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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읽고나서 후회하고 있다. 후회라기보다는 아쉬움,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그려놓았을지 궁금하다. 구명보트와 호랑이, 소년. 이들의 지루하고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상을 그림을 통해 보았더라면 나는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사로잡히지 않은 덕에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붉은 빛이 밝게 우리집 마당을 내쏘일 때면, 십자가가 피를 뚝뚝 흘리는 예수님의 재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십자가가 어쩐지 우리 집 마당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갑해졌다가 유쾌해진다. 왜냐하면 신은 사랑이니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도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소년 파이가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마호메트, 예수, 비슈누, 마리아를 모셨던 것처럼. 나도 어린아이처럼, 그 인도소년처럼 신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삶은 엿보는 구멍이야. 광활함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입구란 말이야......이 작은 구멍이 내가 가진 전부인데 어쩌겠어!" 자신이 '유한하고 미미한' 고통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터져나온 말. 작가가 내게 던지는 미끼다. 이 미끼를 물면, 소설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게 된다. 얀 마텔은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 작품, 혹은 파이가 풀어낸 이야기들, 긴 허구로서의 이야기. 믿을 수 없는 것들이 계속되어 독자들에게 의심을 들끓을 때, 그러니까 그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눈이 먼 다른 사람을 만난다든가, 식충식물이 사는 섬에 닿는다든가, 그 때쯤 그는 사람들을 만난다. 일본인들 조사관들의 대화 기록은 작가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의혹, 의심 덩어리다. 우리는 파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잠깜 혼란스러워진다. '부풀리지 않는 사실적인 이야기'로 제시된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나면, 마음아팠던 리처드 파커와의 이별도 거짓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과연 그럴까 하고 갸우뚱하다가, 이게 뭐가 중요하지? '이야기는 엿보는 구멍이야'라고 사실과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이야기, 삶, 진실에 이르게 된다.
삶은 기적이거나, 창작이다.'직설적인 사실'로만 이루어지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