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 그와 그녀가 떠난 음식 기행
박자경 외 지음 / 동아일보사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먹는 것



직장인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점심일 겁니다. 오늘은 어디서 뭘 먹어야 하나,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식사까지도 비슷하게 반복된다면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오죽했으면 점심이 기다려지는 일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표현까지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왕 먹을 거라면 맛있는 게 좋은 것일 테고, 가끔은 색다른 것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일 겁니다.

일상의 반복이 너무 지겨워 작년에 가까운 지인들과 `식객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식객여행`이란 말 그대로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된 음식점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지요. 이틀 동안 대여섯 곳의 음식점을 돌면서 맛에 취하고 흥에 취했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런 추억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낸지 얼마 안될 즈음 이었습니다. 한 음식점에서 주인과 손님이 다투고 있더군요. 다툼의 내용인 즉, 손님은 음식이 맛이 없으니 맛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달라는 말도 못하냐는 것이었고, 주인은 그 정도면 충분히 맛있는 것이니, 그렇게 못마땅하면 다른 음식점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맛 가지고 손님과 주인이 다투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맛 없으면 그 맛없는 음식점에 가지 않으면 되니까요. 얼핏 보면 손님의 반응이 과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음식 맛있게 해서 주는 것이 음식 장사의 기본이라면 주인의 반응은 무례해 보이기도 합니다.

김영희의《눈화장만 하는 여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음식 고마운 줄 아는 사람은 맛없는 음식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이다. 음식 투정같이 사람을 쩨쩨하게 만드는 것도 없는데, 맛없는 음식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은 그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음식상을 앞에 놓고 맛없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의 삶은 참 가난한 삶이다.˝

물론 음식, 고마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가족이 해주는 음식이야 투정하기가 좀 그렇지만, 내 돈 내고 먹는 음식이야 투정 좀 했기로서니 뭐 그렇게 문제가 될까요? 게다가 맛없는 음식 먹은 게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닌 다음에야 투정 못할 이유는 없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어느 글에서 썼듯이, 맛없다고 식당 주인 앞에서 투정하는 것도 손님이 갖춰야 할 예의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오히려 맛 없는 음식을 보며 투정을 하지 않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풍족한 삶이 아니라 피곤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주는 대로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바엔 점심은 하나의 해결해야 할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만큼 기쁜 일도 드뭅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는 일보다 즐거운 일도 드뭅니다. 오늘부터라도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점심이 되도록 해보면 어떨까요? 맛있는 점심을 위해 가끔은 조금 먼 곳이라도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유쾌한 오후가 펼쳐지길 기대하면서, 혹은 맛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보기를 기대하면서 박자경과 허시명의 《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 그와 그녀가 떠난 음식기행》에서 발췌한 글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뜨거운 새우 등살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포근포근한가 하면 말큰거리기도 하는 새우살이 입 안 가득 찼다. 음, 구수하고 달았다. 비닐 천막을 통해 양식장 물이 내다보였다. 비닐 때문에 우련히 보이는 물은 안개 낀 강 같아서 내가 마치 바람 부는 가을 강가에 앉아 뜨거운 새우를 푸짐히 쌓아 놓고 두 손에 잔뜩 새우살을 묻혀 가며 까먹고 있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 손에 새우살 냄새가 고소하게 배어 갈 때였다. 기억 표면으로 `새비`라 불리던 사람이 물에 빠진 지우산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새비란 새우를 가리키는 남도 사투리다.[박자경, 허시명, 《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 그와 그녀가 떠난 음식기행》, 동아일보사, 2005,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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