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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ㅣ 암실문고
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 𝑹𝒆𝒗𝒊𝒆𝒘
어릴 때 나는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걸 좋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남의 고민을 들어주기가 어려워졌다.
내 고민이 많아져서도 있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고민의, 고통의 크기가 커진 탓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여러 고통을 겪어봤어도
그 사람과 내가 느끼는 고통은 다를뿐더러
심지어 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그 깊이는 다를 수 있단 걸
깨달아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게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듣는 게
위안이 되기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상대의 고통에도 온전히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내 조언이 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내가 공감 및 조언 능력이 떨어지는 걸 수도 있고
남들은 만족하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그런 괴리감은 점점 심해졌다.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 고통의 내용들에 위로를 전하는 게
기만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 듣는걸, 말하는 걸 꺼리게 되었다.
책에서도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다고.
위에서 했던 말들과 공통되는 부분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슬픔에는 한계가 없다."
이해할 순 없지만 슬퍼할 순 있다는 걸까.
책을 읽고 나서도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이해를 못 했는데 슬플 수 있나? 슬퍼해도 되나?
다양한 고통을 다루고 있는데
참 미묘한 책이었다.
고통을 다룸에도 우울하지 않고
그렇다고 밝지도 않고.
잘 읽히는 듯하다가 안 읽히기도 하고.
분명한 건 이해는 안되어도 사례들을 보면
슬프긴 했다는 거다.
이래서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어도 슬픔에는 한계가 없다고 하나보다.
사람인지라 100% 이해는 못 해도 공감 가는 부분들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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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시도되고, 공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고려되고, 완료되며, 애도되고, 기억된다. -p.63
🔖생각이 머릿속에 넘치며
내 정신을 오염시킨다,
너 자신을 뒤에 남겨 놓고
내 손에서 빠져나간 너.
내 기분을 괴롭히는 그림자들,
웃음 뒤에 따라붙는 죄책감,
내 삶은 한때는 충만했는데
이제 반으로 잘려 나가 버렸어. -p.78
🔖연필이나 녹음테이프를 지우는 건 진짜 쉽다.
삶을 지우는 일이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다.
그 안의 나는 실수조차 되지 못했지. -p.95
🔖그는 열두 시간 교대 근무를 해서 번 돈으로 세금을 낸다고 한다. 자신의 손자를 학대한 남자가 "감옥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남자가 "서로를 죽이고 칼로 찌르고 잡아먹는 사람들이 나오는 갖가지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아늑한 휴식을 취하고, 건강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감옥에서 나와 제 손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p.132
🔖이제 청년이 된 그때의 소년에게 사과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때 소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그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그래서 결국 어디에 있게 됐는가?). 아무도 사죄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조차도. -p.139
🔖선한 사람들이 행하는 무언가라는 게 대체로 별것 아닌 일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혹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라면 어떨까. 그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진행된다. 다른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세계로부터 억지로 떼어 낸 다음, 이전보다 더 적은 자원과 더 적은 희망을 쥐여 준 채 그들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소위 선한 사람들의 '도덕적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인데, 그 고갈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의 회복을 말없이 기대하는 누군가를 돕는 건 돕지 않을 때보다 나쁜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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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ra.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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