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 정말 읽기 쉬운 핵심 요약판
스티그 브라더선.프레스턴 피시 지음, 이건 옮김, 신진오 감수 / 북돋움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레이엄-도드 마을을 향하여

 먼저 선언한다. 알다시피 나는 그레이엄의 빠다. 워런 버핏만큼 아니 어떤 면에서는 워런 버핏보다 더 그레이엄의 빠다. 워런 버핏은 그의 행적을 보다보면, 이건 과연 인간이 맞는가? 싶을 때가 많은데 그레이엄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인간 같은 느낌을 풍기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으로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20세에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으로부터 영문학, 수학, 철학 교수직을 제안 받은 인간이 인간적이라는 말 자체도 좀 어폐가 있긴 하다. 아무튼 워런 버핏은 주주서한 이외에 책을 집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현명한 투자자와 증권분석이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생각할 수도) 앞으로도 가치투자의 바이블 자리는 현명한 투자자와 증권분석이 주욱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명한 투자자>는 읽다가 때려 치웠다. 첫 번째 시도는 국문판으로 읽어봤는데, 가뜩이나 오래된 책이라서 어려운데 번역이 영 만족스럽지 못해서 중간에 때려치웠고, 두 번째 시도는 꾸역꾸역 읽어보려다가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걸 읽자 하고 워런버핏이 추천한 부분 중에서도 안전마진 부분만 대충 보고 때려치웠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도는 영문판으로 사서 시도 했는데, 그레이엄 아재 글 좀 어렵다. 진도도 잘 안나가고, 안전마진 봤으면 다 본거 아닌가? 싶어서 때려쳤다. (그리고 그 시간에 증권분석과 세스클라만의 안전마진을 봤다.) 오히려 일반인을 위해서 집필한 <현명한 투자자>는 포기했지만, 대학원 교재로 집필한 <증권분석>은 3판과 6판(개인적으로 다른 투자 대가의 해설이 달린 6판이 더 읽기 편하긴 하다) 모두 읽었고, 이 두 권은 역자 분이 워낙 뛰어난 분이시기도 하고, 처음에 크게 각오를 하고 시작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혔다(정확히는 3번째부터, 2번째까지는 말 그대로 그냥 꾸역꾸역) 그래서 사실 <현명한 투자자>를 읽어야 할 필요는 별로 못느끼고 있었는데, 이건 선생님이 역자로, 요약판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된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책 내용은 말할 필요 없이 당연히 좋다. 그레이엄의 책의 요약판인데 나쁠리가, 다만 아쉬운 점은 바로 눈에 띈다. 내가 <증권 분석>에서 그레이엄의 논리 전개 방식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은 요약판이라서 저자와 소통하는 기분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주입 당하는 느낌이 강하다. 중간에 의문이 가는 부분이 생겨도( 증권분석 같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래 해설이 달렸을텐데) 딱히 확인해볼 방법이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부분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분량이 분량인지라 따로 1,2,3부로 나눠서 적기는 좀 그렇고 그냥 인상 깊은 구절들 인용하고, 간단히 감상을 붙이는 형식으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진부할 정도로 자주 인용되고 많이 들었지만 또 빼먹으면 섭섭한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다. "투자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금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투기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철저한 분석', '원금을 안전하게', '만족스러운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분석은 주관적으로 스스로 만족할만큼 분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분석은 다 했다면 철저한 분석을 한 것이라고 본다. 원금을 안전하게 부분은 내 개인적인 견해로 '기댓값'을 기준으로 안전하게 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완전한 의미에서의 안전성은 국채를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원금의 안전성을 지킬 수 있는 투자를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 만족스러운 수익은 투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수익이어야 할 것 같다. 그걸 원금의 안전성을 지키면서 해야한다니. 역시 투자란 쉽지 않다. 
 
 또한 투기에 대한 그레이엄의 관점도 재미있다. "투기적 요소가 있더라도 신중하게 위험을 줄이면 "현명한 투기"가 되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돈을 걸면 "어리석은 투기"가 된다." 어리석은 투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현명한 투기도 존재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기를 정의하고 있다. "speculation"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중립적인 의미다. 우리말 '투기' 같은 부정적인 늬앙스라기 보다는 그냥  중립적으로 그레이엄이 말한 것 이외에의 것들 정도의 느낌이다. 즉, 그레이엄은 투기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투기와 투자를 구별하지 않고, 투자를 한다고 하면서 투기를 하는 짓을 걱정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과 기업의 ROE 부분도 인상 깊다. 그레이엄은 보통 기업의 ROE가 10%를 넘기 어렵고, 그러면 인플레이션에 따라서 증가하는 인건비 증가율 등을 못따라가기 때문에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하게 되고 결국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인플레이션을 아주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본 것인데, 이런 철학은 버크셔의 워런 버핏 회장도 주주서한에서 기대수익률을 정할 때(할인율) 인플레이션을 항상 언급한다는 점에서 그레이엄 투자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인상 깊었던 부분 중에 "진지하게 배우려는 초보투자자라면 초과수익을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가치 대비 가격'에 주목해서 소액을 투자하면서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종목은 자금력이 아니라 금융지식, 기질, 경험을 기준으로 선정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수익 극대화 보다는 경험 극대화에 더 중요성을 두는 편이다. 1~2억 원 정도로 비교적 소액의 투자는 수익률 자체가 높다고 해도 그 절대적인 결과물이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크지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수익률 10% 정도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이런 케이스 저런 케이스에 대한 경험을 쌓아서 나중에 투자 규모가 커졌을 때 손실가능성을 줄이고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워런 버핏은 일단 100만 달러부터 모아라. 그게 제일 힘들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결국 경험도 추구하면서 수익도 추구해야하는구나 젠장

 또한 책 곳곳에서 배당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난 배당에 매우 긍정적인 편이다. 일단 현금 유출을 동반하는 행위는 '우리 회사가 튼튼합니다'라는 말 따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높은 ROE의 기업 보다는 적당한 ROE에 매우 싼 기업에 주로 투자하다보니 기업이 스스로 재투자를 해봐야 그리 만족스러운 수익이 예상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배당으로 그걸 내가 받아서 재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핏은 배당에 대해서 좀 부정적인 입장이라 약간 혼란스러웠는데, 그레이엄은 배당을 주요 지표로 여기고 있는걸 보면 그냥 성향 차이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이건 투기와 마찬가지 부분인데, 불량 등급 채권과 우선주에 대해서 '가격이 싸지 않으면' 매수하지 않는다. 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조건부 제약은 조건만 만족되면 매수해도 투자라는 의미가 되니까 재미있다. 실제 <증권분석 6판>에서도 부실채권 전문 투자자들이 그레이엄의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가 정통 그레이엄주의임' 이라는 소리를 하는데 역시 실용주의자 그레이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그레이엄은 '일반적 투자원칙' 이라는 제목으로 <공격투자와 방어투자 사이에서 절출형 투자를 선택할 여지는 없다. 즉 공격투자나 방어투자 중 하나를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공격투자를 선택한다면 가치평가 기법을 익히고 기업을 소유하듯이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반쪽 깅버인이 되어 절반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건 비단 공격투자/방어투자 사이 뿐만 아니라 가치투자/모멘텀투자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조언 같다. 투자의 방법론에서 중간은 없다는게 짧은 내 경험의 결론이다. 투자 방법론은 계량경제 회귀분석과 달리 팩터를 많이 때려 넣는다고 설명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노이즈와 신호 구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성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레이엄의 이런 단호한 조언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준 조언이었다. 

 아, 그리고 이 부분도 재미있었다. "시장은 투자자에게 보유 주식을 매매하라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가 흐름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매매 충동에 굴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주가 흐름을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근데 막상 주가 흐름을 모르면 큰일 날수도 있다. 한진해운 투자해두고 한진해운 주가 흐름 모르면 뭐... 근데 그레이엄이 무슨 취지에서 이런 조언을 한 것인지는 이해한다. 워런 버핏이 말했듯이 시장이 나를 섬기도록 만들어야지, 내가 시장을 섬기는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테니 주가 변동성에 초연한 심리를 갖추는게 중요할텐데... 아무리 해봐도 그건 잘 안된다. 

마지막으로 분석가에 대한 부분과 안전마진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고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분석가는 회계보고서에서 숨은 속뜻을 읽을 줄 알아야하며, 회계사들이 빠뜨린 항목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과거이익, 자본 구조, 운전자본, 자산가치, 기타 주요 항목들을 바탕으로 안전성을 평가해야 한다" 라는 부분은 분석가가 갖춰야 할 자질 중에 회계 능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그레이엄의 견해 때문에 CPA 시험을 준비했었다. 실제 회계학 자체는 재미있었는데 세법에서 도저히 재미를 못붙여서 포기했었는데, 이런 조언을 볼 때면 다시 CPA 준비를 해봐야하나 싶다. 지식 자체를 갖추는 것은 혼자 공부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지식이 '회계사가 빠뜨린 항목'을 찾아낼 정도로 숙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CPA 시험보고, 3년 CPA 수습으로 일하면서 좀 부딪혀보면 준비가 되겠지 싶었는데 세법이 걸려서... 차라리 기업 재무팀으로 들어가서 몇년을 굴러보자!로 계획을 바꿨는데, 나름 중요한 커리어 시작 지점이라서 이 부분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간단한 산수나 기본 대수학을 넘어선 증권 분석 중 믿을 만한 분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분석에 미적분이나 고등 대수학이 등장한다면, 이는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워 투기를 투자로 포장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라는 부분에서 "아...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가. 워런 버핏은 비정형 옵션 등 파생상품도 자유자재로 다루는거 보면, "그래 미적분이나 대수학이 등장한다면 ... 의도일지도 모르긴 한데, 아닐 수도 있다는거니까. 그러면 미적분이랑 대수학도 알아야겠...네?" 라는 결론이 자꾸 도출되서 서글프다. 미적분까지는 듣고 따라갈 수 있어도, 고등 대수학 같은건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안전마진에 대한 부분은 "투기 대신 진정한 투자를 하려면 진정한 안전마진을 확보해야 한다. 진정한 안정마진이 되려면 숫자, 타당한 투론 , 실제 경험으로 뒷받침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밝히고 있는데, 이건 분명히 의미하는 바가 있다. '저PBR = 안전마진 보유'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가치 - 가격 = 안전마진'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마진의 계산은 숫자의 측면, 그러니까 양적분석의 측면 뿐만 아니라 질적 분석의 측면까지 포괄해야만 진정한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주식의 안전마진은 기업의 수익력이 채권수익률을 훨씬 초과할 때 확보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걸 보면 확실히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은 단순히 자산의 개념이 아니라 수익성의 개념까지 포괄한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가지로 '제대로 안전마진 갖추고 투자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인식시켜준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예를 들어 보통주만 발행한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회사가 자산과 수익력을 근거로 무리 없이 발행할 수 있는 채권액보다 주식의 시가총액이 작다면, 이 주식에는 상당한 안전마진이 들어있다." 라는 부분이 안전마진을 분석할 때 좀 도움이 되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뭐 곱씹어봐야 진짜 의미는 와 닿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심리에 대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리뷰를 끝낸다. "사업을 운영하듯이 원칙을 지키면서 ... 중략 ... 네 번째 원칙은 용기 있게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내가 사실에 근거해서 결론을 내렸고 이 판단이 건전하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실행하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일치해야 내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다. 내 데이터와 추론이 옳다면 내 판단이 옳은 것이다.)" 남들과 같이 움직이면 지수를 추종하는 평균 수익률 조차 낼 수 없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은,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외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흔들리고 밤 잠을 못 이룰 때가 있는데, 이 그레이엄의 판단에 대한 조언은 그런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명한 투자자> 자체를 읽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명한 투자자>를 읽다가 포기한 사람이라거나 읽어볼 엄두를 못낸 사람이라면 이렇게 요약판으로라도 벤저민 그레이엄의 지혜 넘치는 조언을 맛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좋은 책과 함께한 즐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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