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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사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평점 :
🌌 기억에 남는 글귀
* 역사적 관점은 모두를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인질로 삼는다. 나는 사실상 정반대로 생각한다. 위대한 사건들은 개개인에게서 발생한다. 충격적인 사건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p.134
* 가이거는 규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가 특정 명언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 특정 규칙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규칙 안에 있을 때 그는 강하지만(그는 천하무적이다) 동시에 이것이 그의 약점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그는 예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건대 가이거는 삶이 온갖 종류의 다양한 도식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이 도식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세계질서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예외란 규칙이라는 것을 가이거는 이해하지 못한다.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p.330
* 어제 대화의 주제는 반드시 경험을 동반하는 혹과 멍이었다. 그는 우리가 겪은 일 중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경험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 그러니까 멍이 난 후에 경험을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멍이 났다고 해서 반드시 경험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몸을 거쳐간 멍의 개수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나의 중요한 기억들은 멍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맞거나 넘어져서 생기는 멍 말이다. p.331
🌌독서노트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와 그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비행사>를 통해 깨달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됐을 때, 나를 찾는 이가 없을 때 내 존재 의미가 있는 걸까. 모두에게는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없지만 행복할 수 있는 미래보다도, 조금 힘들지만 네가 있는 현재가 좋다.
주치의인 ‘가이거’는 살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이 발생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얼마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들을 전자기기에 맡겨 두고 쉽게 잊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가 왜 있는지, 어떻게 이런 모습일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기억뿐이라고 <비행사>는 말한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나의 현재를 잃어버릴 것이고, 미래 역시 아득해질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인노겐티처럼 일기를 써볼까 생각이 든다.
* 책을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