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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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라는 도시는 기억을 태워 버리는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기에,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주 소수의 인물과 장소, 일에 대한 기억만 또렷이 남아 있다. 도시라기보다 꼭꼭 감추어 두었던 짐승 같은, 우리의 은밀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어여쁜 짐승은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기에, 최고의 사랑이 아닌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이곳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p.23

1970년대 화려한 로마에서 살고 있는 레오는 어째서인지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대도시의 화려함은 그를 감싸고 그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레오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던 존재였다. 그렇게 공허한 나날이 지나고 또 지나던 어느 날, 로마 상류층 부부를 통해 '아리아나'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지만 계속해서 그 감정을 부정한다. 진심으로 그와 교류하던 친구 '그라지아노'도 있고 밀라노에 부모님도 계신다.

혼자가 아님에도 군중 속에서 혼자가 되어가고 있던 찰나 친구 '그라지아노'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밀라노 생각이 났다. 내 고향인 그 우울한 도시에서 살 때처럼 진지하고 조금은 지루한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이 일었다. 나는 그 숱한 농담과 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도 냉정하게 사람을 죽이는 사교 모임, 그리고 걸치고 있는 옷으로 사람을 취급하는 데 지쳤다. -p.213

의미 없는 사교모임과 사람들에게 질려버린 레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그녀가 정말 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참 운도 없다. 나의 불운은 그녀가 다른 사람의 여자일 때만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남은 음식처럼 누군가의 잔재일 때만 내 여자가 되는 것이다. -p.239~40

자신의 인생 전반이 누군가 먹다 남은 음식 같다는 생각을 하는 레오의 고독은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온/오프 모두 우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진정한 소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화려한 로마시대 사교 모임처럼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의미 없는 말을 내뱉을 때가 많다. 사려 깊고 진중한 대화를 하기 힘들어진 이 시대는 어쩌면 로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지도 모른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낀 레오와 나는 어쩌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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