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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인 서울 ㅣ 사계절 1318 문고 122
한정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반희는 자신이 손바닥만 한 토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을 뜨자마자 흰 털로 뒤덮인 앞다리가 보였고, 가슴과 배까지 모두 뽀얀 털로 뒤덮인 앞다리가 보였고, 가슴과 배까지 모두 뽀얀 털로 북슬북슬했다'
아무런 전조 없이 훅 들어와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느꼈다. 자연스레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고 작가는 잠자를 염두해 두고 썼을거라는 생각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 딱 한사람 누나 빼고.
주인공 반희는 자고 일어났더니 토끼로 변해있었다. 벌레도 다른 무엇도 아닌 토끼로 변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지만 독자는 자연스레 반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기르던 토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반희는 1등에 집착하고 주변의 친구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해서는 안될 짓까지 하는 아이다. 하지만 독자는 반희에게 측은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1등을 하지 못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아빠, 1등을 하지 못하면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엄마 사이에서 성장을 하는 반희가 제대로 된 인성과 도덕성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커야지.' 라는 잣대를 대기에는 양육자가 너무나 비뚤어진 상태다.
"너 이 새끼! 공부 안 했지? 안 하고서 시험 못 볼 거 같으니까, 아픈 척 하는 거 아니야? 그래, 대가리를 그 따위로 굴린다, 이거지? 이 새끼가 아주 매를 벌어요. 매를!" (p39)
"수지가 입원을요? 교통사고.. 그건 첨 듣는 이야기에요. 그 얘한테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요. 그나저나 혹시 차미라는 아이 알아요? 걔 몇 등급이나 나오나요? 예전에는 그다지.. 아, 어릴 때 우리 반희와 좀 가까이... 아니에요. 그런 애가 우리 반희의 친구일리 없죠."(p79)
"1등을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마.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실력이야. 그게 무엇이든 말이야.잘 기억해. 네가 1등 하는게 너만의 문제인 ㅈㄹ 알아? 아빠의 명예고, 엄마의 체면이고 우리 가족의 자존심 같은 거야!"(p122)
아빠는 험한 말과 폭력을 일삼고, 엄마는 그저 아들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다. 아들의 다른 무엇도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건 딱 하나 '1등'. 카프카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잠자에게 원하는 것도 딱 하나 '돈' 이듯이 두 작품 모두 그 존재 자체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떤 도구로서 존재할 뿐.
반휘는 그런 부모님의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 받고 자신의 성적을 위해서 수지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에 일진 '민규'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옛날 친구 차미가 그 사실을 모두 알고 반휘의 엄마 아빠도 알게 된다. 아빠는 자신의 명예에 흠집이라도 잡힐까 일을 덮으려고 노력하는데.. 엄마는 감각적으로 갑자기 반희방에서 나타난 토끼가 반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보통의 엄마와는 아주 다른 반응을 보인다. 토끼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하고,
"반지야, 그 물건은 이제 쓸모가 없어. 제발 이리 내. " 하며 방에 가둬 버린다. 엄마에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기에.
카프카의 변신에서 잠자가 죽고나서 가족들이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간 것 처럼 , 반희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족은 잘 가던 호텔로 간다
" 안 와요. 반희는 돌아오지 않아요" 엄마의 단호한 말. "쓸모없는 물건이야!"
반희가 한 잘못은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어릴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부모의 인생의 악세사리처럼 취급받으며 쓸모없으면 버려질 수 있는 한 아이가 너무 안타까워서 읽고 난 후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