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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과 제이드
오윤희 지음 / 리프 / 2024년 11월
평점 :

영숙과 제이드는 딸 제이드와 엄마 영숙,
둘의 삶이 각자의 목소리로 그려지는 이야기다.
출판사 서평에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
소개하는데, 그 이유를 알겠더라.
이야기는 6.25 전쟁 이후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가족에게 외면받은
그녀들의 삶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분단, 미군과 기지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던
지워진 그녀들의 존재.
소설은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접근했다.
양공주

여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만 오는 지옥이야!
영숙과 제이드
당시 그 기지촌에 들어가 양공주가 된 여성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성인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말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고
속아서 오는 경우부터 팔려오는 등.
각자의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모여든 곳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매일을 살아냈다. 그리고 죽어갔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걸까.
제이드

엄마의 존재감은 아주 빠른 순간 반짝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짧은 순간 투명하게 반짝이다가 그대로 증발하고 마는 저 빗방울들처럼.
영숙과 제이드
제이드는 이민 2세로 영숙의 딸이다.
한국에서 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는 엄마는
가깝고도 멀게 그려진다.
이민으로 인한 낯섦과,
한국인들에 대한 극도의 경계로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았던 엄마.
그런 엄마가 죽은 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
한 동양인 남성과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에는 그 남자의 이름과 주소가 쓰여있었는데,
가족이 살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남자와 엄마는 어떤 관계였을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제이드는 엄마의 삶을 따라가보기로 결심한다.
영숙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먹고 잘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겠다던 파주댁의 음흉한 웃음이 떠올랐다. 먹이를 감별하는 도마뱀처럼 온몸을 훑어보던 마마의 눈빛이 그 위에 겹쳐졌다.
영숙과 제이드
제이드의 시선이 끝나면 곧바로
영숙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가난했던 가족,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식모 일에 뛰어든 영숙은
억울한 일로 쫓겨나고 다른 곳에
팔려가듯 떠밀린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이었을
어린 소녀에게 지옥 같은 일이 펼쳐지게 되고,
'양공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영숙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유령같은 삶

아빠의 큼직한 손은 곧 엄마의 얼굴이나 배에 내려 꽂힐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듯, 멱살이 잡힌 채 발버둥 치고 있었다. 두 사람 주변에는 깨진 유리 조각 파편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영숙과 제이드
영숙은 죽을 때까지 유령 같은 삶을 살다 간다.
남편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도,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을 때도,
딸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마치 텅 빈 유령처럼 모든 상황을 감내한다.
읽고 있으면 그녀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모두 읽고 나면 그럴 수밖에 없던
그녀의 삶이 촘촘하게 마음을 찌른다.
아프고, 아프다.
죄인

어떤 이는 엄마를 타락한 여자라 불렀고,
다른 이는 엄마를 가리켜 피해자라고 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엄마는
불친절한 운명과 용감히 싸웠던 생존자였다.
영숙과 제이드
죄인이 아니지만 죄인 같은 삶을 살았던 영숙,
그러나 살아생전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은 받지 못했다.
되려 더럽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당했다.
그럴수록 영숙은 더 숨었다, 감추었다.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시대에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수많은 '영숙'이 사라져갔다.
엄마와 딸

내 마음이 무너진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난 얼굴이 왜 엄마였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엄마랑 나는 그렇게 살뜰한 모녀관계는 아닌데, 연락하고 얼굴을 보는 횟수로는 대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 카일라나 친한 동료 교사 클레어가 엄마를 훨씬 앞서는데.
영숙과 제이드
영숙과 제이드는 역사적 아픔 외에도
엄마와 딸의 관계를 마음 아프지만
벅차오르게 그려낸다.
엄마를 몰랐던 딸, 그 딸이 또 딸을 낳고
엄마가 되고 아픔을 겪어내며
비로소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진주는 조개 속에 난 무수한 상처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인생을 할퀴고 간 수많은 상처도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면, 그건 바로 내 딸 제이드다. 제이드는 내 상처투성이 인생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영롱한 빛을 발한 내 보석이었다.
영숙과 제이드
그리고 엄마가 죽은 후, 엄마의 삶을
따라가며 엄마를 온전히 품어낸다.
한쪽으로 흐르는 일방적인 사랑 앞에
한정 없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파진다.
세상 모두의 엄마들 마음이 이렇겠지 싶어서.
잊지말아야 할
우린 버려진 사람들이에요. 가족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영숙과 제이드
아프더라도 잘못된 것을
똑바로 바로잡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나 또한 그녀들의 삶을 TV나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스치듯 접했을 뿐,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상황 속에
내던져져야 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녀들의 삶과 죽음에 과연 이 나라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그녀들을 손가락질하고 외면한
가족과 타인의 태도는 옳은 것일까.
많은 생각의 자국을 남겼다.
이젠 외면하지도 모른척하지도 말아야 할
슬픔과 비극이 여기 있다.
당신 또한 그 슬픔과 비극을
손으로 가리지 말아 주길.
이젠, 똑바로 열어주길 바란다.
잘 읽었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