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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킨토스 ㅣ 고블 씬 북 시리즈
박애진 지음 / 고블 / 2024년 3월
평점 :
*도서제공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섹스 로봇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심오하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한 책. 소재와 배경이 흥미로워서인지 마냥 재미있을 거라고만 예상했는데, 생각해볼 거리를 정말 많이 남겨주었다.
행성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중세 유럽 귀족 사회를 재현한 행성이 배경이 되는데, 이 배경이 꽤 취향이라 앞부분부터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젤로델이라는, 겉보기에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가 이 귀족 사회에서 한 공작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카이유와라는 추기경이 이 의혹의 진실을 밝혀내며 플롯이 전개되는데, 사실 제로델이 정말 성추행을 했는가보다 그를 인간으로 봐서 추방령을 내릴 것인지, 로봇으로 봐서 폐기할 것인지가 주된 쟁점이다.
추기경이 만나는 귀부인마다 자신이 제로델과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렇기에 제로델은 인간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작품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로델과 육체관계를 맺은 귀부인들은 누구도 제로델을 독점하지 않기에 그와의 사랑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성추행으로 제로델을 기소한 가드 공작은 연인 간의 사랑에는 독점욕이 필수불가결하게 결합된다고 주장한다.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지만 어느 한쪽이 틀렸다 단정지을 수 없고, 작품 내에서도 그렇게 단정지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여러 질문이 던져지지만 결말부에 이르러 온전히 이런 의문들이 해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카이유와마저 제로델로부터 일종의 결핍을 충족받는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걸 우리는 사랑이라 믿고, 그걸 온전히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인간이 아닐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제로델의 가장 ‘인간다운’ 면은 그가 여러 의혹에도 침묵을 택하고,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히아킨토스’는 연인 아폴로가 던진 원반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그를 살려내려는 아폴론의 갖은 노력에도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와 같이 제로델을 욕망하고 그가 자신의 욕망에 따르기를 염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제로델의 운명은 다른 누군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이 제로델의 선택이었다면, 그는 끝내 인간이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