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그는 자신의 정신적 자아가 자신의 진실된 자아라고 믿고 있었으나 지금은 건강하고 용기 있는 동물적인 자아가 진실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그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신뢰하게 된 것은 자기를 믿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우선 자기를 믿는다면, 모든 문제는 언제나 안이한 쾌락만을 찾는 동물적인 자아가 아닌, 이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타인을 믿는다면 그가 해결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다 해결되어 있었다. 대개 정신적 자아에 반(反)하여 동물적 자아가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일단 남을 믿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네흘류도프가 신이라든가 진리, 부(富), 가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읽거나 말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를 당찮게, 사리에 맞지 않은 웃음거리로 여겼다. 심지어 어머니와 고모들까지도 이를 점잖게 놀리며 그를 우리 철학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읽거나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하거나 프랑스 극장의 우스꽝스러운 희극을 보고 그 얘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면 모두들 그를 칭찬하고 추켜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