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 - 디도서에서 배우는 복음, 교회, 그리스도인
박대영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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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중년들이 많이 읽는 문학책이 바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한다. 얽매이지 않는 듯 한 모습을 하는 자유인 조르바..이 모습에 한국사람들은 열광하는 듯 하다.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인지 책을 읽어보면 사뭇 실망스럽다.

2.그리스인 디도..사도 바울 아래에서 복음 사역을 하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디모데와 같이 유대인들이었다.이런 유대인들 지도자 속에서 디도는 그리스인, 즉 이방인 지도자로써 사도 바울 복음 사역에 왼팔 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였을까 싶다.할례 문제로 시끄러울때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이 그리스 출신인 제자 디도를 데리고 나타나 이방인인 그리스도인의 첫 지도자로써의 언급은 사뭇 의미가 깊다.

3.그 만큼 사도 바울은 디도에 대한 신뢰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아주 우직한 제자가 아니였을까? 디모데는 모태신앙으로부터 큰 굴곡없이 성장한 신앙이였다면 디도는 이방인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고백하는 굉장히 용기있는 지도자였을 듯 하다.그래서, 최초 이방인 지도자로 디도를 세운 것은 아닐까?

4.이렇게 그리스인 디도와 조르바. 둘의 굉장한 차이점 속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두 사람 다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략 2천년을 사이에 두고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의 만남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크레타 섬이다.

5.크레타 섬은 여러 주변국의 외세의 침략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양한 사상들로 그 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디도를 통해 진정한 교회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면, 조르바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현실 세계속에서의 탈출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 급이 다른 자유를 말하고 있다.

6.디도는 크레타 섬에서 지도자인 장로들을 세우고 바른 진리의 가르침 속에서 나오는 실제적 교훈들을 전하며 크레타 섬을 떠나 다른 사역지로 옮기려한다.

7.사도 바울은 아마도 새로운 시대,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방인의 복음 전도자로 디도를 세우고 그를 마지막까지 깊은 사귐속에 격려하고 가르친다. 디도서는 3장의 짧은 편지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8.이 책에서 저자는 읽는 설교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성경을 성경으로 풀기 위해 군더덕이 없이 말씀으로 풀고 있다. 그 흔한 예화도 없이 말씀을 중심으로 강해하고 있다. 이 책과 함께 팟빵의 오디오를 들으면 쉽게 디도서 말씀이 마음에 접착되게 된다.

9.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일까? 책의 제목 처럼 이 책은 교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회가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지?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야 하는지? 저자는 총7장의 구성속에서 각 장의 말씀을 풀어 강해한 후에 “교회다움의 체크리스트”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3장에 지나지 않은 성경인 디도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10.디도서를 요약하면 사도 바울은 먼저 디도를 그레데에 둔 두가지 이유를 먼저 말한다.(딛1:5)남은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 또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기 위해서 라고 말합니다.결국 남은 일은 거짓 교사들을 엄히 꾸짖고(딛1:10~16) 바른 가르침(딛2:1~3:11)을 전하기 위한 것이였으며, 각 성에 지도자(장로)를 세우고(딛1:6~9) 디도는 그레데를 떠나기 원하는 마음이였다.그러면서,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공동체 안과 공동체 밖,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있는 늙은 남자,늙은 여자,젊은 여자 젊은 남자, 종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합니다.특히 세상 앞에서 선을 행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11.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 말씀들이 눈에 들어온다.먼저 신중함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늙은 남자로 부터 대부분 공동체에 있는 성도들에게 언급되고 있다.(신약 성경의 대부분이 이 디도서에서 총5번 언급되고 있음.) 신중함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맑은 정신을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차분하고 자제심을 갖춘 사람입니다.”

12.그리고 두번째로, 우리는 은혜의 학교 안에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야 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중함은 침착하고 냉정하고 분별있는 자제하는 삶을 말하며, 의로움은 올곧게 바르게 옳은 것입니다.경건함은 믿음이 깊고 독실한 것입니다.그래서 신중함이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면, 의로움은 이웃을 향한 것이고,경건함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그러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4가지의 태도와 자세를 말씀하신다.“아무도 비방하지 말라. 다투지 말라. 관용하라.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

14.사실 이러한 말씀을 들어왔지만, 삶으로 승화되는 문제는 참으로 다른 문제인가 보다.그런데 나는 왜 이런 말씀에 대해 깊이있게 묵상하지 않았는가?이 단어들에 대한 깊은 묵상과 고민이 없기에 내 삶이 세상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 난 이 말씀을 머리로 안다고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마지막 디도서 3장8절은 핵심을 말하는 듯 하다..

15.“이 말은 참 됩니다.나는 그대가 이러한 것을 힘있게 주장해서,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에 전념하게 하기 바랍니다.선한 일은 아름다우며,사람에게 유익합니다.”( 메시지 성경)

16.이 말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바울은 복음을 굳세게 말해야 하는 이유를 ‘선한 일에 힘쓰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성도들이 이런 일에 힘쓰도록 주의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단지 관심을 갖는 정도가 아니라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굳세게 말해야 했습니다. 또 왜 복음을 굳세게 가르쳐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들,즉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외에는 관심없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공동체 안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고,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고,하나님의 참되신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자신이 왜 살고 있고,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그런 나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복음’이어야 합니다.”

17.전인격적으로 복음에 사로잡혀 균형잡힌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 겉과 속이 하나인 사람..난 언제 그런 인격의 모습으로 바른 윤리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여전히 자기 부인과 자기 절제에 막혀 타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일까?

18.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온다.. 늘 내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스럽다. 또한 교회를 바라보면 그러할 때도 있다.

19.그러나 흔들리면서 피는 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흔들리면서 피는 꽃처럼 흔들거려야겠다.. 그것이 바로 내가 주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닐까?(2019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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