 대물림된다.
한편으로 그런 탈북자의 사정을 이용하여 신고하겠다고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거나 속이고 중국 사람들에게 탈북한 여자를 팔아넘기거나, 돈을 주고 북한 주민을 구경하는 인간 사파리의 관광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식료품 하나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되어 들었다. 우리가 과연 그들을 질타할 자격이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자신들의 동포가 대사관으로 찾아와 구조를 요청하는데 매몰차게 다른 나라로 밀입국을 권하는 베트남 한국 대사관이나 탈북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차별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의 여자는 중국을 그리워했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여자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에 가면 국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여자는 다시 북한을 그리워한다. 적어도 그 곳에선 외톨이는 아니었다(P138).”
통일을 미리 준비해야한다며 통일 세부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같은 민족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길 기대해본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옆에는 젖은 티슈가 쌓여갔다. 티슈는 금방 마르고 버려지겠지만 이 눈물을 흘리던 미안한 마음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