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앗 - 투 - AJ공동기획신서 3
김서영 지음, 아줌마닷컴 / 지상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시앗.

남편의 첩이란다.

얼핏 보고 씨앗이라 지레짐작했던 나에게 제목부터 멋지게 한 방을 날린다.

그런데 이게 갈수록 가관이다.

21세기에 정말 남편의 첩 이야기다. 게다가 실화란다.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남편과 살면서 남편의 여자를 인정하는 여자의 삶.




“눈물 바람, 콧물 바람에 동정을 요구하는 그저그런 이야기라 짐작 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한 방 먹었다.




남편의 정년 퇴임.

할 일을 잃고 나이만 든 남편의 기를 살리기 위해 특별한 선물이 없을까 고민했던 아내에게 남편의 첩이 등장한다.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스쳐 지나가는 여인이 아니다. 삼십 삼 년을 남편과 함께 한 그녀다.

부모의 유산으로 돈도 많은 그녀.

벤츠를 몰고 남편과 계절 따라 세계 여행을 다니고, 아내에게 형님이라 부른다.

불륜, 그늘의 존재인 남편과 시앗.

그늘에 있는 사람을 그늘에 살게 그냥 두면서 살아가는 작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작가만의 독특한 위트와 재치로 이야기한다. 실화가 아니었더라면 요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냐며 작가의 자질을 운운하는 댓글이 달렸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이야기를 인터넷 아줌마닷컴에 쏟아냈고, 거기에는 작품의 개연성의 부재에 대한 안티가 아닌 21세기에 왜 이렇게 사냐며 쓴 소리하는 사람과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두 아들의 어머니.

한 남편의 아내.

시어머니의 며느리.

시아버님의 첩을 인정하며 살았던 시어머니의 삶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작가의 서두는 인생을 두고 미래를 장담하지 말라는 어르신네들의 훈계처럼, 절대 부모처럼 어리석게 살지 않겠다던 자식이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인생사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한 많은 아내가 펼쳐내는 이야기가 심상치가 않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눈물 바람, 콧물 바람은 고사하고, 작가의 이야기에, 입가에 미소를 짓거나 소리 내어 웃기를 여러 번 했다. 센스 있는 작가의, 위트 넘치는 글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높이고 어이없어 입이 벌어지면서도, 날아가는 곤충이 입에 들어가는 줄도 모르게 스르륵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남편을 다른 여자, 시앗과 공유하고 집안의 자랑이었던 큰 아들은 부모를 잊은 채 타국에서 무소식이다. 장남 아닌 장남의 역할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그런 아들 앞에 시앗과 나들이라도 하다가 아들 앞에 걸릴까 가슴이 쿵쾅거리며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생활고에 찌든 젊은 날을 뒤로 하고 곱게 늙어 손 잡고 공원이나 한가히 산책하길 기대했던 나이에 작가 김 서형은 매일매일 대못에 박힌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진물을 닦아낸다. 과다 출혈을 막기 위해 뽑지도 못한 채 가슴에 그대로 박힌 대못은 하루하루 가슴을 숨죽여오지만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일까?




그녀는 당당하다.

그녀는 웃는다.

그래서 그녀는 그늘의 존재가 아닌 퍼스트레이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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