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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역사철학자들 - 토인비에서 월러스타인까지
임희완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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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된 것 아닌가? 이 책은 아마도 임희완 교수가 건국대에서 담당했던 어떤 과목의 강의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역사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무슨 큰 그림에 해당하는 개괄적 내용이라든가, 이 책에서 다룬 이 사람들이 그 큰 틀의 그림에서 어떤 위치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런 성격의 내용을 기대했는데, 그저 다닐레프스키나 슈펭글러 등에 대한 짧은 언급 후, 책의 대부분을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강의 때 다룬 것으로 보이는 토인비, 후쿠야마, 헌팅턴, 뮐러, 윌러스타인, 버먼등 몇 사람이 쓴 책 내용을 부분적으로 재생한 컬렉션으로 채워, 무슨 가이드북이나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은 그런 기분이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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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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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켜놓고 듣다 가끔 드는 생각. 모차르트나 리스트 그 시대의 사람들 중 지금 이 음악을 이렇게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나중 시대에 태어난다는 것 이보다 더한 특권이 있을까?

어디 꼭 시간적 격차뿐이랴.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그 대학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얼마나 특권에 해당하는가. 더구나 2500년 전 그 혼란의 시대에 선택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그 깊은 사상과 철학을 말이다.

 

이 강의록은 여타의 중국고전의 나열이나 내용소개의 책과는 그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저자가 강조하듯 이 책은 해설서가 아니라 古典讀法 즉 고전을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또 그 사상을 강조하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가며 ‘관계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방법을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옛것이라는 것이 과연 오늘날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서문과 시 또 주역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본론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부분에서 논어 맹자 노자에 대해 비교적 자상하게 또 장자 묵자 순자에 대한 설명 그리고 한비자의 역할과 그를 보는 법에 대한 강의내용이 나오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제자백가 이후 불교의 전래가 중국사상체계에 비친 영향과 유교의 재정립에 대한 개괄적 풀이가 따른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매우 차분하게, 또 단어선택 하나하나에까지 온 정성을 들여 절제된 표현으로, 각 학파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또 각각의 사상을 독립적으로가 아니라, 상호연관(저자는 비교라는 표현을 매우 꺼린다. 비교라는 것은 그 성질상 비교대상이 되는 부분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원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그런 이유로)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흐름이라는 중심생각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아주 차분히 짚어나간다.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깊은 인생철학과 사회관을 단지 그 중국고전이라는 줄거리에 따라 풀어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20년 넘게 철창 속에 갇혀있어야 했던 저자의 특수경험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중간 중간 고전의 몇 문장보다는 오히려 해설의 형태를 빌린 저자의 견해가 강렬한 빛을 발하곤 한다.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논리입니다.”(p.152)라든지, “정치는 근원적으로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p.172), 또는 “백성이 국가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할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지요.”(p.365)등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생각에 의해 바이어스된 부분이 없는 책이 어디 있던가. 오히려 그런 바이어스 때문에 인간적 체취가 느껴지고, 마치 지금 내가 아주 훌륭한 선생님을 개인교사로 모시고 성현의 가르침에 접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느낌에 빠졌었다. 책다운 책을 읽는 이 기쁨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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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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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부리는 것은 백성뿐. 민심이 붙좇으면 만세토록 군주이지만 민심이 떠나면 필부가 되는 것. 임금과 필부의 사이는 머리카락 차이로 떨어져있을 뿐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시습(p.255)
“최고의 정치는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이익(p.194)
“자기 당이면 어리석고 못난 사람들도 관중이나 제갈량처럼 여기고, 자기 당이 아니면 그 반대로 한다.” 이익(p.196)
“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왔으니,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한 아낙의 하소연이 처음에는 하찮지만...  조식(p.36)


역사의 한 시대에 자신의 뜻을 펼 날을 기대해보기도 하지만, 옳지 않은 상황전개를 맞으면 ‘날 죽일 테면 죽여라.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은 역사적 인물 35인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두 가지 면에서 마음에 와 닿는다.
첫째, 혹시 딱딱한 사료로 가득 찬 일화모음집 그런 성격의 책이 아닐까하던 걱정이 기우였다는 점이다. 시원시원한 필치에, 마치 여러 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아,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을 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공부하듯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둘째, 그 흔한 식자들의 잘못. 이야기가 좀 진행되다가, 교훈적 해설이 튀어나오는 것 아닐까하던 그런 걱정도 역시 기우였다는 점. 정통 사학자 이덕일(불행히도, 그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매스컴에서는 가끔 ‘재야사학자’로 분류되기도 함)의, 당위성은 당위성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역사인식의 깊이 때문이리라.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대적으로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조선시대 특정 시기에 이야기가 몰려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는 내내,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 먼 훗날 누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쓴다면, 愚民을 다루듯 편향된 보도와 멋대로의 해석으로 ‘주어진 자유에 역행하는’ 언론매체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곁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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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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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걸었었다. 두툼한 책 10권. 여기에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고 꿰어져 살아있을 것 아닌가.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책 전질을 사놓고 이렇게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내 서점 한 구석에 앉아 우선 몇 페이지 뒤적거리며 읽어보았더라면, 그냥 그 자리에 다시 놔두었을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이었다. 이제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인내심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인하는 나 자신이.

화려한 문장. 당연하다. 작가 이문열 아닌가. 방대한 내용. 당연하다. 열권인데. 하지만 좋은 말은 그런 통속적 표현으로 끝이다. 아무리 역사소설이라 하더라도 그 기본구성은 소설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 독자를 끄는 두 가지 요소. 이야기 전개에 대한 호기심과 중간 중간 책을 덮어놓고 되새길만한 생각의 깊이. 이 둘 중 어느 것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이야기와 설명이 이어지는 역사책’에 지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 이토록 서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분명 아직 출판할 단계는 아니었다. 아마추어가 글을 쓰더라도 이보다는 더 다듬어 진 다음에야 블로그에 올린다. 한번 나왔던 내용을 표현까지 바꾸지 않고 반복하는 것은,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그렇게 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앗아가는 행위요, 독자에 대한 모독이다. 등장인물의 배경설명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미리 장황한 인물평을 곁들여 선입견을 심어주고, 또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까지 미리 이야기해서야, 독자가 무슨 ‘맛’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책 군데군데 나오는 설명, 작가가 무슨 책을 읽으니 이야기가 어떻고 또 자기가 추측하기엔 어쩌고 하는 부분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의 문헌작업 보고서 같은 생경한 느낌조차 든다. 어차피 작가의 말대로 ‘역사소설은 사실 70 픽션 30’이라면, 그 사실과 픽션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녹아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가 무슨 책을 읽고 어디까지 생각했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직설적 교훈강의는 피했어야 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주인공’에 대한 이해와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인물판단은 독자의 몫 아닌가. 정 교훈을 정 포기할 수 없다면 은유법으로도 충분했다.

또, 제1권 거의 끝까지 계속되는 진나라부분은 과감히 뺐어야 했다. 유방과 항우 등장 배경설명에 필요하거나 나중의 이야기의 복선역할로 필요했다면, 거기에 맞게 아주 간단히 정리했어야 했다. 작가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해박한가를 알리려 해봐야 그게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라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것도 진부한 상식적 내용을 지루하게 끌어가면서 말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삽화. 책에 칼라를 집어넣었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내용의 어느 부분과도 연결되지 않는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들. 원래 ‘예술’은 워낙 고상한 영역에 속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독자의 내용이해를 돕는다거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거나 그런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내용을 새로 정리하여 개정판을 내야 한다. 작가 이문열의 이름에 걸 맞는 작품으로 기억되려면 말이다. 중언부언 웅얼웅얼 부분 다듬기만 해도 삼분의 일은 가볍게 정리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도 훨씬 더 짜임새 있게 살아날 것이다.
권수가 줄어들면 ‘전질 10권’이라는 느낌이 사라진다고? 그거야 말로 허풍이요 얄팍한 상술에 다름 아니다.
(강희대제 12권을 사기가 너무 아까워 중국원서를 샀더니, 단 4권이더라. 공연히 글자 크게 하고 빈 페이지 집어넣어 책값에 헛거품 집어넣는 이 잔재주는 언젠가 우리 출판계를 호된 부메랑효과로 몰아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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