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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서점이었다. 당시, 유쾌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상해있었다. 누군가의 위로를 얻기보다는 혼자 마음을 정리하는 성격이여서 흥분된 감정을 추스리고자 혼자 대형서점을 들렀다. 멍하니 서점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한 권의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상관없다는 투로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나의 마음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었지만 안타까운 주머니 사정으로 다시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질러버렸다. 보통 나는 책을 고를 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평이나 책의 일부분을 먼저 읽어보고 구입여부를 선택하는 편이다. 이렇게 감정에 이끌려, 제목 하나만 보고 책을 구입하게 된 건 처음이었다. 책이 배송되자마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책을 펼쳐서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왠지모를 묘한 느낌이 드는 것도 제목에 빠져 읽게된 첫 소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앞 부분에 시 한 편이 실려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라는 시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이 시의 한 구절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세계는 너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네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시의 구절....
이 소설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로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 두서없이 등장했다가 두서없이 사라지는 인물들은 자신이 겪은 독특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경험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일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든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가질만한 일탈의 경험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갖게된 느낌들을 솔직하게 펼쳐낸다. 결국엔 그들은 외로움을 내비친다.
저자는 그들의 외로움을 해결해주고자 함이었을까. 한 사람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외로움을 내비치고, 그 다음 사람이 경험담을 풀어내고 외로움을 털어내고.. 이렇게 마지막 등장인물까지 등장하고나서 저자는 이 모든 사람들을 모두 연결시켜준다. 약간의 무리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한 잡지의 저자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달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존재할 텐데, 그 달을 한번씩 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그 달을 본 사람들과 다 연결이 된다.'. 말 그대로 아무리 외롭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리고 절망스러워서 죽고싶더라도 너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해준다.
외로움은 나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을 때 기인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점을 너무나 잘 집어내고 있다. 마치 '너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이해하고 있으니 마음껏 쏟아내보라.'는 식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비록 흔치않은 경험담들이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마치 그들의 외로움을 해결해준 해결사가 된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외로움도 조금은 덜어진 듯한 착각이 생기기도 하였다.
읽기에 순조로운,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한 챕터를 읽고 잠시 덮어서 생각 좀 하다가 다시 읽어야하고.. 그래서 읽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던 소설이었다. 문장이 어렵다기 보다는 책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거웠기에 읽고 난 뒤 약간의 소화시켜줄 시간이 필요했었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너무 좋다. 책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아닌 책과 내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 비록 제목 하나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소설이었지만 좋은 소설, 좋은 작가를 찾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또 외롭다고 느껴질 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봐야겠다. 나는 혼자가 아닌, 모든 이들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