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바로 어제의 감정조차 아득하고, 또 어떤 기억은 유치원 때의 일이 지금처럼 또렷하다. 기억은 블록처럼 시간의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이는 게 아니다. 여러 색깔의 물감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모든 색을 집어삼킨 어둠같기도 하다. 서랍처럼 한 칸 한 칸 구분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그러면 때마다 꺼내 보기도 하고, 넣어 두기도 하고, 잠가 두기도 할 텐데. 아예 비워 버리거나.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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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고내가 당신을 덜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에게 기대면 내가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인도하겠어. 여자인 당신의 무력함이 당신을 두 배로 매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남편이 되어서는 안 될 거야. 당신은 내가 했던 심한 말에 얽매이면 안 돼. 그건내 위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놀라서 한 말이야. 노라, 나는 당신을 용서했소. 당신을 용서했다고 맹세하오. - P112

아, 노라, 당신은 남자의 마음을 몰라. 자기 아내를용서했다는 걸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남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지. 자기 아내를 전심으로, 거짓 없이 용서했다는 것 말이야. 그럼으로써 여자는 두 배로 그의 소유물이 되니까. 그는 아내를 이 세상에 다시 낳아 준 거야. 아내는어떻게 보면 그의 아내이면서 그의 아이이기도 하지. 힘없고 무력한 존재인 당신은 앞으로 나에게 그런 존재가될 거야. - P113

그 말은 더 이상 믿지 않아요.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토르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옳다고 할 거예요. 그리고 책에도 그런 비슷한 말들이 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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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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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그들이 방에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등 뒤에서 웃고 수군대는 것만 같아, 잔느는 마주치는 사람들 앞을 지나갈 용기조차 없었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한 부끄러움과 본능적인 섬세한 배려를 지니지 못한 쥘리앵이 그녀는 내심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두 사람이 마음속까지, 생각의 깊은 곳까지는 서로 통하지 못하리라는 것, 때때로 포옹은할지라도 하나로 융합되지는 못한 채 평행선을 걸어가게 되리라는 것, 우리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일생 동안 고독하게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예감하며, 그와 자신 사이에하나의 베일, 하나의 장벽이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P100

쥘리앵은 여성의 그런 흥분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작은감동이 천지개벽처럼 마음을 움직이고, 미세한 느낌이 큰 변화를 이끌어 와서, 환희의 절정에 이르게도 하고 절망의 심연에 빠뜨리기도 하는, 사소한 것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는 그 감수성 예민한 존재의 마음속 동요를 쥘리앵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P105

남작은 미소를 머금고 다가와서 손을 활짝 펴고 활활 타는난롯불에 쬐면서 말했다. "아아! 오늘 저녁 불 잘 탄다. 밖엔얼음이 언다, 얘들아, 얼음이 얼어." 그리고 그는 잔느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아가야, 이게 이세상 최상의 것이다. 타는 난롯불, 불가에 둘러앉은 가족, 이이상의 가치는 없어. - P120

잔느는 자신의 마음이 넓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들판에 흩어져 있는 작은 빛들이 모든 인간의 고립에 대한 생생한 감정응 그녀에게 불러일으켰다. 모든 것이 사람들을 흩뜨리고 분리하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데려가는 듯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이란 늘 즐거운 것이 못 되죠."
남작이 한숨을 쉬었다. "얘야 어쩌겠나이다, 우리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랍니다." - P140

잔느는 나날이 더 애가 타서 부모님을 기다렸다. 자식으로서의 정 외에도, 자신의 마음이 정직한 다른 마음과 접촉해야할 새로운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일생 동안 모든 행동,
모든 생각, 모든 욕망이 항상 곧았던 순수한 사람들, 일체의치욕과는 무관한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 욕구였다.
이제 그녀는 타락해 가는 모든 사람들의 양심 한가운데서자신의 양심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갑자기 위장하는 기술을 배웠다 할지라도, 비록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손을 내밀어 백작 부인을 맞았다 할지라도, 그녀는 공허감과 인간에 대한 경멸감이 점점 더 커져 자신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같이 들려오는 그 고장의 하찮은 소문들은 그녀의 마음에 더 큰 혐오감과 인간에 대한 더 심한 경멸감을 불러일으켰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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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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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슬픔은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단다. 너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슬픔도 있고, 네 세계를 반으로 동강내는 슬픔도 있어. 그리고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슬픔도 있단다. 그건 네 몸에 있는 줄도 모르는 아주 작은 가시와 같아. 그 가시가 아주 깊은 곳에서곪아터져서 네 영혼밖에 들어갈 데가 없어지면, 너도 그제야 존재를 알게 되지. 난 그게 가장 힘든 슬픔이라고 생각해. - P370

"봐라." 올레타는 나무와 하늘, 날아가는 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기 인생이 있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이니? 나뭇잎들도움직이고 있어. 인생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 너처럼 특별한 아이라도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가 큰맘먹고 인생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돼." - P376

"어떤 사람이 지혜롭다면, 그건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살았기때문이란다. 지혜는 경험에서 나와.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걸깨닫고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는 데서 나오지. 넌 책을 많이 읽었고 덕분에 아주 똑똑하지만, 세상의 어떤 책도 진짜 지혜를 주진못해."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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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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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질 않아."
할아버지는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인 목소리다. 몸은 무겁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피부는 조만간 바람에 내동댕이쳐질 돛과 같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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