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리스
김선미 지음 / 한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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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리스는 시작부터 재밌었다. 소설 속 세상엔 사람을 복제한 클론이 있다. 클론은 사람처럼 움직일 수도 있고, 배우며 성장한다. 아마 손에 이식된 칩이 없다면 인간과의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다면 클론은 생의 끝을 안다는 것. 클론은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언젠가 소설 속 세상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 미래가 오면 소설의 주인공 시욱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똑 닮은 존재를 거울을 보듯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묘한 경험. 칩리스의 클론은 유전자 조작으로 공격성이 지워졌고 나를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클론 자신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게 현실이라면 나는 클론이 있다는 것에 안도할 수 있을까. 이미 대화도 나눈 사인데 언젠가 나를 위해 클론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게 놔둘까.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경험해 본 것이 없다. 그래서 착한 사람처럼 행동할 거라 단정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나는 소설 속 악인들처럼 악마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당장 심장이 필요하다면,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클론의 심장이 필요하다면 클론의 죽음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칩리스와 비슷한 소재인 영화 아일랜드를 볼 때만 해도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때론 진지했지만 거의 스토리의 볼거리만 즐겼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생각할 수 있는 독서의 장점 덕분에 이제야 칩리스를 읽으며 인간복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다. 소설의 주인공 시욱의 입장도 되어보고, 오안의 입장도 되어보았다. 그러니 과학의 발전이 축복이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다. 약간의 생명 연장과, 이윤창출이 있다 해도, 클론의 시대가 멋진 미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고통으로 지은 세상이고 고통을 모른척했기에 이룰 수 있는 세상이 멋진 세상일 리 없다. 칩리스와 같은 소설을 읽는다는 건 미래를 향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같기도. 인간복제의 세상이 감당할 수도 없고 놓을 수도 없는 플라스틱이 가득한 이 세상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클론이 없는 미래를 더 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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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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