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 속이는 법 속지 않는 법
로버트 J. 굴라 외 지음, 김슬옹 옮김 / 모멘토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논리로 속이는 법 속지 않는 법>

버트 존 굴라 지음/ 이경석 김슬옹 옮김


1. 머리말을 보면서

참 좋은 머리말이다. 저절로, '마흔여덟 아까운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로버트 존 굴라(1941-1989)를 떠올려보게 된다. "굴라는 그런 사람이었다"로 끝나는 소개가 더 마음 아픈 것은, 이 머리말을 쓴 헌터 루이스가 굴라가 재직한 그로턴고교의 졸업생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니까 먼저 간 선생님께 그 제자가 머리말을 쓴 격이다. 좋아 보인다. 굴라라는 사람에게 믿음이 간다.

게다가 이 머리말이 퍽 잘 짜여 있다. 친밀하고 사적인 느낌이 나는 첫머리에서, 굴라 스스로 밝힌 이 책을 집필한 까닭, 이 책에 대한 간추린 정보(요약)와 이 책이 좋은 점을 선선히 잘 내놓았다.

먼저 굴라가 밝힌 집필동기, "여럿이 모여 있을 때면 종종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을 보며 제가 느낀 안타까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로턴의 교과 과정에 비형식 논리학을 신설하게 됐고, 거기서 이 책이 태어났습니다." 굴라는, 헌터 루이스 말을 빌리면 '존재하는 모든 논리적 오류와 허위를 잡아내어 이름을 달고 분류'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우리 일상을 끊임없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음 헌터 루이스가 요약한 이 책에 대한 간단정보, 오류 유형 150가지를 꿰둟는 기본주제란 사람들이 지닌 습관적 경향이며 이는 다음과 같다.

① 무질서-논증을 적절한 데서 시작하지 못하거나 논리전개를 올바르게 해나가지 못하는

② 체계성의 부족-대상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범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③ 일관성이 없는 경향

④ 명료하지 못한 경향

⑤ 부적절성의 경향 -논점이나 주장과 무관한 정보 또는 논증을 들이미는

⑥ 불완전성의 경향 -중요한 사실이나 요점 혹은 관점을 빼먹는

실제 이 책을 읽어보면 이처럼 뭉뚱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세하게, 자잘하게 다뤄진 일상의 '허튼소리'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빠져 있다.


2. 본문을 보면서

이 책 전체는 17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류 유형은 155가지나 제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무척 신나게, 재미나게 읽힌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구와 감정이 빚어내는 오류나 성향을 읽다가 몇 번이나 그에 해당하는 사례나 사람을 떠올리면서 "옳거니" 했더랬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중간을 넘어서면 겹치는 게 있고, 그게 그거 같아서 뭔가 수렁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끄트머리 쯤에 '삼단논법'과 지금까지 배운 원리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정리해 놓은 걸 읽을 때면 십 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수렁을 만나기 앞서,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일반적인 경향들을 보자.


1.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2. 자신의 선입관과 경험을 상황에 투사한다.

3. 일회적인 사건에서 일반론을 이끌어 낸다.

4. 문제를 분석하는 중에 감정적이 되어 개인적 감정을 객관성보다 앞세운다.

5.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며,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곤 한다.

6. 사후에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 정당화한다.

7. 사안에 관련된 것과 관계없는 것을 구별 못한다.

8. 눈앞의 문제에서 주의를 딴 데로 곧잘 돌린다.

9. 문제에 따르는 여러 결과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단순화한다.

10. 겉만 보고 판단하곤 한다. 본 것을 잘못 해석해서 판단이 심각하게 빗나가기도 한다.

11. 자신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는 수가 많으며, 일반적 주제를 논의할 경우에 특히 그렇다. 신중히 생각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나 편견, 선입견, 호불호, 희망과 불만에 휘둘린디.

12. 일관된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드물다. 증거를 살펴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믿고 싶은 것을 믿은 뒤에 그 같은 행위나 믿음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낸다.

13. 진심을 말하지 않거나 자신이 말한 바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설득의 기술』에 실린 네 가지를 더해 놓았다.

14. 대부분의 사람은 쟁점이 복잡하기보다 단순하다고 여기고 싶어 한다.

15. 자신의 편견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원한다.

16.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주류'에 속하는 데 비해 상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17. 자신의 좌절과 실패의 책임을 전가할 적을 필요로 한다.

이 가운데 '아, 이건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을 말해 보자면......한둘, 아니 두셋, 사실 열을 넘는 듯. 빠져나가기 힘들다. 물론 다른 사람들, 가까이 내 둘레 있는 사람들을 꼽아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1장 제목이 “삶엔 허튼소리가 그득하다”일 수밖에.

그리고 2,3,4장이 다루는 ‘감정의 언어’들은 눈여겨볼 곳이 많다. “당신이 먼저 적을 치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칠 거야.”라고 떠들어댔던 미국 백악관 전쟁 논리가 <004 공포에 호소한다>에 나온다. 전대미문의 예방전쟁이었던 2003 이라크전쟁은 사람들이 갖는 막연한 두려움, 불안을 키우며 지지받지 않았던가.

감정의 언어들은 사람들이 쉽게 감정에 휘말린다는 점, 그리고 감정이 논점과는 상관없는 미묘하고 은밀한 말에 휘둘린다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사람들 삶, 사회나 국가를 둘러싼 말들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5장부터는 논리학에서 다루는 분야로, 논리를 다루는 다른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문어적이라면 굴라의 것은 구어적이다. 가령, 언젠가 100분토론에서 누군가가 저질렀을 법한 사례들이 그득하다고 하겠다. 물론, 바로 내 이웃, 배우자가 하는 말들에도 있다. 13장 둘러대기 편을 보면서 여기만이라도 꼭 그 사람-배우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우유부단하게 질질 끈다”나 “한 걸음씩만 나아가자고 한다”, “질문을 바꿔서 답한다”는 곳!(제목만 큰 소리로 읽어주었음)

책 구성에 따르면, 굴라는 허튼소리로 속이는 법을 제시하고서, 거기에 속지 않는 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대체로 각 장 구성이 그렇다. 그리고 첫 장에 이 허튼소리들이 왜 나오는지를 두고 사람이 지니기 쉬운 일반적인 경향을 말했다면, 마지막 장에서는 속지 않을 원리를 정리해서 보여 준다.

핵심정리

1. 절대론을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절대로’와 같은 단어를 즐겨 쓰는 사람

-특정 집단의 구성원 모두를 같은 성질의 사람으로 말하는 사람

2. 일반화를 조심하라.

3. 객관적이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적이고 평가적인 말을 쓰는 사람을 경계하라.

4. 입증되지 않은 일반화를 사실에 기초한 증거와 혼동하지 말라.

5. 논점을 명확하고 엄밀하게 규정하라.

6. 증거가 논의 주제와 직접 관계된 것인지 확인하라.

7. 어떤 권위(자)가 증거나 증인으로 내세워졌을 때 무작정 믿지는 말라

8. 결론이 증거를 바탕으로 도출된 것인지를 확인하라.

9. 토론 과정에서 상대가 추측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

-논리전개할 때 꼭 필요한 단계들을 생략하지는 말라는 것

10. 이성적 토론이 격한 언쟁으로 바뀌는 일을 적극 피하라.

11. 증거를 철저하게 챙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별하지 않도록 하라.

12. 하찮은 트집을 잡지 말라.

-논쟁을 위한 논쟁은 하지 말라.

13. 비판적을 생각하라.

-오류가 보이면 건성으로 넘기지 말고 마음에 새겨두라.

-상대에게 지적하지 않을 경우에도 속으로 ‘저것은 허튼소리다’라고 하라.

14. 논증을 들으면 검토부터 한 뒤 그 결론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라.

-제시된 명제들은 참인가?

-증거가 완벽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가?

-결론이 증거들로부터 논란의 여지 없이 도출되는가? 아니면, 같은 증거에서 다른 결론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

15. “포르투나토가 내게 저지른 수많은 못된 짓을 되도록이면 참아왔으나, 그가 감히 모욕까지 가해 왔을 때 나는 복수를 맹세했다.”

마지막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틸라도의 술통>의 첫머리라고 한다. 복수심과 같은 감정에 휩싸이지 말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알싸한 문장.


세상에는 똑똑한 체하는 풋내기들이 넘쳐난다. 당신까지 그 반열에 들지 말라.


3. 책을 덮으며

독특한 책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논리책이다. 논리라고 하면 어떤 수학적인 것을 떠올리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들이 지닌 속살이 곧 논리임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민감하게, 예민하게 다루는 것이 곧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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