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피스로 철학하기
권혁웅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 15년 전, 완결 나지 않은 작품은 보지 않기 때문에 “완결 나면 읽어야지!”라고 외쳤던 원피스가 지금까지 완결이 안 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감히 볼 엄두가 안 나지만 언젠가 읽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이 책을 신청했는데 실수였다. 이건 원피스를 보고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원피스를 모르면 철학이라도 잘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래서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은데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스포를 다 당했지만) 브룩이나 봉쿠레 에피소드는 감동 그 자체였다. 원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사랑이나 죽음, 쾌락, 나에 관한 이야기들은 철학을 잘 몰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하단에 적은 인용구들).
김영사에서 대중문화로 철학을 바라보는, 철학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리즈를 내는 것 같은데 철학이 어려운 사람들이 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어쩌면 인생 자체가 철학인 것을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익숙한 대중문화를 통해 철학을 접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원피스를 잘 아는 사람이 이걸 봤다면 다른 느낌이었을까 궁금하다. 언젠가 원피스를 다 보고 난 뒤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봐야지.
-
🔖정의가 이기는 것은 ‘사필귀정’이라는 교훈 때문이 아니다. 도플라밍고에 따르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따라서 이긴 자만이 ‘올바름’을 독점할 수 있다. 그는 정상결전의 와중에 이렇게 선언했다. 누가 승자가 되든 후대의 사가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적을 것이다. 진정한 올바름의 ‘내용’(누가 정당했는가?‘은 거기에 기록될 수 없다. 판단의 주체가 따로 없으며, 있는 것은 행동의 결과에 수반되는 ’정의‘라는 호칠뿐이다. -p.33
🔖사랑이야말로 사랑에 빠진 자를 마리오네트로, 바로 살아 있는 인형(장난감)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원치 않았으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힘, 나를 끌어당겨서 조종하는 이 힘을 사랑의 힘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매력이란 본래 끌어당기는 힘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매혹하는 이에게 ‘끌려’간다. 사랑은 능동성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수동성의 산물이다. -p.109
🔖브룩의 탈자(엑스터시)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건너와서,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사랑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본래 약속은 무시간성의 산물이다. 실현되기까지 약속은 종료되지 않으며, 따라서 무한히 연기된다. 브룩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했으며,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50년 동안의 고독을 견뎌냈다. -p.143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 두 가지는 ‘쾌락’에 대한 선천적인 욕망‘과 ’좋은 것에 대한 후천적인 의견‘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둘은 상극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에 부가된 것, 다른 하나를 제어하는 것이다. ’쾌락‘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이 지나치게 추구되었을 때가 나쁜 것(=악한 것)이며, 그래서 이를 제어하는 기능을 ’분별‘ 혹은 ’절제‘라고 부른다. -p.207
🔖내가 내 밖에서 통일된 ‘나‘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거울 뿐이니, 거울 속에 비치는 허구의 그림이 나에게 ’나‘라는 통일성, 일관성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일종의 ’거울상‘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부모의) 아들이며, (벗에게는) 친구이며, (자식에게는) 아버지이고, (형에게는) 동생이며, (배우자에게는) 남편이다. 저 괄호 속 타자들의 시선들이 아니라면 내가 ’나‘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내가 ’나‘를 위와 같이 소개할 때, 나는 타인들의 시선에 비친 허구의 거울상을 ’나‘라고 인증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