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은 없다 - 2008 대표 에세이
김서령 외 41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08년 최고의 에세이 42편을 읽었다. 42명 작가의 일상을 몰래 엿본 느낌이랄까. 감동적인 이야기, 가슴 아픈 이야기, 색다른 시선으로 본 이야기,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 등등...... 읽은 수필의 수만큼 내 삶이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불혹을 몇 년 앞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노쇠하신 아버지와 무럭무럭 커가는 아들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너무 일찍 느끼고 있는 요즘, 60줄의 작가들이 쓴 노년의 쓸쓸함과 여유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글을 읽는 그때의 내 상태에 따라 받는 느낌도 분명 다를 것이다. 읽은 글을 다시 찾아보면서 몇 편의 수필을 되짚어 본다.

혁명을 꿈꾸는 자아가 또 다른 자아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글인 ‘새우가 등을 펴면’. 진정한 혁명은 세상 밖에 있지 않고, 나 자신에 있다는. 서로 충돌하는 내 자신 안에서 싸움을 그만 둘 때 서로가 꿈꾸는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는 깨달음을 빗대어 들려 준 새우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내세나 천국 따위의 희망에서 벗어나 완전히 죽어서 흙과 동화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간절히 하고 있다네.’ 67년간 같이 살아온 자신의 그림자와의 대화를 통해 노년이 느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공감할 수 있었던 ‘관여의 그림자’.

전속주례를 보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결국 그만둘 결심을 하는 전직교수님의 고백을 담은 ‘체통을 위한 서설’. 확고한 직업관을 갖지 못하고 체통을 내세우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담았다.

어릴 적 살던 집을 생각하는 ‘집으로 가는 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찾았던 옛집을 기웃거리고 얼른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던 내 경험이 생각났다. 그 옛날 우리 집의 지금 주인을 마주치기 싫었으리라.

‘텐포족, 또 다른 나의 슬픈 자화상’ 서점에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5~60대를 ‘5060 서점 텐포족’이라고 한다. 60대 이후를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걱정하는 나에게 너무도 맘에 와 닿는 현실이었다.

70줄에 찾아든 몸의 반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탱해 준 몸이 고맙단다. 앞으로 살살 달래며 걸을 수 있는 날까지 걷겠다는 ‘내 안의 반란’

‘나이가 들었다고 마음까지 늙은 줄 아는가’ 나이 들고 마음까지 늙어가는 모습에 다시 마음의 반란을 기대하는 ‘노마의 반란’

‘나는 그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를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고 나를 믿을 수 없어서였다.’ ‘그의 전화는 내게 일용할 양식이었다.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듯 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루를 견딜 힘을 얻었다.’ 극도의 자제력이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지고 가슴 아팠던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

‘용서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자리에 놓아보고 그 마음의 각을 읽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돈을 꾸고 사기 쳐 도망간 단짝 친구를 27년이 지나서야 용서하게 된 사연인 ‘각도’

묵언수행 3박4일을 마치고 말의 소중함을 깨달은 ‘너와 나 사이 말이 있어 아름답다’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푸념소리를 어느 덧 자기가 하고 있슴을 깨달은 ‘대룡산 호랑이는 뭐 먹고 사나 몰라’. 앞으로 집사람의 푸념소리를 잘 들어줘야겠다는 맘을 갖게 되었다.

‘부부란, 동반자라는 이름의 한 축에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의 완충지대를 공유함으로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싶다’ 부부사이의 거리(距離)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간격’

이 외에도 많은 주옥 같은 글들이 여름날 더운 밤 시원한 별 빛 마냥 내 가슴을 시원하게 비춰준 듯하다. 두고두고 책장이 꽂아두고 간직하고 싶은 글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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