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권력이다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문중에서) "현대는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이미지라고 말하면 어려워지지만 쉽게 말하면 그림이다. 문자가 아니라 그림이 우세하고,활자가 아니라 TV화면과 영화 스크린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다.우리는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은 영화,TV,미술,디자인,건축물 등 온통 시각적인 것이다. 요즘에는 TV화면과 영화 스크린을 넘어서서 액정화면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모바일이 선거처럼 액정화면이 중요한 선거 도구로까지 승격하는 판이다. 한마디로 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시선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시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주요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은 조화와 질서를 보여주는 최고의 이상으로서 우주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우주를 해석하고 닮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미메시스(모방)를 모든 예술의 원리로 삼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근법이 발명되어 사물이 부동의 것으로 고착되었다.원근법에서 소실점의 지점에 이쓴ㄴ 대상은 실제로는 우리의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인데도 그림 안에서는 견고한 사물로 고정된 채 그려지기 때문이다.원근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르네상스시대에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가 거리두기와 대상화의 방식이 19세기말까지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표상의 방식이었다. 사이버 시대로 진입한 현대 사회에서 물질세계는 더 이상 원근법적 세계의 견고성을 갖지 못한다. 연산(algorithm) 작용에 의해 이미지의 무한한 확장 변형이 가능하고,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얼굴사진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으며, 이미지의 경계선이 무한히 미끄러져 온갖 형태의 합성사진이 가능한 시대다. 이제 이미지는 무질서하고 불안정하고 우연적이고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가짜(simulation)이기까지 하다. 새로운 바로크 시대라 규정될 정도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우며, 가상이 지배하는 현대의 사회상은 그 근원에 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있는 것이다.

시선은 타자와의 관계이고, 나의 세계를 맺어주는 기본적인 매채이다. 따라서 시선이 인간관계의 기본인 권력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시각의 중요성이 절대적이지만 그 중에서 저자는 권력의 부분만을 떼어내 살펴보았다."

(책 소개 중에서) "빛은 권력의 영역, 어둠은 피지배의 영역이다. 1970년대에 뉴욕시 전체가 정전되었을 때, 폭력과 약탈이 횡행하는 무정부 상태가 된 적이 있다. 빛이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로 기적처럼 권력 전체가 해체된 것이다. 빛이 없어지면 권력도 없어진다. 빛은 가시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가시성이야말로 예속을 극대화시킨다. 규율의 대상인 개인을 예속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가시성이 절대적이다. 가시성은 권력을 생산한다. 가시성이란 시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시선은 권력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책상을 배치를 할 때 대부분 사원이 원하는 자리를 살펴보면 상급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선-권력의 이론을 모르는 사람도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진 힘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초현대화한 사무공간에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컴퓨터 이전 사회의 생물학적 시선이 기계장치의 전자 시선이 되었을 뿐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여주인공 앤드리아가 일하는 잡지사의 ID 카드는 현금카드기능이 있다. 식사를 하든, 책이나 잡지를 사든, 운동을 하든, 이 카드를 사용하면 회사에서는 그녀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신문을 보는지, 어떤 운동을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상사는 그녀가 어디서 무얼하든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의 컨트롤 타워에 연결된 그녀의 ID 카드가 동선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회사원에게도 일상이 되어 버린 감시 체제이다. 한 유수 기업에서는 사원카드가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본부에서 연락이 온다. 사원카드를 놓아두고 외부에 나가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회사에서는 특정 단어를 이메일에 입력하면 즉각적으로 중앙 시스템이 인식한다. 전자 족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없이 발랄한 자유를 누리는 듯하지만, 실은 전 방위에서 하루 24시간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

번역과 논문 등으로 30여년간 푸코의 권력 이론을 연구해 온 박정자 교수는 이 저서에서 현대의 전자 감시체제의 기원을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에서 찾고,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하는 권력 메카니즘을 사르트르의 대타 이론과 헤겔의 인정투쟁 이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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