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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 존 폰 노이만, 게임이론, 핵폭탄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박우석 옮김 / 양문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죄수의 딜레마』(양문, 2004)를 구입한 날짜는 2005년 6월 16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서평' 비슷한 것을 써야지 생각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다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났다. 이 책은 " 존 폰 노이만 | 핵폭탄 | 게임이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당시 '게임이론'에 대한 관심으로 간략한 입문서를 찾다가 '게임이론'을 확립한 사람(존 폰 노이만)에 대한 전기와 게임이론을 핵무기, 냉전 등에 대한 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적고 있는 이 책을 선택한 것으로 기억된다. 먼저 존 폰 노이만, 게임이론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서평(감상 또는 추천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도록 하겠다.
존 폰 노이만
내가 이 글을 쓸 때, 그리고 당신이 이글을 읽을 때도 우리가 존 폰 노이만이라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왜냐하면 폰 노이만은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에서와 같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수행할 때마다 수천 개의 스위치와 회로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주기억장치(Main Memory)에 내장시켜 놓고 명령어를 하나씩 불러 실행시키는 개념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컴퓨터 구조를 ‘폰 노이만 구조’라고 한다. (p.116 이하)
‘천재’ 수학자인 폰 노이만은 1903년 헝가리에서 태어났고, 1957년 골수암으로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저서로는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 『힐베르트 공간론』, 『게임이론과 경제행위』등이 있다. 특히, 그는 20세기 전반 냉전 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 경제, 과학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앞에서 이야기한 컴퓨터 구조 이야기를 떠나서) 체스와 같은 2인게임에서 착안한 게임이론을 통용하여 정치, 군사,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삶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임이론
게임이론은 ‘어떤 행동의 결과가 게임(놀이)에서와 같이 참여자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다른 참여자의 행동에 의해서도 결정되는 상황하에서, 자기 자신에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을 분석하는 수리적 접근법(數理的接近法)’을 말한다.
개구쟁이 아이들 둘이서 케이크 조각을 나누어 먹게 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을 통해 손쉬운 게임이론의 예를 들면 이렇다. ‘부모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잘라도, 한 아이(또는 둘 다)는 자신이 더 작은 조각을 가졌다고 느낀다. (게임이론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한 아이로 하여금 케이
크를 자르게 하고 다른 아이에게 원하는 조각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탐욕이 공정한 분할을 보장해준다. 첫째 아이는 케이크가 똑 같은 크기로 나누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케이크를 잘랐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는 케이크 조각을 자신이 선택한 것이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이 깔끔한 예는 폰 노이만이 의미하는 바의 게임일뿐만 아니라 게임이론의 기초가 되는 ‘최소최대’ 원리의 가장 단순한 예시이기도 하다. 케이크 문제는 이익의 갈등에 관한 것이다. 두 아이 모두 똑 같은 것(가능한 한 많은 양의 케이크)를 원한다. 케이크의 궁극적 분할은 한 아이가 어떻게 케이크를 자르느냐와 다른 아이가 어떤 조각을 고르느냐 모두에 의존한다. 각각의 아이가 다른 아이가 어떻게 할지를 예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이 그 상황을 폰 노이만의 의미에서 게임이 되게 만든다. 게임이론은 게임의 답(합리적 결과)을 탐색한다.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첫번째 아이의 최선의 전략인데, 왜냐하면 가장 큰 조각을 고르는 것이 다른 아이의 전략이리라는 것을 그가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 해결책은 한 아이의 관대함이나 공정한 경쟁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아이 모두 자기 이익에 의해 강요된다. 게임이론은 바로 이런 종류의 해결책들을 추구한다.’
이렇듯 ‘게임이론은 오직 승리에만 관심이 있는 완벽하게 논리적인 경기자에 관한 것이다. 상대방이 합리성과 승부욕 양자 모두를 지녔다고 인정하고 당신 스스로 최선의 결과를 도모하도록 경기할 때, 그 게임은 게임이론의 분석 대상이 된다.’ (pp.68~69)
최소최대의 원리와 탐욕과 불신으로 점철된 세계
위 케이크 자르기의 예를 이용해서 최소최대의 원리를 설명하면 이렇다. 자르는 아이는 ‘무제한의 전략’ (자기 마음대로 자를 수 있음)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면 2개의 전략이 가능하다. 한 전략은 케이크를 똑같이 이등분하지 않는 것, 다른 전략은 가능한 똑같이 이등분하는 것이다. 두번째 아이(선택자)도 큰 조각을 고르거나 작은 조각을 고를 수 있다. 이때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떤 케이크 나누기도 완벽하지 않다는’(즉,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전제하는 것과 같은 완벽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적 문제를 인정해야 해야 한다. 이렇게 한 후 케이크 자르기에 참여하는 아이 모두 ‘합리성과 승부욕’을 지녔다는 전제하에서 보면, 자르는 아이는 자신에게 남을 케이크의 조각이 작을 것이라는 것에서 최소 수량을 최대화하려고 할 것(거의 절반에 가깝게 자르려고 할 것)이다. 즉, 선택하는 아이가 자르는 아이에게 남길 최소를 최대화하도록 행동한다. 선택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더 큰 조각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고, 이것은 자르는 아이가 가질 최대 수량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르는 아이가 취할 최선의 현실적 결과는 최소 수량의 최대화(자신에게 남을 수의 최대화)이고, 선택하는 아이의 최선의 결과는 최대 수량의 최소화(자르는 아이가 가장 적게 갖도록 하는 것)가 된다. 이렇게 최대최소와 최소최대가 동일할 때 그 결과를 ‘안장점’이라고 하고, 어떤 게임이 안장점을 지날 때, 그 지점이 해당 게임의 답이며 합리적 게임에서 기대되는 결과이다. 이러한 답(안장점)이 나오는 것은 게임 참여자들의 ‘탐욕과 불신’에 있다. 게임 참가자 누구도 적수를 도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pp.81~85)
이렇게 폰 노이만은 ‘완벽한 의사소통과 완벽한 정직성이 없는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고, 이곳은 ‘수많은 협조와 변절이 얽혀 있는 갈등의 세계’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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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autiful Mind (뷰티플 마인드)』
폰 노이만이 살던 냉전시대 지식인들을 정신
구조와 게임이론이 발전되는 시기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존 내쉬는 게임이론 내에서 중요한 이론(내쉬균형)을 정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현대 국가(권력)가 어떻게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개입하고, 또 사람들을 피폐화시키는가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감 독: 론 하워드
출연자: 러셀 크로우, 에드 해리스, 제니퍼 코넬리, 크리스토퍼 플러머, 폴 베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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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폭격설'과 예방전쟁
앞에서 우리는 간략히 폰 노이만과 게임이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게임이론’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현재 우리가 서있는 남북 분단이라는 삶의 조건, 핵과 전쟁이라는 실존적이면서도 사회구조적인(차라리 월러스타인이 말하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불안에 대한 역사적이고 이론적 통찰,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정책(전략적 행위, 선택들)에 의해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뉴스를 장식하는 말들에 대한 이해를 이 책이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시, 북한 선제공격 가능
나는 '영변 폭격설'이 횡행하고 핵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에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북한의 김일성씨가 죽었을 때도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한 후에 북핵 관련 위기때 마다 나오는 북한의 특정지역에 대한 폭격설에 대해 더욱 몸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더욱 몸을 떨었던 것'은 전쟁이 일어나면 나는 동원령에 의해 군에 복귀를 해야하고, 처와 어린 아이만이 난리통에 의지할 곳 없이 서울 어디엔가 남아있게 될 것이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지켜야할 것이 생긴 자로서 갖게 되는 그런 불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국내외에서 공격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 국외자로서의 태도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 나온 심한 '적개심'과 '그런 결정자들 먼저 전쟁에 자식을 보내라'는 감정상태에 빠져있었다. 이런 감정은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연루된 '병역비리'와 '국적문제' 등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화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폭격설이 핵폭탄이 발명된 이후 '평화'라는 미명하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주장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차세계대전 후에는 소련(舊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사전에 소련에 핵을 투하하자는 "예방전쟁론"을 이 책은 소개하고 있고, "정당화 가능한 전쟁의 조건들"에 대한 논의(주장)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pp.120~124) 이런 '예방전쟁'을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우리도 잘아는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이다. 훗날, 소련이 핵무장을 공식화 후 러셀은 평화주의자로서 이런 주장을 철회하고 '진정한 의미'의 평화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것들은 북한에 대한 부시정부와 우리사회 매파들의 주장의 전반적인 기조와 동일하다. 영변이든 어딘든간에 북한의 핵개발 의혹시설을 폭격하고, "폭정의 전초기지"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정권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는.
고속도로 겁쟁이 게임과 북한과 미국의 외교정책, 그리고 남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 미국, 그리고 남한의 외교정책이 '고속도로 겁쟁이 게임'과 유사한 것처럼 보였다. 이 게임은 고속도로에서 두 운전자가 서로 마주보면서 질주를 하는 것인데, 서로가 상대운전자의 결정을 모르는 채로 각각 도로에서 벗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온다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이 게임의 진짜 요점은 자신은 벗어나지 않고 상대 운전자는 벗어나게 함으로써 사내다움을 과시하는 것이다. 자신은 생존하여 흐뭇해하고 상대 경기자는 '겁쟁이'가 된다. 겁쟁이가 되는 것은 차악이며, 최악의 경우는 죽음일 것이다. (pp.290~291)
이제 운전자에 북한과 미국을 넣고, 고속도로를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이해관계로, 그리고 자동차 운전을 핵개발 강행과 북한 폭격(선제공격)으로 대입해 보자. '진실의 순간'이 끊임없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두 난폭한 운전자는 서로 마주보며 질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겁쟁이 게임에서는 어느 한쪽이라도 실제 '겁을 먹었고, 겁먹은 것이 탄로가 난다'면 거의 상황이 끝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더욱 거세게 몰아부치고 벼랑 끝까지 간 것처럼 (또는 가겠다는 듯이)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전략"이 왜 나오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물러서는 순간 '겁쟁이'가 되고, 체제 자체의 붕괴까지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 또한 마찮가지이다. 북한을 그대로 두고 물러선다면 자신들의 세계지배전략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은? 두 게임 주체의 '벼랑끝전술'에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닌가? 양쪽 모두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싸움을 말리거나, 경제적인 부담/지원을 떠맡는 꼴일 수도 있겠다. 좀 더 비약을 한다면 두 게임 주체는 남한에게 '평화'를 볼모로하여 자신들의 이해에 따르도록 이끌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즉, 두 나라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게임의 결과, 칼날은 남한에 닿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속도로 겁쟁이 게임'에서도 협동의 결과가 있다. 두 운전자 모두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둘다 살아남고, 그 누구도 상대를 겁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p.291) 하지만 핵문제에서 이런 결과는 북한과 미국 모두 남한에게 평화를 볼모로한 더 큰 경제적 희생(양보)을 강요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그 결과가 전쟁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다소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여기, '협동의 결과'에서 남한 정부의 역할(또는 전략)을 유추해 낼 수 있는데, 남한이 어느정도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두 이해당사자들이 명분을 가지고 '고속도로에서 벗어나게 하기'가 아닐까? 두 게임 주체가 약간씩의 양보가 전제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독도문제, 또 다른 게임
이젠 어느 정도 게임이론(특히, 겁쟁이 게임)에 대해서 알았다면 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도 이속에서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의 경험, 기억과 영토의 문제로 좀처럼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자명해보이며, 운전자(노무현대통령)가 고속도로에서 상대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은 상태이고, 상대도 현재 물러설 태세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양국 모두 가속 페달을 밟고나면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물러나기 어려워 보인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독도를 지배하고하고 있는 한국이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실속이 없어보이는데, 이것이 며칠전까지 유지된 '조용한 외교'의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게임이론 관련 책을 한번 읽고 한국의 외교전략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