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인문과학 코스모스 1
앙리 피렌 지음, 강일휴 옮김 / 삼천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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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궁금했던 점. 게르만족 이동으로 서로마제국이 몰락하고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문화로 바턴이 이어졌다는데,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로마 또 서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고트족이니 반달족이니 또 부르군트족이니 하는 파괴적 단어들만 들어봤지, 그들도 민족이고 그들의 나라도 권력체제이었을 텐데,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내 전혀 아는 바가 없지 않은가.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손에 잡는다.

이 책은 앙리 피렌 교수의 사후 그의 유고를 제자 베르코트랑이 정리하여 1937년에 펴낸 것으로, '역사서' 그 전 단계로서의 '자료집' 성격이 강하다.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듬는 단계를 거치지 못한 이 책이 읽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당대의 법률서, 공문서, 문학작품, 수도원 문서뿐 아니라 주교의 편지나 상인들의 장부 등 온갖 자료를 인용해가며 자신의 '주장 체계'를 세워나가는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논문 작성을 위한 토론회'의 일원이라도 된 듯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책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은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로마가 망했고 그래서 암흑과 같은 문명단절의 시대인 중세가 시작되었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사실 '갖춘 것 없는' 게르만족이 종교 제도 예술 어떤 면에서도 그 점령지역에 무슨 변화를 일으킬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로마문화에 동화되어 들어갔기에 비잔틴 제국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 로마'의 연속성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정작의 단절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이슬람 세력의 등장해 아프리카와 에스파냐를 점령하며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한 교역을 궤멸시켰기에 북유럽으로 그 생활의 축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프랑크 왕국 그 시대에 비로소 일어나게 되었다. 책 제목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는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택한 상징적 표어인 셈이다.

로마 멸망 후, 교황의 권위가 추락한 후, 라틴어라는 글자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교회와 수도원에만 있었고, 대부분의 귀족들은 물론 샤를마뉴 대제조차 문맹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왜 중세를 암흑의 시기라 부르게 되는지 알게 되고, 또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황제라는 존재는 암살이라는 운명을 피하기 힘들고, 권력자라는 사람들은 결국 눈이 멀게 되는 형벌에 처해지거나 수도원에 유폐되는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당시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 덤이라면 덤이라 할 수 있겠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책 제목의 마호메트는 단지 이슬람 세력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쓰였을 뿐, 그 자체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내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충분히' 읽을 기회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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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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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째 이 산 저 산 찾아다니며 찰칵찰칵 눌러대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항상 쓸쓸한 아쉬움이 자리했었다. 내 어렸을 적 어느 마을어른이라도 따라다니며 이 풀은 말이야 이 나무는 말이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내 자란 곳도 분명 '시골 분위기'였지만, 당시의 시대상황 그 어려움 속에 그 어느 누가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 또 바람 때문이랄까, 풀이니 꽃이니 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그 책 주문 버튼에 자동적으로 손이 가곤 한다.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몇 가지 점에서 마음에 든다. 우선, 이 책은 무슨 신기한 꽃이나 신기한 지식을 들이대며 이건 몰랐지 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잡풀'과 '잡나무'에 관해, 누구나 알고 있음직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모음이다. 바로 내가 바라던 '전체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그런 책. 설상화니 두상화니 그런 거북스런 일본식 용어도 모두 아주 부드러운 우리말로 바꿔서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 있다.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하도록 그려 넣은 그림들. 꽃 정보라는 관점에서야 물론 사진이 더 효과적이겠지만, 그거야 인터넷 톡톡 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일이고, 여기서는 때로는 신문을 꽃 모양으로 오려 붙이고 거기에 물감을 칠한 그림을 또 때로는 '어린이 솜씨' 같은 그림을 저자가 손수 그려 넣어, 어떤 때는 동화책의 분위기까지 물씬 풍긴다.

마음에 좀 걸리는 것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몇 년 동안 '어디엔가'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서 펴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 '어디엔가'가 <노동자의 힘>이란 기관지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잡초'니 '외래종'이란 단어를 '노동자'니 '이주 노동자'니 하는 개념과 동일시하면서 '직설에 가까울 정도의 비유'로 '딱딱한 메시지'를 전하는 곳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책 읽는 흐름을 덜컹덜컹하게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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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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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되는 게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은 어떨까. '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역겨운 단어들에 그냥 덮는다. 그리스 신화로 대변되는 서양인들 사고체계란 것이 뭐 어디 가겠나. 하지만, 읽던 책 끝내고 나니, 알라딘 뒤져봐도 마음에 드는 책도 없고, 손이 심심하다. 도대체 이 작가 어떤 사람이지? 인터넷 들여다보니, 이 책은 그의 후반기 작품으로 폴은 고갱이고 플로라는 트리스탄이란다. 어라, 그래? 별 볼일 없자고 덮어두었던 책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책은 플로라 트리스탄과 폴 고갱이라는 두 가지 전기소설을 한 章씩 건너뛰며 묶은 형식이다. 사생아로 태어났고 배운 것 거의 없었던 플로라가 불행한 결혼으로부터 탈출해 페루로 도망갔다가 '여자와 노동자가 연대하여 세우는 노조중심 사회'를 꿈꾸며 돌아와 불가항력에 대항하며 투쟁을 벌여나가는 그 혁명가의 모습과, '잘 나가던' 증권전문인 폴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 곧 이어 문명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자연을 찾아 타이티에 정착하지만 결국 방탕 속 몰락의 길로 깊이깊이 빠져드는 화가의 모습, 이 두 독립된 이야기에서 그들이 외할머니와 손자 사이라는 상징적 연결고리라도 찾아보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이다. 

어디까지가 실제 인물 주인공의 주장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생각인지 구별할 필요도 없다. 시대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도 없다. 그것이 소설이다. <마나오 투파파우>와 <네버모어> 같은 명작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또 그 그림 속의 모습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과 노동자들을 어떻게 인간이하의 비참한 삶의 상태로 부터 구해내야 하는지, 하지만 정작 그 수혜자가 될 당자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완고한지, 허영에 들뜬 위선적 귀족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역겨운지, 과거의 회상과 현실이 뒤섞어가며 흐르다, 때로는 작가 자신이 뛰어들기도 한다. '폴, 넌 사실... 그랬어. 너 자신은 부인하고 싶었지만, 안 그래?' 또 '플로라, 넌 ... 그거 사실 위선 아니었어?'  

남편이 쏜 총알이 플로라의 심장 가까이에 박혀 빼어낼 수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호와의 우정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그런 이야기도 나중에 나온다. '이룬 것 없이' 삶을 마치는 플로라의 마지막 모습, '비참한 한 생애'를 마치는 폴의 임종장면. 소설 속에 어디 善이 있고 또 어디 惡이 있던가. 오로지 '인간'들이 있을 뿐. 여기에선 마치 환상교향곡이 흐르는 듯하다. 천국은 다른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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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완결개정판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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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할 때는, '나중에 시간 날 때 한가로이 여기저기 들춰보며' 漢詩의 맛이나 한 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배달 온 책의 포장을 뜯을 때도, 그 두께에 눌려, 일단 어디 꽂아두었다가 긴 긴 겨울밤에나 읽어야지 그런 생각이었고. 하지만, 웬걸. 몇 페이지 건드려보다 상황이 달라졌다. 다른 일 다 잊어버린 채 며칠 동안 그냥 푹 빠져 속사포처럼 읽어나갔다. '천천히 되새기며' 읽는 것은 어차피 또 나중 일이고.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24개의 테마로 구분하여, 漢詩와 詩人의 세계 그 성격과 특징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詩作에 있어서의 기본 마음가짐은 어때야하는지, 詩에 쓰이는 단어와 표현의 선택 거기에는 무슨 바탕생각이 깔려있는지, 詩想이 떠오르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얻기까지 얼마나 피 말리는 과정이 숨겨져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풍부하고 생생한 故事에 곁들여, 시원스레 풀어나간다. 문장 하나하나 해석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깊이가 읽는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唐代와 宋代의 詩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골치 아팠던 五言絶句니 七言律詩니 거기에서 平仄 또 押韻 규칙이 어떠니 하는 그런 이야기가 이 책에는 없다. 그저 작가가 펼쳐 보이는 시의 세계와 거기에 곁들여진 사상을 즐기면 된다. 그렇다고, '무게 잡는' 시들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중간의 몇 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글자'와 '모양'을 갖고 '장난치는' 시들로, 눈물이 글썽글썽해질 정도의 사실적 묘사가 가득한 시들로, 가득했다. 한 마디로 '漢詩 世界의 전체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그 번역된 '한글 詩'의 아름다움이었다. 이제까지 각인되어있던 '어딘가 툭툭 걸리는 漢詩'란 생각이 씻은 듯 사라진다. 우리 땅의 詩건 중국 땅의 詩건 이 책의 번역은 어색한 흐름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풀어 쓰는 것 역시 또 하나의 詩作일진데, 이 작가는 멋진 詩人일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말 詩'를 정리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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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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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generic하고 '촌스러운' 제목이라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래도 이제 책을 읽었고,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손에 잡았었다는 흐뭇한 느낌이다. 그냥 '상식이 넓어지는' 그런 수준의 책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습 또 역사에 대한 이해라는 소득을 얻었다는 그런 흐뭇함. 그래도, 글쎄 내가 저자였다면, 어떤 제목을 붙였을까. '내 젊은 시절의 독서 산책'? 아니면, '불후의 명작들에 기댄 나의 변명'?

이 책에서 저자는 '그 불투명한 시기의 학생시절'에 읽었던 책들 중 14권을 골라, 어떻게 그 책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 책이 무슨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다루는지, 20대 그 당시에는 어떤 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 면이 새롭게 보이는지, 차분하게 풀어나간다. 그 치밀함과 자상함. 마치 저자와 마주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 제목이 '무슨 책 14선'이 아니고 '독서'이듯이, 저자는 선택된 책 하나하나에 대해, 때로는 원문의 일부를 실어가며, 그 작가가 어느 시대의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느 상황에서 그 글을 쓰게 되었는지, 또 비슷한 아니면 대조적인 다른 책 다른 사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들의 유사점은 무엇이고 차이는 무엇인지, (이를테면 조지 헨리의 '진보와 빈곤' 이야기를 그 자체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리카르도와 아담 스미스의 생각과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베블런과는 그 접근법이 어떻게 다른지) '큰 그림틀'에서의 그 작품의 위치는 어디인지 또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들려주려 애쓰고 있다.

어쩌면, 편향된 도서 선정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긴 어떤 선택이라고 그렇지 않겠나. 더구나 '정치인 유시민'의 선택 아닌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객관적'이라는 생각이다. 도스또옙스키 푸시킨 솔제니친 또 마르크스 최인호 리영희는 그 이름 값만으로도 수긍이 갔지만, 솔직히 맬서스의 인구론이나 다윈의 종의기원은 전혀 뜻밖이었다. 사실 내 읽은 적도 없지만 마치 익히 알고나있는 듯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던 책들 아니던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 두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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