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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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고, 책을 읽거나 또는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면서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게임을 하면서도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탐구자세만 있다면 무궁무진한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뚫린 시선의 확장은 관대하고 자유로운 유연한 생각과 행동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풍부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 이 책이 제시하는 "미술"에 대한 관점은 흥미롭다.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며 이해해왔던 직접적인 소통의 방법을 벗어나, 여러 신체의 감각을 통해 이야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듯이 다가오는 "미술"적인 메시지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인 "옆으로 뻗어나가는 대화"에 관련된 지구의 이야기는 굳어버린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주는 따뜻한 마음을 만들어준다.

이 책은 14가지 주제의 미술 에세이를 통해, 예술에 다가가는 방법과 그 작가의 의도를 느끼고 교감하며 나에게 푸르고 건강한 인생의 씨앗을 마음에 하나 더 품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다정한 말을 곱씹으며 이 책을 썼다.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고자 했다. (p.8)

이 책은 굉장히 넓은 포괄적인 관점으로 생물, 무생물, 사물, 과거, 미래 등등 모든 것들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미술작품을 통해 말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불완전하고 나약하기에 서로 함께 기대며 힘이 되어주어야하는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 관계안에 있는 소중한 모든 존재를 느끼고 깨달음으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굳어버린 차가운 마음을 녹게 도와준다. 이렇게 책의 핵심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작품 하나하나를 관계로 연결하며 다음 작품을 소개하듯이, 현대 미술과 내가 관계를 맺고, 나와 주변의 모든 존재를 깨달으며 나아가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책이다.

하지만 나에게 현대미술은 고전 작품들에 비교하면 더 어렵고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벽으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은듯이 저자는 현대미술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과 함께 미술을 바라보는 마음을 열어준다. 그렇게 거리를 두던 예술에 한 발 다가가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라도 예술작품을 느껴보고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해봄으로 미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구나라는 새로운 대화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예술과 나를 따뜻한 관계로 연결해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현대 미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아름답고 화려하며 천재적인 테크닉으로 완성된 고전 예술작품들과 달리 현대미술의 작품들은 범위가 굉장히 크고 넓으며 받아들이기에 난해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 미술을 완성하는 목표가 예전과 지금이 다르기에 차이가 크지 않을까 싶다. 과거는 신과 소수의 지배층들을 위한 예술이 많았지만, 그 시절보다는 조금 더 평등한 지금 사회에서 현대 작가들은 무엇을 위해 작품을 그려나가고 있을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은 지구와 세상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미술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감상하는 모든 이들이 미술과 하나될 수 있도록 미술안에 참여되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점이 재미있다.

책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하면서 저자의 작품 해석을 더하여 글로만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심어준다. 책속의 작품들을 접하며 인상 깊었던 책의 몇가지 문장들을 정리해보았다.

 

 

 

 

 

돌로 구분을 부수고

지미 더럼

 

 

 

 

바로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작가, 지미 더럼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인상깊었다. 작가가 예술로 말하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사춘기처럼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혼혈 인디언 작가 지미 더럼은 세상이 정해주는 내가 아닌 독립적이고 유연하며 특별한 자신이 있다는 것을 미술을 통해 세상에 외친다.

그는 이 자화상에서 현재의 미국 원주민이란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혼종적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백인들이 허락하고 대상화하는 뻔한 원주민의 굴레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p.49)

작가는 순수한 미국 원주민이라고 주장하기는커녕, 매번 새로운 잡종으로 변신한다. 지미 더럼은 자신을 고정된 하나의 주체와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꺼이 거부한다. 다 같은 인디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입체적인 개인으로 한껏 반짝인다. (p.52)

원주민으로 등록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미대륙의 원래 주민으로, 처음부터 미국인이었다. 그런데 유럽 침략자들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역으로 원주민들에게는 진짜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미 더럼은 이 모순적인 폭력에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짚는다. 자신의 작품 속 인디언 형상에서 원주민의 혈통과 정통성에 대한 일방적인 환상을 덜어내고, 복잡하고 다채로운 개인의 정체성과 다름에 대한 유연한 이해를 담는다. 그 새로운 비움과 채움의 끝에 구분과 분류로 나뉘는 우리와 저들이 아닌, 각각 다른 나(I)들이 가깝게 뒤엉켜 살아갈 미래를 얘기한다. (p.57)

 

 

 

 

 

원숭이의 눈에 신성(神聖)이

피에르 위그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면서 키우기 전보다 동물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변했다.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소중한지 그리고 나와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까지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여섯번째 주제인 조은지 작가의 돼지는 잘 살기 위해 태어났을 뿐이라는 챕터도 인상깊게 읽었다. 특히 <봄을 위한 목욕>의 소를 목욕시켜주는 작품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눈물도 나고 식재료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소의 생명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피에르 위그의 <무제/인간가면(Human Mask)> 작품도 인간 우월주의의 이기적인 생각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피에르 위그 작업의 핵심은 관객이 이 자연스러움을 의심하는 데서 생긴다. 작가의 의도적인 미학적 배치가 유기적 생명체들의 아름다운 성장과 뒤섞여, 어디서부터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관객은 이쪽과 저쪽을 임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준으로 나눠보고 모아본다. 아까는 자연이었던 것을 지금은 예술로 바라본다. 지금은 예술인 듯하지만, 좀 지난 후에는 자연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과연, 자연을 제멋대로 규정한다. (p.86-88)

피에르 위그의 예술적 생태계 앞에서 관객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이 예술보다 덜 아름답지 않고 예술이 자연보다 더 구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문명, 자연과 예술이라는 인간 중심의 이분법적인 분류가 형편없이 느껴진다. 이 나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에서 관객은 자신도 작업의 일부이고, 자연의 일부이며,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을 수 있다. (p.88)

피에르 위그의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현대미술만의 특별함을 배울 수 있는 점이었고, 현대미술로 전하는 작가의 의도를 온 몸으로 흡수하듯 체험으로 이해하는 작품의 유도성이 여러 말보다 더 기억되고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면서 너무 좋았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가깝게

케이티 패터슨

 

 

 

<미래도서관>은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패터슨은 해마다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단어의 수나 글의 장르에 상관없이 글을 써줄 것을 요청하고 원고를 받는다. 그렇게 모은 원고는 나무가 다 자랄 떄까지 공개하지 않고, 봉인해서 오슬로의 공공 도서관 한 켠에 보관한다. 현재 방문객들은 글의 내용을 읽을 수는 없고,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에는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다섯 번째 작가로 초대되어 글을 쓰고 원고를 전달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 작업은 속도가 흥미롭다. 나무가 다 자라야 글을 인쇄할 수 있기 떄문에, 패터슨은 작업의 완성을 100년 뒤인 2114년으로 잡았다. (…) 무려 한 세기 동안 패터슨은 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우고, 백 명의 문필가들은 글을 쓴다. (p.163-165)

케이티 패터슨의 <미래 도서관>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발상이 너무 천재적이고 재미있으며, 판타지적인 느낌도 받는다. 내가 생전에는 볼수 없는 미래 도서관이지만 미래에 미래도서관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지금의 미래도서관이 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이또한 너무 특별하고 소중해진다. 모든 순간은 특별한 가치가 있기에 소중한 것 같다.

케이티 패터슨이 <미래 도서관>을 진행하는 목적은 도서관을 채우기 위한 책을 만드는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작가가 프로젝트를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마냥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을 멈추고 나무의 성장을 같이 지켜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자는 제안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느린 작업에서 관객들은 당장 크고 보기 좋은 완성품을 구경하는 대신,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는 여유로운 과정을 경험할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차분한 사유의 너른 뜰에서, 읽지 못하는 글에 대한 상상과 다음에 대한 배려가 나무와 함께 자란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읽을 책을 위해 나무를 심는 높다란 마음이, 짙은 숲을 이루어 모두를 숨 쉬게 한다. 패터슨의 <미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시간과 약속을 담는 가능성이라고 하겠다. 이 희망 프로젝트는 우리가 서두르느라, 깜빡 떨어트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주변에 대한 이해와 양보, 협력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준다. (p.167)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해석해주는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숨을 고르고 여유를 가지며 가능성을 꿈꾸는 희망 프로젝트라는 아름다운 의미가 따뜻하게 내 마음을 녹여주어 읽는 내내 미소가 흘렀다. 미래의 도서관은 현재와 미래의 관계에 대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작품과 관객 관계에 대해 등등 다양한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점이 멋지다. 미술의 참된 따뜻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술 그리고 세상. 세상은 그 자체로 예술이지만 진정한 예술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는 파괴하는 것 같다.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인한 이슈로 망가지고 있는 이곳을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하기 위해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올바른 한걸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교, 과학, 진화, 심리, 그리고 예술까지 모두 같은 말을 외친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다.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은 소중하게 지켜져야하고, 존중받아야한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이라는 미술 에세이는 같은 외침을 특별하게 전해준다. 이를 통해 미술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배울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아름다운 예술로 되돌리기 위해 미술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영향력을 알게 되어 좋았다. 미술을 더 사랑해야겠다.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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