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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책은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잘쓴 에세이란 이것이다, 라며 보여주고 싶다. 

다만 이 책에선 '노바디 ' 파트는 좀 지루했다, 

나도 그처럼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곳의 초청을 받아 오래 머물며, 글을 쓰고 싶다. 



57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대학생, 공무원 등등)이에요,' 그럴 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나의 역할이었따.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 중요한 이야기다. 내가 가끔 소설을 쓸때 평범한 20대 여성, 이딴 캐릭터를 생각해왔으니까.


62

<살인자의 기억법> 의 작가의 말 의 서두에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따.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따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떤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 나도 소설 쓰기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감히 내가 세계를 창조한다니, 그냥 어디 모래나 흙좀 주워다 놓으면 세계가 나와 별개로 만들어지는 걸수도. 


64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중략)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98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규정되는 존재이니...

-맞는 말이다. 요즘 들어 꺠우친 것이다. 만약 나는 000사람이다 라고 말하려 한다면, 네가 정말 그것을 해왔는지ㅏ 보면 된다. 현재로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읽기를 즐겨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09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없는 평온의 상태에 접근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중략)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순간은 유일하며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아니 꼬ㅒ 많이 편해졌다. 


-배낭여행, 뭔가 내가 오늘 점심 식사를 결정하고, 잘곳을 구해야 하는, 여행일 떄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혹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현재에 머무르게 되어? 그래서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해, 평온의 상태가 되어?  근데 여행을 하다보면 저 만치 아주 어두운 과거, 미래가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168

복잡한 정체성은 남한 출신의 여행자라는 간단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대체된다. 이대 오디세우스가 느낀 유혹, 키클롭스라는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다. 

-찔리네,,, 몰라서 그런거였어... 여행지가서 나를 인정받으려 하는 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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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다녀왔습니다
신경숙 지음 / 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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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다녀오겠습니다" 저자는 이 말을 남기고 요가원으로 간다. 

설사 집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이 말이 새삼 참 좋게 느껴진다. "요가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다는 말이 따듯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요가란 언제나 따뜻한 햇빛을 등에 쬐는 것처럼 안온하다. 

이 둘이 합쳐졌으니 얼마나 좋은 말인가. 


신경숙 저자는 소설쓰기 만큼이나 요가를 오래 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할 수록 아사나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 ㅜㅜ

가장 공감하고 위로 받았던 부분은

잠시 요가를 멈추고 다시 하면 통증이 더 심해지고, 되던 아사나도 되지 않더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나만 그렇게 뻣뻣한 줄 알았다. "마치 내 몸은 더 나무가 되려고, 바위가 되려고 하는 거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며칠 요가를 게을리하면 여지없이 전처럼 굳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아사나를 하려하면 전에 보낸 고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그 고통을 다시 뚫고가지 않으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 요가는. 

그래서 좋다. 

뭔가 평생 꾸준히 해야 할거 같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책에서 안 되던 자세도 어느날 갑자기 되더라니, 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참 멋진 경험이다 그것은. 나도 얼마전에 그렇게 애쓰던 머리서기 자세를, 어쩌다 남 앞에서 하게 되었는데 어랍쇼 되더라는 것이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되어서 나도 놀라 금방 아래로 내려왔지만 말이다. 


5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의 요가 자세들은 지금보다 너 나빠질 것이고 나의 몸도 지금보다 더 많은 통증 앞에 던져질 것이며 나의 글쓰기도 지금보다 더 고독해질 것을 예감합니다. 

(내 메모; 내 삶은 더 고독해지고 내 몸은 더 쇠약해진다. 그래서 '동반행'이 필요하다. 요가 같은.)


24

문학이란 '깊은 우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것'


41 머리 서기를 두고 존재의 뿌리를 하늘로 다시 역전시키는 자세라는 문구에 반해서


42

요가를 하면서야 나는 내 새끼발톱의 기형 상태가 이제는 치료되지 않을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0

어디 하나 뺴놓을 데 없이 나의 몸은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따는 것을 실감하게 한 게 나에겐 요가였다. 내 육체의 불균형들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요가를 하는 동안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86

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동안 쓰지 않던 숨은 근육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뜻


87 

몸이 믿기지 않게 가벼워졌다. 그 몸의 가벼움에 감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요가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어쩌다 오래 집을 떠나 있게 되어 요가를 일주일 이상 하지 않고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 동네 요가원에 나가면 쉬었던 만큼 그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89

뉴요커들은 지금은 요가를 안 하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고 지금도 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라고 했따. 내가 그건 또 왜? 물으니 진복적이고 멋있짢아요, 라고 쾌할하게 답했다. 


90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매일매일 요가를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 다시 통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요가매트를 여행가방에 넣었다. 


124

어떤 선생님은 몸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한계를 넘어갔을 때의 상태를 기억한다고 말해주었다. 몸의 기억력은 대단히 뛰어나서 한번 도달해본 그 지점을 잊지 않는다는 것.

(와!!!!!!!!!!!! 뭔가  위로되고 굉장히 용기 주는 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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