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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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일상을 살다보면 그렇다. 매일 가던 출근길은 내 정신과 영혼은 어딘가에 놔둔 듯이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내 몸은 자동화된 버전처럼 알아서 목적지까지 잘도 걸어간다. 매일 지나가는 익숙한 장소일수록 더욱 주변의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동화된 로봇처럼 걸어갈 뿐이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타임스퀘어로 가던 그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영혼은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내 몸은 알아서 약속장소를 찾아가던 길, 갑자기 신나는 노래소리가 들렸다. TV로만 보던 가수 "데이브레이크"가 바로 내눈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둥둥 떠다니던 영혼이 돌아오고, 초점도 선명하게 잡히며 그제서야 주변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러 만나던 가는 길이 콘서트장이 되어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선물같은 순간은 일상 속 내 주변을 관심과 애정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자동화된 로봇처럼 걸어다니던 모습이 아닌 처음 길을 마주하던 순간처럼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처 몰랐던 많은 예술작품들이 곳곳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미술작품은 2021년 4월 현재, 전국에 2만 개가 넘는다. (p.73)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무심코 스쳐 지나왔던 거리위의 건축과 예술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도와줌으로 늘 보던 익숙한 것에도 새로운 눈을 뜨게 하고, 일상속에서도 언제든지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해준다. 책을 보기 전에 나는 특정한 장소에 있는 조형물들을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닌 익숙한 지형과 같은 어떤것으로서 무심하게 대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게 익숙했던 것들이 작품으로서 다가오니 세상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아름다운지 느끼게 된다.

그런말을 들은적 있다. 눈을 감았다 떠보자. 그때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상상으로 출발해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쇼핑을 하러 갈때, 버스를 타고 지나갈때, 거리 위를 걸어갈 때 만나던 모든 것들도 그렇다. 누군가의 상상으로 출발한 예술작품의 결과가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눈을 새롭게 뜬채 세상을 바라보면 나의 서울은 작품이고 미술관이다.

 

 

 

 

 

거리위 작품들은 특별히 작품설명이 적혀있지 않아 우리가 작품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기 어렵다. 하지만 거리로 나온 미술관 책 한권을 통해 미술적 가치를 들어보고,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며 일거양득으로 지식을 채울 수 있다. 또한 더 나은 거리 위 예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작품과 건축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4가지만 정리해보았다.

 

 

 

 

 

스프링

청계광장 X 클래스 올덴버그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다슬기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하며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한다." (p.37)

2007년 대선이 코앞인 시점이었다. 천천히 제대로 개울을 복원하고 조각물을 세우는 것은 대권 가도에 걸림돌이 될 게 뻔했다. 그는 '빨리빨리!'를 거듭 외쳤을 것이다. 그 결과, '길게 누운 분수대' '거대한 시멘트 어항'으로 불리는 청계천이 탄생했다. 복원된 청계천은 자연 하천이 아닌 한강과 지하수를 끌어와 흘려보내는 인공 하천이다. 그러니 청계천 초입에 놓인 <스프링>은 허구이자 위장이다. (p.40)

인공 개천이거나 말거나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청계천 버들치는 개울의 기억을 불러낸다. 주변 직장인들에게 점심 식사 후 청계천 산책은 피로회복제 역할을 한다. 청계천 입구의 <스프링>은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도심의 풍경이자 광화문의 랜드마크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빛과 그림자처럼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아픔을 가진 공공미술의 상징으로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하다. (p.42)

 

 

종로는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청계천도 물론이고, 그래서 저 소라껍데기 같은 "스프링"을 봐온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한번도 작품으로서 생각해보거나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배경이 있어 조금 충격도 받았고, 이런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거리 예술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민들레

최정화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 최정화 - 꽃, 쉼' 전시를 하면서 경복궁이 바라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당에 설치된 <민들레>는 장관이었다. 그는 시민으로부터 받은 냄비, 접시 등 식기 7천 개를 모아서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거대한 꽃을 만들었다. 거꾸로 홀씨가 모여서 민들레로 피어난 듯한 희망을 주는 작품이었다. (p.97)

일상의 물건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종종 팝아트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정화의 작품이 갖는 힘은 플라스틱이라는 흔한 소재가 갖는 여성성, 계급성에 있다고 본다. 값이 싸서 주변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제품은 주로 아줌마가 사용하는 물건임과 동시에 가난한 서민이 쓰는 물건이었다. (p.97-98)

대량소비 시대에 서민들이 애용했던 각종 플라스틱 제품은 이제 21세기 들어 공포의 대상으로 변질됐다. (p.99)

최정화는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진작 플라스틱을 귀하게 여겼더라면 이런 복수를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p.99)

 

 

가볍고 실용적인 플라스틱, 지금은 환경적으로, 인류적으로 최대의 골칫덩어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편리함을 합리화하며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최정화 작가의 플라스틱에 대한 작품을 응원한다.

 

 

 

 

 

코스모스 리조트

울릉도 X 김찬중 건축가

 

 

 

"객실 수는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수익은 적게 나도 좋습니다. 버킷 리스트에 올릴, 그런 건축물을 지어주세요. 우리나라에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그런 건축물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2015년 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설계를 요청받은 김찬중 대표는 이 같은 주문이 믿기지 않았다. (…)

좋은 집, 좋은 건축물은 이렇듯 건축가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함께 마주 보고 손뼉 쳐서 만들어낸 하모니의 결과다. (p.117)

사람을 압도하는 이 원시의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건축물의 형태는 도대체 어떠해야 할까. 그런 질문을 안고 궁리의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문득 별이 보였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순간 그는 '바로 이거야' 싶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초저녁에 떠서 새벽에 사라질 때까지 별이 그리는 포물석 궤적이 그의 눈앞에 그려졌다. 다이내믹한 천체의 비가시적인 움직임을 담은 리조트 '코스모스(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디자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p.118)

 

 

사진 한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코스모스 리조트. 건물이지만 오히려 바다의 파도같아 보인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탄생하다니. 이런 장소가 우리나라에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위 건축주의 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예술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코스모스 리조트는 이 책에 설명된 국회의사당의 건축과정과 많이 비교가 되었고, 아름다움은 인간의 욕심을 내려 놓았을 때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용산 X 데이비드 치퍼필드

 

 

건축가 치퍼필드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 "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으며 "하지만 노골적으로 한국미를 표방하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외려 그 본질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건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치퍼필드는 장방형의 당당한 형태, 희디흰 색의 순정한 맛, 어떤 장식도 없는 단순미 등을 통해 달항아리 이미지를 추상화했다. (p.145)

동양 건축에서 말하는 '차경(借景, 자연의 경치를 빌리는 것)' 효과를 한껏 살린 셈이다. 아모레퍼시픽 건물은 자신을 비움으로써 세상의 풍경을 끌어안았다. 서구의 건축가가 이 건축물에 구현한 동양적 미학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51)

이 건물 1층에는 현란한 간판도 상가도 찾아볼 수 없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이렇게 건물이 지닌 달항아리의 문인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경제적 이익조차 과감히 버렸다. 이것이 이 건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다. (p.151)

 

 

할 말이 필요없는 작품 중에 작품. 인공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매료되는 건축예술이었다. 그리고 한 외국인 건축가가 한국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모습에 감동도 받았다.

또한 매우 부럽다. 아모레퍼시픽 직원들.

 

 

 

 

 

공공미술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평범한 일상에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빽빽한 건물 숲속, 장을 보기 위해 찾은 마트 근처, 출퇴근길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 그 어디든 공공미술은 24시간 연중무휴 간판을 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p.296)

삶을 더 풍요롭고 즐겁게 살아보는 방법, 거리 위에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인간의 손이 자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할지라도,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과 메세지를 전해주는 작품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많은 고민으로 출발한 예술 창작물이다. 예술을 감상하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데 충분히 도움이 되는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상하는 모든이들의 내면도 아름다워질 것이라 믿는다. 눈을 크게 뜨고 일상속에서 예술을 발견해보자.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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