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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김기갑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8월
평점 :

나는 미사여구가 많이 붙은 시나,
난해한 시를 선호하지 않는다.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내가 시를 읽는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큰 위로와 울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기교 없이 순박하면서
굵은 울림을 주는 시를 만나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김기갑 시인의 책, 문어가 그랬다.
추천대상

삶이 의심스러운 사람,
인생에 해답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 사람,
간결하지만 묵직한 여운을 주는
시를 만나고 싶은 사람,
지친 삶을 시 한 편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
107편의 시들이 당신을 환영해 줄 것이다.
돌다리 신호등 술 안경

돌다리 건너듯 살아라
(중략)
자만하지도 절망하지도 말고
다만 여유롭게 세상의 돌다리를 건너가라
돌다리의 간격은 너무 멀어서도 안되고
가까울 필요도 없다.
그 간격처럼 자만하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고
세상의 돌다리를 건널 수 있길 바라본다.
키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부지런한 게
그 총각 다 좋은데
아까 다르고 지금 달라 쓰겠냐
키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부지런하지만 계속 바뀌는 신호등.
머릿속에 그러한 이들을 떠올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의 마음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서
나 또한 신호등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누군가를 평가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평가해야지.
한 잔에 귀가 열리고
두 잔에 입이 열리고
세 잔에 마음이 열리고
한 병에 귀가 닫히고
두 병에 입이 닫히고
세 병에 미음이 닫히고
그 이상엔 관 뚜껑이 닫힌다.
술, 지긋지긋한 악연이다.
평생 마실 술을 20대에 다 마셨던 나는
지금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로 인해 실수도 해봤고, 인생이 꼬여도 봤고,
인생이 망가진 사람도 봤다.
술로 인해 관 뚜껑이 닫힌 사람도.
관 뚜껑 닫히기 전에 술과 거리 두기를 해보자.

햇살이 뜨겁다
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건넌다
자전거가 아이 몸집보다 크다
위험해 보인다
누군가 대신 자전거를 끌어준다.
건너편에 한 여인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엄마인 듯 아이를 부른다
자전거를 끌던 남자가 여인에게 따진다
"아이를 혼자 버려두면 어떡합니까?
아이가 위험한 게 안 보입니까?"
여인이 아이에게 말한다
"얘야, 내가 널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놀 거라"
사람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참 많이도 타인을 헐뜯었다.
내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했다.
시 속 남성도 그랬을 것이다.
어미가 귀로 세상의 전부를 느껴야 함을
몰랐을 테니 그렇게 말했겠지.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너무나 많은 실수를 하고 산다.
마무리하며

문어는 다리가 잘리면 다시 생겨난다
사람은 발가락 하나 잘려도 자라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의 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살면서 이러저러한 다리가 잘린 사람들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우리들 곁에 있다
여기에서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오늘 하루 단 한 사람이라도 부축하며 걸었는가
어린아이가 할머니의 폐지 수례를 함께 끌고 간다.
푸른색 문어와 붉은색 불가사리가 한데 엉겨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를,
시를 읽고 나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리가 잘려도 다시 생겨나는 문어,
하지만 사람은 잘리고 난 다리가 다시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해 빈 다리를 채워줘야 한다.
비단 잘린 것이 다리뿐이랴.
신체의 다리든 마음의 다리든
우리는 절뚝거리며 살아간다.
문어와 불가사리가 얼기설기 얽혀 이어진 것처럼
세상에서 한데 얽혀 사는 우리.
'나는 오늘 하루 한 사람이라도
부축하며 걸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부축하며
걸어주었는지도 생각해 본다.
잘 읽었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