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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픽션 ㅣ 위픽
서장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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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중 103번째로 발간된 서장원 작가의 단편소설. 본문, 작가의 말과 인터뷰를 포함해 총 107페이지라는 가벼운 분량으로 퀴어·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된 남초를 다룬다.


 쓰레기 같은 사상을 퍼뜨리는 자산가, 극우 발 혐오 밈 속에서 즐거움과 소속감을 얻는 남자, 악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 소수자를 차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역병처럼 퍼뜨리는 인플루언서. '이 인간만 없으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웠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약 정말로 없앨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일을 소설이라는 세상에서 구현한 작가는 언뜻 보면 독자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듯싶지만, 손을 대기 직전에 멈추고 묻는다. 그것이 정말 괜찮은 일인지.


 종합격투기라는 남초 사회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소수자 조성이 일베 밈을 쓰는 회원을 지워버린 걸 비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의 행동을 직관하고 그게 과연 옳은지를 고민하는 정원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성의 결정을 지지한다. 애매하게 악하고 평균적으로 선량한 보통의 인간 두 명. 그렇기에 독자는 소설 바깥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속절없이 마음을 줘버리고 만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조성과 정원의 마음을 따라가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엔딩을 맞이할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다. 넘쳐나는 혐오에 넌더리가 난 사람, 그리고 남몰래 그런 누군가를 지워버리는 상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위픽 시리즈는 여러 작가의 단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마다 느끼는 고점과 저점이 확실하므로 위바위(위픽 바이 위픽)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들어서 어떤 책을 먼저 읽을지 늘 고민만 했었는데, 좋은 기회를 얻어 서장원 작가의 단편으로 안정적인 입문을 할 수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이야기라 위픽 시리즈 진입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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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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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경욱 작가의 열 번째 소설집으로 표제작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를 포함해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광주에서 상경해 서울대 영문학과에 들어갔고, 책을 써 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서사창작과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을 보면 그의 작품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가 상당히 자전적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김경욱 본인을 조각내어 각 소설에 조금씩 넣어두었기 때문인지 작품 속 이야기는 더없이 현실적이어서, 실재하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 듯한 감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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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욱은 독자를 새내기에게 담배꽁초 띄운 막걸리를 양푼 가득 먹이고 화염병을 던지던 대학생들의 시대, 또는 그 시절을 이미 지나온 현대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글을 쓰는 소설가를, 그 글을 가르치는 선생을,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의 삶을 퇴고하고 교정하는 사람을 지켜보게 만든다.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들은 현실을 모사한 소설 속 세계에서 각자의 글을, 삶을 반추하며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선 이야기는 독자에게 사회 문제의 책임에 대해 묻는, 즉 글이기에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영역이 그 존재 이유를 의심받고 있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소설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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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의 나는 새 학기 국어 교과서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지문을 모조리 읽어보는 학생이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의 심리나 보라색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적을 필요가 없는, 순수한 문학으로서의 교과서는 기묘한 매력을 품고 있음을 안다. 교육청과 출판사가 고르고 골라 수록한 작품들, 그것들 특유의 정제된 분위기와 깊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모의고사 시험지나 교과서와는 작별한 지 오래인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김경욱의 단편집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에서 그러한 '쪼'를 느꼈기 때문이다. 수능 지문이나 교과서에 발췌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게 하는 작가는 오랜만이어서 읽는 내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 국어 교과서와 수능특강에 수록된 작품을 학생이 아닌 독자로서 읽곤 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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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이응
김멜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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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젊은작가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한 김멜라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이응 이응〉을 포함한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유의 묘사와 독특한 설정, 엉뚱한 듯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조화롭게 모여 김멜라라는 세계관을 구성한다.

 SF이지만 한국에서 실제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소설 속에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기업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맨발 걷기, 의사와 의대생의 파업 릴레이 등, 각각의 단편에는 사건을 구성하는 현실 세계의 이슈가 하나씩은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이야기 속 인물들은 독자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법한 친밀감과 생생함을 얻는다.


​ 연인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형태로 빚어 장면으로 녹여냈음에도 그 마음의 말을 직접 꺼내지는 않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나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힘까지, 전체적으로 《썸머 필름을 타고!》 의 주인공 '맨발'과 닮은 작가라는 인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교환독서로 진행했으면 좋았을 책이라는 점... 서평단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모아 코멘트를 달며 읽었을 것 같다. 교환독서 책을 고민 중이라면 《이응 이응》도 좋은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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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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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중에서도 아테네의 시켈리아 원정이 대패로 끝난 직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전쟁의 피해를 여전히 통감하는 시라쿠사인과 죽어가는 아테네 전쟁 포로 사이의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 그리고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거칠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화자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고대 그리스 배경을 좋아하고, 또 서양식 유머와 의도적인 번역투 욕설을 좋아한다면 특히 즐겁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채석장에서 긁어모은 아테네 포로들과 람포, 겔론, 소년들이라는 오합지졸 무리는 연극을 준비하면 할수록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단하게 뭉친다. 특히 음식을 목적으로 연극에 참여한 아테네인들이 후반부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배우가 되어 시라쿠사인 관객을 두려워하면서도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변화가 재미있었다.

 많은 이들이 변화를 겪지만 그중에서도 람포의 변화가 소설에서의 가장 큰 감상 포인트다. 피카레스크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화자인 람포가 상당한 망나니다. 그의 어리석음, 과시욕과 인정욕구, 무례함,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농담은 작품 내 감초 역할을 하면서도 독자의 거부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매사를 장난 식으로 임하는 그가 연출가가 되어 「메데이아」 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준비하면서, 또 다스마스 술집의 리라를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심적 변화는 작품 전체에 걸쳐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런 람포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 고대 그리스다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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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킴
에바 틴드 지음, 허여 셀린느 옮김 / 산지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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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민 킴》은 덴마크에서 동양계 입양인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룬 소설로, 트리거 워닝은 학대와 가족 내 성폭력이다. 에바와 꿀마이가 주고받은 펜팔 편지와 에바 개인의 기록이 섞인 구성이 섬세한 문체와 만나 서구 사회의 '입양을 통한 동양인 구원' 서사의 민낯을 진솔하게 밝혀낸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 간 김남숙과 김미인은 각각 에바와 꿀마이라는 이름의 덴마크인이 되어 펜팔 친구로 인연을 이어가지만, 어느 날 꿀마이 측에서 돌연 연락을 끊어버린다. 30년이 지나서야 꿀마이를 찾은 에바는 그녀가 과거 입양 가족에게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에바는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받아온 차별을 떠올린다. 입양을 통해 불쌍한 처지로부터 구원 받았으니 감사해야 마땅하다는 시선과,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고함을 감내하던 삶을 떠올린다. 위험와 인내, 자기검열로 점철된 인생을 돌아본 그녀는 신화로 위장한 입양 산업의 진실과 입양인이 겪는 고통을 가시화하기로 마음먹고, 꿀마이와의 펜팔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한다.


 디아스포라를 논하는 소설들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인물이 그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발전한다. 《민 킴》은 입양인 개인이 경험한 상실과 부당함을 국가·인권 문제라는 동시대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그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세대적 차원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글을 쓰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같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사회에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행보에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연대까지 느껴지곤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앞으로도 건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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