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박정희라는 인물이 한국 사회에 끼친 해악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와 만나게 됩니다. 지역감정도 박정희가 만든 작품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지역감정이 없었습니다. 윤보선과 박정희가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박정희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곳이 호남 지역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정희가 ‘농민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호남 갈등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를 위협하자 박정희는 선거 전략 차원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목포 출신인데 국회의원을 바로 강원도 인제에서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출신 지역을 거의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1970년대 초부터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시작했고 지역주의는 박정희가 남긴 유산 중에서도 최악의 유산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마비시키는 심각한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베트남전쟁 파병을 통해 한국을 68혁명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예외 국가’로 만든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한국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인물입니다. 그 밖에도 그는 강남 개발을 통해 정치자금을 축적하여 한국을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든 원조 투기꾼이자,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름으로써 한국을 ‘과거청산이 없는 나라’로 만든 친일파이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 쿠데타를 통해 30년간 지속된 군사독재 시대의 문을 연 독재자였습니다.
박정희가 한국 현대사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이처럼 막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돌아볼 때 그가 남긴 최악의 유산은 바로 그가 68혁명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68혁명이 추구한 사회와 정반대되는 사회를 만들었다
