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의 <당신의 찾아서>는 바쁜 일상의 경주마처럼 달리는 우리들에게 울림이 된다.
정호승 시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위로로 가득차 있다. 무심코 지나치며 살아가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그것들의 마음이 되어 헤아려준다. 또 지나가버린 예전의 그것들을 기억할 수 있게 꺼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시를 읽으며 울테고, 사랑하는 어린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리움에 헤엄칠테다.
삽/ 감나무에 기대어 /삽이 쉬고 있다/평생의 할 일을 다하고/삽은 이제 고요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 삽은 고요하게 쉬고 있다. 쉼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 곁에서 함께 한 삽이 주인을 잃고 서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그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
굴뚝이 보고싶다/보고싶은 마음 굴뚝같은데/그 많던 굴뚝들 다 어디로 갔나/배고픈 동네ㅔ 사람들이 저녁이 되면/ 서로 밥이 되어주기 위해 저녁놀 사이로/ 밥 짓는 연기로 슬슬 피어오르던/그 많던 굴뚝들 다 어디 가서 만나나/(생략)
굴뚝 없는 집에 살던 사람도 시골의 굴뚝 풍경을 기억할 수 있다. 할머니 집 들어서는 초입 저녁 무렵에 바라보았던 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너무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그렇지 않은 지금과의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
이번 시집의 가장 주된 화자는 '새'다. 새가 되기도 하고, 새를 바라보기도 하며 시의 전반에 새가 반복 등장한다. 새는 사람과 달리 자유로움을 상징하기도 하며, 또 사람과 달리 물들지 않은 타락하지 않은 존재로 표현한다. 인간은 새에 비해 무능하고 더럽혀진 것이고, 새는 자유롭고 숭고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새는 정호승 시인 바로 자신이다.
창가에서/새 한마리가/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포르르 날아가는 그 짧은 시간이/바로 인생이라는 시간이라고/사람의 입이/새의 입으로 말하지 마시게/새의 입은 /부처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아침 공양을 할 수 있지만/사람의 입은 /부처님과 함께 기도도 올리지 못하고/ 차 한잔도 나눌 수 없다네
시인은 사람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좀 천천히 가며 자연에게 배우라고 이야기한다. 곧 시는 마음의 치유요. 내면의 고요함을 일으키는 음악이다.
경마장에서/사람들이 경주마가 되어 달린다/말들이 기수가 되어/사람들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후려친다/말들이 마권을 쥐고 괌망대에서/경주마가 되어 달리는 사람들을 웃으면서 바라본다/사람들은 승률에 대한 믿음만이/삶의 최고의 방식이라고 소리친다/인간으로서 지금 당신은 더이상 달리지 말아야 한다/말은 달리더라도 사람이 경주는 하지 말아야한다/(생략)
사람들은 경마장에서 말들의 경주를 바라보며 돈의 욕심을 낸다. 하지만 삶을 달리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 '경주마가 되어 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분노의 고삐를 잡고 질주의 경마장을 빠져나와 천천히 저 봄길을 걸어가야 한다.'
시집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논설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넌지시 던져준다. 그것을 받아서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우리는 시를 읽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자연 가까이, 배우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