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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 전쟁
미사키 아키 지음, 임희선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몇 년전, 메멘토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던 중 주인공의 대사 한 마디가 너무나 강렬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눈을 감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보이지 않는 일,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매일 접하는 연예계 뉴스만 하더라도 사람들마다 '진실은 저 너머에..'라며 쉽사리 신뢰하지 못하지 않는가. 우리는 보이는 것들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보이는 것들에만 집착하고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그러한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도 모른채.. 이 책을 읽으면서 메멘토라는 영화가 기억 속에서 상기되었던 것은 이 책 역시 내가 느끼지 못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이웃마을전쟁'이다. 어느날 갑자기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주인공은 이웃마을과의 전쟁 소식을 듣게 되고 읍의 부름을 받아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음에도 주인공은 전쟁을 느끼지 못한채 무심하게 지낸다. 다만, 내 주변의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는 정도만 인식했을뿐. 하지만 주인공과 함께 전쟁 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고사이의 '전쟁의 빛을 몸으로 느껴보라'는 말을 듣고 그 때부터 전쟁이라는 것을 천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무심히 행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의 참혹한 결투였음을 깨닫게 되고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뒤늦게 나마 깨닫게 된다.
전쟁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미국과 이라크, 아프간과의 전쟁, 핵과 미사일, 그리고 많은 희생자들... 이 소설은 이런 전쟁을 중심 소재로 잡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전쟁 소설'은 아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전쟁은 주인공에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소설의 구성과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소재는 나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저자의 문체 역시도 건조할 뿐더러 긴장감이 느껴질만한 사건없이 진행되다 보니 이게 전쟁 소설인지, 그냥 느긋하게 옛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아마 저자가 노린 것이 이런 부분이 아닐까싶다. 그리고 저자의 노림수가 아주 적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마지막 챕터가 아닐까. 고사이의 남동생 여자친구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자신의 일에 열심히이다. 하지만 그 일이 전쟁 중에 남자친구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혼란을 느낀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자신의 일을 그만둔다거나 항의를 하지도 않았겠지만.. 저자가 나에게 이야기해주고자 하는 부분이 몸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나의 독서 내공이 미약한 탓에 이를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현재 일어나고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없는 전쟁과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행정 상의 일로서 자신의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고사이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주임, 그리고 직접 전쟁에 참여했다가 희생을 당한 고사이의 동생과 자신도 모르게 전쟁에 참여했던 그 여자친구. 독특한 소재와 각기 다른 인물들의 모습들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이야기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쟁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전쟁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과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꾸짖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