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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내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다.
다만 우리가 아는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조금 비껴난 평행우주의 지구를 그린다.
그곳에서는 2011년, '정신평등주의'라는 운동이 시작된다.
소수의 타고난 지능과 우월함만이 찬미받던 과거를 청산하고,
모든 사람의 지능은 평등하다는 믿음을 지키려는 세상이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서.
이 운동은 손바닥을 뒤집듯 가볍고, 놀라울 만큼 단기간에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사람들은 평등이라는 아름답고 보기 좋은 말을 따라
이 운동에 동화되거나,
혹은 동의하는 척하며 침묵한다.
그 사회에서 누군가의 탁월함은
결코 돋보여서는 안 된다.
모두의 재능이 평등해야 하는 세상에서
뛰어남은 타인에게 열등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능은 미덕이 아니라 죄가 되고,
누군가가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우월함 자체를 제거한다.
모두가 같아야 한다.
뛰어나지 말아야 한다.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
그러니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평등이라고 믿는 세상.
그리고 서서히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 숨어 있는
억압과 폭력. 그리고 역차별을 서서히 드러낸다.
말도 안되는 평등의 논리가 읽는 내내 기가 차고,
때로는 웃기기까지 하다.
하지만 라이오넬 슈라이버 작가님은 진지하다.
이 운동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과정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내가 사는 지구에 정신평등주의가 일어난다면
정말 직접 마주할 법한 디테일들.
이렇게 바이든과 트럼프를 먹이는 스킬.. 인상적이다.
나는 지금, 안전하게 소설 밖에 서 있는 독자다.
그래서 이 세계를 남의 일처럼,
조금은 쉽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비슷한 운동이 시작된다면,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따른다면
나는 과연 집단지성에서 한 발짝 물러나
스스로 사고할 수 있을까.
나도 쉽게 바이러스처럼 감염되고 말지 않을까.
그럴듯한 말과 선한 명분에 감염되어
아무 의심 없이 동화되고 말지는 않을까.
소설을 다 읽고 돌아보니
곧 파이아키아에 나올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괜히 들었고,
인류의 역사를 꿰뚫을 만큼 심오하며, 마냥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이미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니 경계심을 가져야겠다.
경계심을 내려놓으면 이 소설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